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 익는 풀섶, 여치가 울어대던 산자락 나무 그늘에 누워 뭉게구름 부푼 창공을 바라봤다. ‘구름은 방랑과 탐구와 욕망과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라는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의 한 구절처럼 나는 구름을 사랑하며 구름을 바라보고 살아왔다. 아직 그 너머의 세계를 이정표 없는 꿈과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일지라도 아름다운 것을 마주하는 정중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흐르는 구름같이 머물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구름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소나기 직전의 먹구름과, 광활한 적운과, 흐린 밤하늘의 구름마저 나에겐 존재와 영원의 구할 수 없는 답이었다.
장마 사이로 잠시 햇빛이 내렸다. 대문 앞 담벼락에 능소화 꽃 무리가 화려하게 색을 차려입었다. 그럼에도 연주황 꽃 색은 사치스럽지 않다. 조선시대 임금이 장원급제 자의 관모에 꽂아준 어사화라지만 말이다. 꽃이 질 때 송이째 진다고 해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양반꽃이라고도 불렸다는데 이것이 ‘명예’나 ‘영광’의 꽃말이 붙여진 이유다.
능소화는 양반댁 규수들이 좋아한 덕에 ‘그리움’,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동시에 소유했다. 삼복더위와 세월에 지쳤지만 무뎌 잊힌 그리움을 수혈하고 싶다. 혹시 잃어버린 형용사를 찾을 수 있다면, 가는 세월에 지나친 기다림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대여, 능소화 빛 수혈을 부탁드리네. 장엄한 용기가 콸콸 보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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