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는 관객들을 향한 나홍진 감독의 충격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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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는 관객들을 향한 나홍진 감독의 충격효과

프레시안 2026-07-21 12:00:44 신고

3줄요약

* 영화 <호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호프>의 장르는 모호하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인간의 혈투를 그린다는 점에서 SF로 이해될 수 있겠으나, 거인의 외형으로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외계인의 시각적 효과는 괴수물에 가깝다. 모호한 것은 장르뿐만이 아니다. 마을을 수비하는 이들이 구해온 무기들은 어디서 났는지, 외계인들이 내뿜는 비린내의 정체는 무엇이며, 등장인물들조차 놀랐던 성기(조인성)의 승마 실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영화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미치겠네 정말", "아우 씨발, 나도 모르겄다"와 같은 범석(황정민)의 대사처럼, 등장인물들 또한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온전히 인식할 겨를 없이 사태를 마주하고 그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 장르도, 사건도, 인물도, 그 무엇 하나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채 극단적 추격의 사태로 관객을 내모는 서사의 압력만이 <호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왜 <호프>는 2시간 3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과도한 추격의 파토스로 관객을 내몰고 있는가. 그 파토스를 관객이 굳이 견뎌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영화의 배경 설정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반공이대올로기가 극심했던 시대적 설정, 휴전선 근처라는 지리적 설정, '호프'라는 영어 이름에 담긴 마을의 역사적 설정, 이 설정들이 이끄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석을 통해 인물들이 품고 있는 극단적 분노의 근원을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해하는 방식은 <호프>를 이해하는 중요한 분석적 접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영화를 보며 느낀 기이함은 이러한 분석만으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호프>를 통해서 느낀 감상은 성기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범석이 내뱉은 대사, "마음이 이상하다"는 감정 상태에 더 가깝다. '이상하다'는 미결정의 상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고,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상태야 말로 <호프>가 필자가 느낀 <호프>에 대한 감각이다.

이 모든 혼란은 숲 속에서 벌어진 추격신을 본 순간 발생한다. 성기와 사냥꾼 일당이 외계인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벤더)의 추격으로부터 도망가는 장면에서 추격자와 도망자 사이의 속도감은 명백히 인지적 상태를 교란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성기의 속도와 그 뒤를 추격하는 마베이요의 속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쪽이 비대하게 빠르다. 추격신에서의 긴장감은 도망자와 추격자 사이의 손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으로부터 발현된다. <호프>는 이 단순한 법칙을 가볍게 외면하며 성기보다 마베이요의 속도감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당연히 성기가 추격당해야 함에도 추격이 지연되는 것은 전적으로 편집의 몫이다.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 앵글과 극단적 슬로우모션 효과도 일정부분 추격신의 긴장을 끌어올리는데 한몫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긴장의 효과는 편집의 리듬감을 통해 완성된다. 편집은 각각의 쇼트에 담긴 역동적 힘을 조각내어 재결합함으로써 관객들이 상황을 새롭게 파악하고 인식하게 만든다. 요컨대 편집은 지각적 정보(쇼트)를 재조합하여 관객의 인지적 판단(편집)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영화적 장치다. 관객은 쇼트를 하나의 사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쇼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사건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존재의 속도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추격신을 긴장감 있게 처리한 편집의 힘은 <호프>가 지각적 정보와 인지적 판단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외계인의 폭주를 막기 위해 총구를 겨누는 성애. ⓒ플러스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시청각적 매체임을 상기해본다면 가장 중요한 지각적 정보들을 외면한 채 편집으로 오류를 봉합하려는 <호프>의 시도는 사뭇 무모하게 느껴진다. 이와 같은 영화적 태도는 누군가에게 한계로 인식되어 작품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지각적 정보와 인지적 판단 사이의 오인이 의도된 결과라면, 우리는 <호프>의 영화적 한계를 새롭게 사유해야만 한다. 돌이켜보면 <호프>가 교란한 시각적 정보와 인지적 판단의 예는 단지 숲 속의 추격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범석이 친구 덕구를 죽였을 때, 관객은 모두 그의 범행을 목도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문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죄없는 덕구가 범석이 쏜 총에 맞아 죽었음은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서사는 그들의 살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만한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덕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범석은 외계인을 제압해야 한다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한다. 이 순간 관객은 범석의 목표 수행이란 과제 앞에 도덕적 판단을 망각한 채 서사의 속도감에 매몰된다. 지각적 정보(덕구의 죽음)는 온전히 주어졌으나, 그로부터 마땅히 형성되어야 할 인지적 판단(범석의 책임)은 서사의 속도 앞에서 끝내 도착하지 못한다.

마을을 초토화한 외계인의 사체를 부검하는 장면에서는 반대로 과잉된 지각적 정보에 의해 인지적 판단이 망각된다. 부검을 집도하는 의사는 과도하게 희화화되어 있고 해부에 대한 묘사는 고어 장르를 연상시킬 정도로 과잉되어 있다. 잘리지 않는 피부와 뼈를 전기톱으로 자르는 행위 속에서 관객이 망각하는 것은 해부의 대상이 된 외계인의 존재다. 그녀는 어디서 왔는지, 왜 마을을 초토화했는지, 그녀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질문은 과잉된 장면의 외피 속에 파묻혀 흩어진다. 관객이 목도하는 지각적 정보(외계인의 해부)들과 그를 통해 사유하고 질문해야 할 인지적 판단(외계인의 존재) 사이의 오인은 외계인 아이의 사체를 발견함으로서 일정부분 해소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아이가 죽은 외계인의 자녀인지는 알 수 없다. 무엇도 정확히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 속에서 외계인에 대한 인지적 판단은 계속 유보될 뿐이다.

▲문 뒤로 진입해 들어가기 직전 두려움에 머뭇 거리는 범석. ⓒ플러스앰엔터테인먼트

이 모든 오인의 전략은 '해솔 아저씨' 캐릭터를 통해서 집대성 된다. 해솔 아저씨는 소문의 원천이며 마을 사람들 믿음의 근원이다. 하지만 그는 성애(정호연)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지 않다. 외계인에 대한 진술에서도 그가 목격한 외계인의 숫자(네 마리)와 시간이 지난 뒤 기억과 정서가 뒤섞여 재구성한 진술(세 마리)은 서로 어긋난다. 그의 인지적 판단(진술한 내용)이 지각적 경험(목도한 사실)과 어긋나는 순간 관객은 혼돈에 빠지며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호프>는 이러한 오인의 상황을 배변의 욕망이라는 신체적 반응으로 극복한다. 외계인을 마주한 극단적인 공포 앞에서 해솔은 삐져나오는 배변을 막기 위해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야 했다. 그 손가락을 다시 입가로 가져가는 해솔의 아이러니는 원초적 감각을 건드리며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이는 마치 숲 속 추격신의 극단적인 속도감 차이를 편집이 극복하는 양상과 닮아 있다. 극단적인 속도감에 따른 문제의식이 편집의 리듬감에 의해 봉합되듯이, 해솔의 원초적 감각이 그의 오인된 상황 인식을 무마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편집은 영화적 '환영'을 만들어내는 반면 해솔의 신체적 반응은 '실재적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해솔이 경험한 배변의 욕망은 극한의 공포가 야기한 결과일 수 있다. 극도의 두려움이 장 운동을 활성화하며 뜬금없는 아이러니를 야기한 것이다. 범석도 극한의 상황에서 배가 아파왔던 적이 있다. 한번도 경험해본적 없는 파국적 사태를 목도했음에도 그 사태에 대한 인지적 판단에 앞서 신체가 미리 반응한 결과다. 그들의 신체적 반응은 뇌의 작용 방식을 통해서도 설명 가능하다. 외부로부터 도착한 자극은 결코 순수한 상태로 뇌에 머물지 않는다. 감각기관이 포착한 정보는 과거의 경험, 학습된 범주, 우연이 들러붙은 정서의 얼룩과 뒤섞이며 비로소 '의미'라는 이름으로 응고된다. 이로서 뇌가 내리는 판단은 이미 오염된 해석의 산물이 된다.

하지만 신체는 해석의 지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자극이 '공포'나 '혐오'라는 이름을 얻기도 전에, 신체는 이미 떨고, 굳고, 배설한다. 신체적 반응은 판단이 완료된 이후 신체로 하강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판단보다 먼저 발생하여 판단을 배반하는 잉여다. 해솔 아저씨가 목격한 외계인의 숫자는 세 마리와 네 마리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그의 괄약근이 불려버린 순간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기에, 아직 기억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기에 진실이다.

▲외계인이 숨어 있는 가계 안을 들여다 보며 반응을 파악하려는 범석과 마을 주민. ⓒ플러스앰엔터테인먼트

<호프>는 관객의 지각과 인지 사이의 간격을 극중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스스로 경험케 한다. 만약 <호프>를 인과관계로 촘촘히 연결된 고전적 서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이 영화만큼 기괴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호프>는 그 모든 오인을 의도하며 관객을 원초적 감각의 차원으로 끌고간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신체적 반응을 통해 이 작품을 체험하길 요구한다. 판단이 유보된 자리에서 몸은 비로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낸다. 판단이 불가능한 극한의 공포 속에서 해솔과 범석 모두 배변의 욕망을 느낀 것처럼 이성적 판단이란 애초에 파국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기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스크린 너머의 안전한 의자에 앉아 세상의 파국을 분석하려는 태도는 비인간적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극중 범석과 같은 시선 속에서 <호프>를 겪어냈다면 우리 또한 그의 마지막 고백처럼 '마음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테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는 <호프>를 보고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았다. 이는 필자 또한 안전한 의자에 앉아 <호프>의 파국을 분석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호프>가 재현한 파국의 이미지에 이미 익숙해지고 무뎌진 결과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범석이 느낀 '이상한 마음'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마음이기도 하다.

▲영화 <호프> 메인포스터. ⓒ플러스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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