[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여름이 다가오면 해변을 가득 채우는 작고 얇은 두 조각의 직물. 이 의상이 등장한 배경을 살피려면 1946년 7월 프랑스 파리의 찌는 듯한 더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40년대 서구 사회는 여성의 신체 노출을 극도로 엄격하게 통제했다. 물놀이를 즐길 때 착용하는 의복은 신체를 대부분 가리는 형태였다. 치마가 달린 원피스 형태나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가 일반적인 규범이었다. 해수욕을 즐기는 여성들은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는 거추장스러운 직물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치맛단이 조금만 짧아져도 경찰이 해변을 순찰하며 자를 대고 길이를 단속하던 시기였다. 신체를 드러내는 행위는 심각한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됐다. 엄숙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파리 몰리토르 수영장에 등장한 파격적인 의상은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두 디자이너의 치열한 경쟁이 낳은 이 창작물은 인류 복식사에 거대한 파장을 몰고 왔다.
◇원자폭탄 폭발력에 비견된 패션의 탄생
1946년 여름 프랑스 칸에서 자크 에임이 복부를 약간 드러내는 수영복 아톰을 선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이라 칭하며 하늘에 광고 문구를 띄웠다. 기계공학자 출신이자 어머니의 속옷 가게를 물려받은 루이 레아르는 앞선 광고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며칠 뒤 루이 레아르가 내놓은 의상에 사용된 직물 면적은 30제곱인치 미만이었다. 작은 성냥갑 안에 의복을 구겨 넣어 대중 앞에 당당히 선보였다.
의상 발표 나흘 전 미국은 태평양 마셜 제도의 한 환초에서 공개적인 핵실험을 단행했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는 흑백 사진이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루이 레아르는 자신이 고안한 아주 작은 수영복이 핵폭발에 버금가는 거대한 충격을 줄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핵실험 장소의 이름을 따서 수영복의 이름을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의복 비키니는 가장 파괴적인 무기의 이름을 얻었다.
◇기성모델의 착용 거부와 5만 통의 팬레터
비키니가 등장 직후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직물이 너무 적게 사용돼 배꼽을 온전히 드러내는 디자인을 보고 파리의 패션모델들은 착용을 완강히 거부했다. 자신의 명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모델들이 줄줄이 도망치자 루이 레아르는 큰 난관에 봉착했다. 고민 끝에 파리 카지노에서 누드 댄서로 활동하던 19세 미슐린 베르나르디니를 기용해야만 했다. 그녀가 몰리토르 수영장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바티칸 교황청은 부도덕하다고 규탄하며 종교적인 맹비난을 쏟아냈다.
1951년 런던 미스 월드 대회 주최 측은 여론의 질타에 굴복해 수영복 심사 규정을 대폭 수정했다. 종교계 유력 인사들은 성명을 내고 신성한 육체를 상품화하는 행위를 맹렬히 비난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여러 국가는 해변에서 이 옷을 입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경찰을 동원해 단속했다. 단속에 걸린 여성들은 벌금을 물거나 해변 밖으로 쫓겨났다. 보수적인 사회 규범과 종교적 엄숙주의가 단단하게 결합해 거대한 장벽을 세웠다.
◇미디어와 은막의 스타들이 이끈 대중화
기성세대의 반발이 거셀수록 대중의 호기심은 폭발적으로 증폭됐다. 첫 착용 모델이었던 미슐린 베르나르디니에게는 전 세계 남성들이 보낸 편지 5만 통이 쏟아졌다. 편지 내용의 대다수는 열렬한 구애와 찬사였다. 억압과 규제가 강해질수록 은밀한 수요는 은연중에 계속 늘어났다. 사회의 엄격한 규제 속에서 지지부진하던 보급을 촉진한 주역은 스크린 속 영화배우들이었다. 대중 매체의 파급력이 사회적 금기를 서서히 허물기 시작했다. 1953년 프랑스 칸 영화제 해변 화보에 등장한 브리지트 바르도는 흰색 직물로 몸을 감싼 채 매력을 발산하며 전 세계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화보 촬영 당시 주변에는 수많은 취재진이 운집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녀의 사진이 각종 잡지 표지를 장식하자 젊은 세대는 큰 환호성을 질렀다. 1962년 007 시리즈 첫 작품 살인번호에서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허리에 칼을 찬 채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컷은 굳건한 금기를 완전히 허무는 기폭제가 됐다. 스크린 속 강인하고 주도적인 여성들의 모습은 보수적인 윤리관을 크게 뒤흔들었다. 노래와 영화 등 미국 팝 문화의 확산은 비키니를 청춘과 자유의 상징으로 단숨에 격상시켰다.
◇억압된 복장 규범을 무너뜨린 파격의 역사
두 조각의 얇은 천은 시대의 극심한 통제를 깨트린 저항의 산물이었다. 초기의 거센 비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비키니는 여성의 일상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들은 타인의 시각에서 탈피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드러낼 권리를 점진적으로 확보해 나갔다. 1960년대 성(性)해방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해변의 풍경은 영구적으로 변했다. 캘리포니아 해변을 중심으로 서핑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젊은이들은 앞다투어 얇고 활동적인 수영복을 구매했다.
브라이언 하이랜드가 부른 대중가요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크게 더했다. 직물의 면적은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디자인은 나날이 다양해졌다. 경찰이 자를 들고 해변을 순찰하는 촌극은 영원히 사라졌다. 여성들은 각자의 체형과 취향에 맞춰 수영복을 고르며 눈치 보지 않고 여름을 즐겼다. 1940년대의 끔찍한 사회적 질타는 20여 년 만에 눈부신 찬사로 탈바꿈했다. 한 디자이너의 도발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 비키니는 현대 복식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발명품으로 당당히 기록됐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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