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이집트 고대 도시 룩소르에서 사막의 바람이 거대한 파라오의 신전 기둥 사이를 쓸고 지나간다. 그 바람처럼 수천 년 동안 이집트 대지를 호령하던 다신교의 신들은 기원후 3세기와 4세기를 지나며 서서히 무대 뒤로 사라져 지나갔다. 거대한 파라오 제국의 황혼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황혼은 차가운 어둠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품에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영성의 새벽이 고요히,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화려한 미라와 상형문자의 나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파라오 문명의 유산 끝자락에는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찬란한 꽃을 피운 이들이 존재했다. 바로 이집트의 자생적 기독교인인 ‘콥트(Copt)’인들과 그들의 예술인 ‘콥틱 미술(Coptic Art)’이다.
‘콥트’라는 단어는 원래 '이집트인'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기프티오스(Αἰγύπτιος)’에서 유래했다. 이집트가 아랍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 단어는 점차 ‘이집트의 기독교인’만을 지칭하는 말로 좁혀졌고, 오늘날에는 이집트 고유의 전례와 신앙을 고수하는 콥틱 기독교인들을 뜻하게 되었다. 이들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기 예수와 성가족이 헤롯 왕의 박해를 피해 피난을 왔던 거룩한 땅 이집트에서 ‘사도 마가(신약 성경 마가복음의 저자)’가 복음을 전파한 이래로, 오늘날까지 약 2천 년 동안 자신들의 신앙적 전통과 독창적인 예술 양식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수천 년 전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십자가 신앙을 받아들였을까? 이 거대한 종교적, 문화적 대전환은 결코 단순한 단절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전환점 사이의 격렬한 충돌이었으며 아주 은밀한 스며듦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 이후의 영생과 부활을 그 누구보다 갈망하며 이를 미술과 건축물로 표현하는 데 평생을 바친 민족이었다. 이들이 기독교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마주했을 때 느꼈을 전율은 상상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대신, 자신들의 핏속까지 흐르던 파라오 문명의 조형 언어와 기법을 그대로 빌려와 새로운 신앙의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고대 파라오 신전이 기독교의 예배당으로 탈바꿈하고, 고대 신화의 여신이 성모 마리아로 얼굴을 바꾸던 그 역동적인 과도기의 현장으로 들어가 볼 것이다.
룩소르 신전의 깊숙한 안쪽 방으로 걸어 들어가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기묘한 벽면과 마주하게 된다. 한 벽면 안에서 연결점이 없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이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이 벽면은 이집트의 태양신 아몬을 숭배하기 위해 세워진 신전의 일부였고, 벽돌 위에는 신성한 부조들과 상형문자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 후기인 4세기에 이르러 기독교가 공인되고 제국의 종교적 지형이 바뀌면서, 이곳은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방이자 초기 기독교인들의 성소로 탈바꿈하게 된다. 새로운 종교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당대의 석공들은 고대 이집트의 신비로운 부조들 위에 과감하게 흰색 석고로 두껍게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 매끄러워진 흰 바탕 위에 붉은색과 여러 색을 사용하여 정교한 로마 후기 양식의 프레스코(Fresco) 성화를 그렸다.
세월은 이 겹쳐진 벽면 위에 가장 정직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겉을 감싸고 있던 프레스코 석고층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수천 년 전 이집트 예술가들이 깎아 내려간 조각들과 그 아래에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로마식 채색 화풍의 인물들이 기묘하게 겹쳐졌다.
이 벽면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두 문명의 유산이 어떻게 하나의 물리적 공간 속에서 포개어지고 부딪치며 흘러왔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의 단면이다. 옛것을 완전히 파괴해 없애버린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바르고 덧그리는 방식으로 옛것들을 지켜온 이집트 땅만의 독특한 공존 방식을 우리는 이 벽화를 통해 엿보게 된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 나일강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필레 신전(Philae Temple)은 ‘이시스 여신’을 모시던 곳으로 고대 이집트 다신교 신앙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았던 장소다. 이곳 역시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룩소르의 신전처럼 새로운 정화의 의식을 치러야 했다.
신전의 한 벽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상형문자의 파도 속에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무늬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십자형으로 팔 길이가 정확히 일치하는 대칭 구조의 그리스식 십자가다.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인 초기 콥트 기독교도들은 고대의 신전들을 우상의 소굴로 보아 완전히 무너뜨리는 대신, 자신들의 성스러운 성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 바로 공간의 ‘정화와 봉헌(Consecration)’ 예식이었다. 그들은 이교도의 기운이 서려 있는 벽면과 기둥에 성수를 바르고 날카로운 끌을 사용하여 십자가를 깊고 선명하게 새겨 넣었다.
외곽을 둥글게 감싸 안은 원형과 그 안에서 매끄럽게 뻗어 나가는 십자가의 조형미는 당대 ‘헬레니즘-로마’ 양식의 기하학적 균형 감각을 선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정교하게 새겨진 십자가 주변으로는 여전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들이 채워져 있다. 이 극적인 시각적 대비는 구시대의 문자와 새 시대의 기호가 대치하는 팽팽한 영적 긴장감을 자아낸다. 부서진 신전의 벽 틈에서 피어난 이 작은 십자가 문양은 이집트 땅에 찾아온 새로운 신앙을 조용히 선포하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이집트 문명박물관의 매인 홀 중앙에는 ‘이시스 여신’과 아기 ‘호루스’의 조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검은 석조의 묵직한 질감 속에서 드러나는 여신의 모습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생명을 품은 어머니의 끝없는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하토르 여신’의 상징인 소뿔과 그 사이에 놓인 커다란 태양 원반 왕관을 쓴 ‘이시스’는 우주의 질서와 왕권을 수호하는 위대한 여신이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이 지닌 진정한 매력은 여신이 취하고 있는 아주 내밀하고 인간적인 포즈에 있다. 여신은 왼손으로 아기 호루스의 조그만 머리를 소중하게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쥔 채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미술의 철칙이었던 완벽한 좌우 대칭과 정면성의 법칙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어 조각 자체는 굳건하고 부동의 성스러움을 풍기지만, 모유 수유라는 행위가 주는 인간미는 감상자의 마음에 묘한 울림을 준다.
이 조각이 가진 의미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머물지 않는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 민중들의 마음 속 가장 강력한 수호자이자 어머니로 군림했던 이시스의 모유 수유 도상은 시간이 흘러 이 땅에 기독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생소한 외래 종교의 교리보다 눈에 보이는 친숙한 이미지가 힘이 더 센 것은 당연한 법이다. 이집트인들은 수천 년 동안 보고 믿어 온 이시스와 호루스의 구도를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자애로운 모성의 도상은 훗날 기독교 미술 전체를 관통하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유 수유 도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예술적 시초가 된다.
카이로 콥틱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이 벽화는 고대의 도상이 기독교라는 거름을 만나 어떻게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유물이다. 어두운 돌벽에 움푹 파인 아치형 벽감 안쪽에 그려진 이 그림은 언뜻 보아도 앞서 살펴본 이시스의 수유 조각상과 은근히 닮았다. 한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받치고 수유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손길과 구도가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미술을 풀어내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모 마리아의 머리 뒤에는 거룩함을 상징하는 둥글고 밝은 원형 후광이 빛나고 있으며, 그 양옆으로는 대칭을 이룬 날개를 활짝 펼친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굳건하게 성모자를 지키고 서 있다. 채색의 흔적은 희미하게 남아 있지만 아치 모양의 테두리를 따라 정교하게 그려진 식물 넝쿨 패턴의 장식은 이 공간이 얼마나 신성한 곳인지를 알려준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인물들의 얼굴, 특히 크고 둥글게 강조된 눈이다. 예술가는 인물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크게 그려진 눈망울은 감상하는 우리에게 인물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맑고 신성한 영성을 느끼게 한다. 굳게 다문 입술과 관람객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 깊은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상자는 어느덧 미술관의 소란스러움을 잊고 내면의 고요한 기도를 하게 된다. 투박하지만 내면의 영성을 극대화하는 이집트 콥틱 기독교 예술가들의 독특한 표현 기법은 훗날 비잔틴 예술과 유럽 중세 미술로 이어져 세계 미술사의 거대한 영향을 준다. 고대 이집트 흙에서 자라난 도상의 씨앗이 콥틱 기독교도들의 영적 정성을 거쳐 인류 미술사의 위대한 보물이 된 셈이다.
이제 시선을 카이로 콥틱박물관의 또 다른 전시실, 정교한 석조 부조들이 늘어선 공간으로 옮겨본다. 차분한 황토색 석회암 판 위에 새겨진 이 건축 장식 부조를 마주하면 고전 고대의 우아한 비례와 조형미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부조의 한가운데에는 큼직하고 두툼한 원형 화관이 아주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화관의 표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마치 나뭇잎이나 섬유로 만든 끈을 대각선 방향으로 일정하게 교차시켜 조밀하게 꼬아놓은 듯한 정밀한 무늬가 칼로 잰 듯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 화관 바로 밑에는 굵직하고 튼튼하게 내려앉은 기둥 모양의 받침대가 이를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그 아래는 좌우가 완벽한 직각의 계단식 대칭 구조를 이루며 정갈하게 깎여 있어 구조적 안정감을 준다.
이 부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 승리와 영광, 그리고 영원한 명예를 상징하던 전통적인 월계관(화관) 모티프를 초기 콥틱 석공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물려받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고전 헬레니즘의 세련된 조형 요소를 배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뛰어난 기하학적 감각과 석조 조각 기술을 활용하여, 거칠면서도 우아한 자기들만의 건축 장식 미술로 승화시켰다. 이 단순한 선과 완벽한 대칭의 균형 속에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콥틱 기독교 예술가들의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과도기 미술이 지닌 매력 중 하나는 하나의 문양이 지닌 여러 겹의 의미를 해석하는 재미에 있다. 콥틱박물관에 소장된 이 멋진 아치형 부조 역시 그러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물이다. 석조 아치의 둥근 공간 전체는 보기만 해도 풍성한 포도송이들과 여성의 얼굴 양옆에 가득 차 있다. 조각의 깊이가 깊어 아침 햇살이 비치면 여성의 얼굴과 포도송이 사이사이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며 생생한 생명력을 뿜어낼 듯하다.
아치의 정중앙 원형 프레임 속에는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한 여성의 얼굴이 조각되어 감상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인물은 누구일까? 미술사학자들은 이 인물을 고대 헬레니즘 신화 속 대지의 여신이나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Διόνυσος)’와 같은 인물의 흉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초기 콥틱 기독교도들의 눈에 이 부조는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해 보았다. 기독교에서 ‘포도나무와 포도 넝쿨’은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 15장 5절)”고 비유했던 신성한 구원의 길을 가리키는 핵심 상징이다. 또한 잘 익은 포도송이는 성찬례에서 예수의 피로 바쳐지는 거룩한 포도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들에게는 대지의 풍요와 수학의 기쁨을 뜻하던 친숙한 상징이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를 통한 영원한 구원과 희생을 상징하는 영적 매개체로 아주 은밀하게 옷을 갈아입은 것은 아닐지 조심히 상상해 본다. 이처럼 과도기 미술이 지닌 이 경계선상의 서툰 아름다움과 중의성은 콥틱 기독교 미술이 지닌 가장 매력적이고도 귀중한 예술적 유산이 아닐까…
거대하고 압도적인 파라오의 문명과 세련되고 정교한 그리스, 로마의 조형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슴 깊은 곳에서 정화하고 흡수하여 투박하지만 깊은 영성으로 재창조해 낸 콥틱 기독교인들… 그들의 흔적은 박물관의 차가운 유리창 안에 갇혀 있는 화석이 아니다. 그것은 뜨거운 태양 아래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영혼을 두드리는 살아있는 숨결이다.
파라오가 남겨놓은 거대한 황혼의 자락에서 조용히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며 피워낸 작은 십자가의 새벽빛, 그리고 그 경이롭고 소박한 첫걸음에서 우리는 찬란한 콥틱 미술의 진짜 얼굴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이어지는 연재 속에서 이집트 사막의 깊은 곳, 그리고 오래된 골목 구석구석에 숨겨진 그 아름다운 신앙의 조각들을 하나씩 더 깊이 만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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