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헌절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첫 기념일이었다. 제헌절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한 데는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영역이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헌법정신을 앞장서 구현해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입법부인 국회인데 21대 국회 후반기 이후 국회가 과연 헌법의 취지에 맞게 행동해 왔는지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의 가장 중요한 근간 가운데 하나는 민주주의의 구현인데 지금의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자 민주주의 구현의 핵심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배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이러한 ‘소수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듯한 인상을 준다. 오히려 현재 국회는 수(數)로 밀어붙이는 다수결 자체를 민주주의의 가치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다수결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주의의 가치까지 구현됐다는 식의 주장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 다수결로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면서 상대의 동의를 끌어내려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수단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그러한 과정 없이 결론만 서둘러 내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온전한 민주주의라고 평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자주 ‘일하는 국회’를 내세우는데 국회가 일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 역시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상임위원회 배분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자신들이 원하는 11개 상임위원장을 먼저 차지하고 나머지를 상대 당에 넘기는 방식이 과연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절차인지 의문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 때문에 국회가 일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짚어야 할 또 한 가지는 우리 국회가 상임위원회 구성을 법정 기한 안에 마친 전례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거 사례에 비춰 볼 때 민주당이 유독 지금 상임위 구성을 서두르는 이유를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신속함’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반발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속함만을 앞세운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상반되는 태도라는 해석을 낳을 가능성만 키울 뿐이다. 또 민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사례가 드물지 않았는데 이 역시 우리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는지 의문이다. 현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박탈 문제 역시 민주당 강경파의 주도로 단독 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 문제마저 단독으로 통과시킨다면 이는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일방적으로 계몽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국민의힘은 어떻게든 제도적 절차에 충실하면서 국면을 전환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정작 당 대표는 장외 투쟁에 나서고 있으니 이 같은 모습 역시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스스로 핍박받는 처지에 놓였다고 여기더라도 제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면서 제헌절을 기린다고 말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 상당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헌법정신을 정치 현장에서 몸소 구현하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 채 헌법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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