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김수미의 K-씨어터…황석정, 배우의 몸으로 엮어온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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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김수미의 K-씨어터…황석정, 배우의 몸으로 엮어온 오래된 미래

연합뉴스 2026-07-22 11:10: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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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배우 황석정 배우 황석정

[뮤직웰 제공]

배우 황석정을 설명하는 익숙한 말이 있다. 개성파 배우, 신스틸러, 예능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남긴 배우. 그러나 황석정은 이 단어들로 다 담아내기 어렵다. 그의 연기는 대사보다 몸이 먼저 말하고, 표정보다 리듬이 먼저 움직이며, 더 정확하게는 단지 배우라는 이름 안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대의 형식과 몸의 문법, 음악과 움직임, 식물과 역사, 사상과 공동체를 한 데 엮어온 창작자였다.

황석정의 연극적 출발에는 소리가 있다. 부산에서 인문계 고교를 다니던 그는 국악 공연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는 정가의 소리가 그에게는 "숨을 못 쉴 정도로 넋을 놓고 볼만큼"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후 피리를 시작했고,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했다. 피리는 숨을 다루는 악기다. 그 숨의 감각은 훗날 무대 위 몸의 감각으로 옮겨갔다.

음악이 혼자 깊이 들어가는 일이었다면, 연극은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든 20분 남짓한 '허생전'에서 전교생의 박수를 받은 경험은 그에게 연극에 대한 첫 감각으로 남아있다.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좋아해 주는구나."

그 이후부터 연극과 무대는 황석정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사람을 만나는 새로운 방식이 됐다.

그 후 서울대 음대를 다니면서 대학 연극반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으로 이어진 그의 이력은 배우 훈련 이외에도 연출을 부전공하면서 소리, 움직임을 창작하는 과정으로도 채워졌다. 연극원의 대학 무대만으로도 황석정은 탐나는 배우였다.

연극 '바보각시' 연극 '바보각시'

[연합뉴스 자료 사진]

연희단거리패의 '바보각시'에 참여했던 황석정은 이윤택의 '어머니'에도 발탁됐고 러시아 공연 무대까지 섰다. 필자가 목격했던 한예종 연극원 극단 '돌곶이'의 창단공연 '우투리'(2002년)는 국내 창작극인 것만으로도 주목받았지만, 황석정이라는 배우를 각인시켜준 강렬한 무대였다. 황석정은 우투리의 주인공이었다.

"그때 움직임을 만들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있지도 않은 움직임이었거든요. 연출 선생님이 경극처럼 우리 식의 리듬과 움직임을 원하셨는데, 그게 뭔지 제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것 때문에 6개월간 무술을 다 배웠어요. 음악 베이스가 있으니까 어찌어찌 찾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 만들어준 틀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틀 자체를 몸으로 만들어내는 존재, 황석정은 그런 배우였다. 노래부터 움직임, 퍼포먼스까지 장면 전체를 철저하게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던 그때의 혹독한 경험은 황석정을 '역할을 맡는 배우'가 아니라 '공연을 짓는 배우'로 만든 셈이다.

황석정이 극작에 참여한 연극 '몬스터' 황석정이 극작에 참여한 연극 '몬스터'

[극단 '하얀 코끼리' 제공]

그래서일까. 황석정이 말하는 연극은 장르의 이름이라기보다 여러 감각이 모이는 장소에 가깝다. 음악, 미술, 영상, 식물, 역사, 철학이 그에게는 모두 공연으로 가는 연결통로다. 그는 지금도 민화를 그리고, 식물을 키우고, 식물 전시를 구상하며, 동학을 공부한다. 그에게 그것들은 모두 언젠가 하나의 무대 위에서 만날 재료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쏟는 것은 식물이다. 황석정은 오랫동안 식물을 키워왔다. 산에서 키운 시간까지 더하면 10년이 훌쩍 넘는다. 처음부터 농업인이 되거나 도소매업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식물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였다. 제대로 공부해서 보살피지 않으면 식물은 죽는다. 그는 숱하게 식물의 죽음을 겪으면서 하나씩 식물을 배웠고, 그 시간은 어느덧 존재를 사유하는 명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현재 구상하는 '식물 연극', '식물 콘서트'에서 '식물'은 무대 위 오브제만이 아니다.

"식물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잠을 잘못 잤어요. 그런데 자연은 순환하잖아요. 계절 따라 모습과 색깔이 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 흙이 되고 다시 싹이 나죠. 그건 두려운 게 아니잖아요. 식물을 키우면서 오직 인간만이 삶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면, 배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식물 연극은 그런 이야기예요."

황석정의 식물 연극은 그래서 한 배우의 사적 고백이자 인간이 자연 앞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동학(東學) 역시 황석정이 오랫동안 붙들고 왔던 또 하나의 소재다. 그는 3년 전 대학로에서 1인극 '일리아드'를 한 뒤 오래된 친구와 예술가들을 모아 '모두꽃'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배우, 연출가, 국악인, 미술가, 큐레이터, 미디어아트 작업자, 도예가 등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관련 장소도 답사한다. 그가 이 팀을 만든 이유는 K-컬처가 세계적으로 조명받는 시대에 정작 예술가들이 'K'의 원형 정신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황석정이 말하는 동학은 특정 종교나 과거의 농민 항쟁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다. 그는 동학을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사상,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묻는 정신과 철학으로 이해한다. 동학을 전봉준과 항쟁의 장면으로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사유와 수행, 평등의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가 만들고 싶은 동학 공연은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정신의 무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극이자 동시에 현재의 삶을 되묻는 공연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황석정이 이 모든 다양한 창작 과정을 '작품'이라는 말보다 '책임'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게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그는 늘 무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낄 때마다 침묵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한 발짝 먼저 나섰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래서 그가 대학 연극반 회장을 맡았을 때는 서울대 음대 연극반이 학교에서 가장 소문난 인기 있는 동아리가 됐고, 연극원 시절에 만든 전무후무한 그의 독창적인 동작과 움직임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 회자한다. 현재 모두꽃의 동료들과 함께 꾸준히 세미나와 답사를 이어가면서 식물연극과 동학 연극을 모색해 나가는 것 또한 의식 있는 연극인으로서 보다 많은 이와 함께 나눌 미래를 준비하는, 책임 있는 행동이었던 셈이다.

"저는 사실 연기를 기쁘게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표현이 풍성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단체와 그룹에 대한 책임도 크게 느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슬픔도 많고, 모순도 많아요. 어쩌면 저 같은 사람이 희극을 하는 건지도 몰라요. 희극 하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발견한 모순을 타인에게서도 발견하는 사람들이거든요.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이제는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식물도 동학도,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황석정의 희극성은 밝고 가벼운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배우로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부조리와 상처를 견디고 통과한 끝에 얻어진 감각에 가깝다. 미투 운동을 통해 공연계의 구조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여배우에게는 부당한 요구를 감내하고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태도가 빈번하게 강요됐다. 여성 배우를 말초적이고 저속한 시선으로 재단하는 편견도 만연했다. 특히 개성적인 외모와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지닌 배우는 쉽게 오해받거나 배제되곤 했다.

황석정 역시 그 과정에서 어처구니없고 불합리한 수모를 적지 않게 겪었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상흔들은 그의 연기 안에 고독과 분노, 상처와 생존의 감각으로 축적됐다. 그리고 그 감정의 퇴적층은 마침내 황석정만의 배우성을 만들어냈다. 그의 웃음에는 삶을 가볍게 바라보는 낙관보다,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끝내 견뎌낸 사람의 냉소와 통찰이 담겨있다.

그가 무대와 화면에서 살아낸 인물들 역시 예쁘고 얌전한 여성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황석정은 상처 입고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 웃음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대상으로 소모되지 않는 사람,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인물들을 몸으로 구현해 왔다. 인물의 결핍과 과잉, 우스꽝스러움과 처연함을 분리하지 않고 한 몸 안에 공존시키는 것이 황석정 연기의 힘이다.

그래서 관객은 황석정의 연기를 보며 웃다가도 문득 불편해진다. 그의 희극성은 관객을 안심시키는 웃음에 머물지 않고, 웃음의 이면에 감춰진 폭력과 편견, 욕망과 고독을 드러낸다. 그 불편함은 관객에게 타인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과 내면 깊숙이 숨겨 두었던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황석정의 웃음이 그저 기교가 아니라 하나의 비평적 언어가 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황석정의 무대를 기다린다는 것은 한 배우의 신작을 기다리는 일만은 아니다. 일찍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질문과 대면해 왔고, 지금도 그 답을 찾아가는 한 배우의 지난한 여정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는 9월, 장진 작가의 '꽃의 비밀'(9월 12일~11월 30일)은 그 여정의 현재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선연(禪蓮) 김수미. 연극 평론가

▲ 전 월간 '한국연극'·'객석' 연극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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