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난 여자아이가 죽었다. 입에 담기도 힘들도록 잔인한 방식으로 유린당한 사체는 치아를 통해서 겨우 신원을 식별해야 할 만큼 처참했다. 가족이 아닌 누구라도 슬픔과 분노를 느낄 사건임은 자명하다. 즉각적인 '애(哀)'와 '노(怒)' 이후 반드시 찾아오는 건 복수심이다. 이 감정은 '살인범은 죽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든다. 대개 이 같은 상황에서 태어난 복수심은 법의 처벌 대신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뛰어넘는 벌이 주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복수극은 통쾌한 결말이든,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되는 시민의 파멸이든 법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사적 복수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영화 〈뱀의 길〉도 마찬가지다. 갖은 고문과 성폭행으로 목숨을 잃은 8살 딸의 복수를 직접 하려는 아버지 미야시타(카가와 테루유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 〈뱀의 길〉
미야시타는 니지마(아이카와 쇼)라는 의문의 남성과 함께 딸의 복수에 나선다. 맨 처음 범인으로 지목된 건 야쿠자 조직원 오츠키(시모모토 시로). 오츠키를 납치한 두 사람은 그를 곱게 죽일 생각이 없던 듯 폐공장에 묶어 놓고 며칠을 고문한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하던 오츠키는 돌연 '히야마(야나기 유)'라는 이름을 꺼낸다. 미야시타가 히야마를 배신하려 했고, 이에 히야마가 복수를 하려다가 미야시타가 아닌 그의 딸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였던 미야시타가 야쿠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전부터 히야마를 두려워하던 미야시타는 주저하지만, 왠지 의욕이 넘치는 니지마의 주도로 히야마까지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붙잡혀 온 히야마 역시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미야시타와 히야마, 오츠키가 서로의 무결함을 주장하는 이상한 풍경이 연출된다. 스스로의 작은 허물을 감추려는 세 사람의 대화 속에서 아동 대상 흉악범죄는 배신이나 거짓말과 비슷한 강도로 버무려진다. 이 추악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상황을 조종하는 인물은 니지마다. 낮에는 야쿠자를 고문하고, 밤에는 아무렇지 않게 본업인 학원 강사로 돌아가는 니지마는 교묘한 화술을 통해 세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배해 나간다. 복수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으로 보였던 부성애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결국 무대에는 '뱀의 길' 위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만이 남는다.
영화 〈뱀의 길〉
〈뱀의 길〉은 장르적 경향성 속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상기했듯 보통의 복수극은 사적 제재에서 오는 통쾌함, 혹은 복수 뒤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의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뱀의 길〉도 복수의 주체를 바꿔가며 끝내는 허무를 언급한다. 영화 내부에서 하나의 원처럼 흐르는 시간과 사건의 배치에서 이미 시작된 비극을 되돌릴 수 없음이 폭로된다. 그러나 더 잘 보이는 건 현대에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타락한 '뱀'으로서의 인간이다. 무구한 어린아이 한 명을 두고 얽힌 뱀들은 가해자로 살았지만 피해자로 죽는다. 이 부조리가 인간의 역사 안에 늘 실존한다는 당연한 사실은 영화의 서늘하고 불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영화 속 인물들을 전지적 시점에서 컨트롤하는 니지마의 평범한 일상 묘사는 〈뱀의 길〉에 기괴함을 더한다. 그는 학원에서 언뜻 수학, 혹은 물리학 공식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칠판에 적은 건 이 세상에 없는 기호의 나열이다. 마치 니지마가 극 중 인물들을 조종하기 위해 만든 계획의 암호 형태로도 읽히는 이 수식들은 작품을 스릴러의 영역에서 공포로 옮겨다 놓는 효과를 창출한다. 〈뱀의 길〉에서 수식의 의미가 범인의 정체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지점 역시, 인간성 상실에 관한 우화를 복수극의 껍데기에 파묻히지 않게 만드는 유효한 전략이다. 당초 'V시네마'로 제작됐던 영화의 투박한 영상미는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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