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학처럼 오래 살라 했지만…복성군 태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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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학처럼 오래 살라 했지만…복성군 태지의 비극

뉴스컬처 2026-07-21 13:24: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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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성군 태지와 태항아리.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복성군 태지와 태항아리.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조선 왕실은 왕자나 왕녀가 태어나면 길지 정상에 탯줄을 묻었다. 사기그릇 두 개를 포개어 유해를 담고, 사주를 적은 대리석 태지를 곁들여 지하 석함 안에 밀봉했다. 지표면에는 주인공 이름과 생년월일을 새긴 태비를 세웠다. 주변에는 출입과 경작을 엄격히 막는 금표를 꽂아 신성한 구역을 철저히 보호했다.

무병장수와 왕조 안녕을 기원하던 고유 풍습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참담한 시련을 맞았다. 도굴꾼들이 값비싼 백자 항아리를 노려 봉분을 파헤치기 일쑤였다. 관리 여력이 턱없이 부족해진 구황실은 전국 주요 태실을 경기도 고양 서삼릉 능역에 강제로 이장했다. 훗날 왕으로 즉위할 경우 팔각 난간과 거대한 비석을 두르는 가봉 의식을 거치며 부도에 버금가는 석조물로 격상되던 권위가 무참히 짓밟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 복성군 태지와 태항아리 세트는 서삼릉 이장 유물과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정식 발굴 절차 없이 2009년 11월 20일 서상호 씨가 박물관에 기증했다. 원래 자리하던 태봉 위치는 영영 알 길이 없다. 황수영 박사가 1976년 고미술상에서 명문을 채록해 '한국금석유문'에 실었고, 1996년 미술품 경매전에 출품된 기록만 흐릿하게 남았다. 최소 1970년대 이전에 파헤쳐져 골동품 시장을 정처 없이 떠돌았음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복성군 태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복성군 태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정사각형 대리석 표면에는 '황명정덕사년 구월십육일 자시생 왕자 학수 아지씨 태 정덕십년 삼월초육일 축시장'이라는 한자가 뚜렷하게 각인됐다. 중종 4년(1509) 9월 16일에 태어난 왕자 학수의 태를 5년 뒤인 중종 10년(1515) 3월 6일에 묻었다는 뜻이다. 명문 가운데 '왕(王)' 자를 다른 글자보다 한 칸 높게 조각해 왕실 권위를 극대화했다.

학수는 두루미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애틋한 염원을 담은 아명이다. 족보와 실록을 꼼꼼히 교차 검증한 결과 중종과 경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장자 복성군 이미로 낱낱이 밝혀졌다. 처음 서성군으로 불리다 복성군으로 이름표를 바꿨다. 권력 암투는 무척 가혹했다. 김안로가 조작한 세자 저주 사건에 억울하게 휘말려 어머니와 험난한 유배길에 올랐고, 중종 28년(1533) 끝내 핏발 선 사약을 마셨다. 억울한 누명은 1541년 극적으로 벗겨지며 정민이라는 시호를 부여받았다. 전국 어디에도 비운의 왕자를 기리는 번듯한 태비나 태봉은 남아있지 않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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