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⑪ 예술인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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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⑪ 예술인패스 

문화매거진 2026-07-19 21:23: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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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미술관 입구 / 사진: 이응 제공
▲ 대구미술관 입구 / 사진: 이응 제공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얼마 전 대구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갔다. 

대구미술관은 2013년, 같은 전공을 했던 학부 친구들과 졸업 이후 만나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이 있다. 이후 12년 만이다. 오늘 글의 주제는 예술인패스니까,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2011년 제정되고 2012년 시행된 ‘예술인 복지법’을 바탕으로 2012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나에게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등장은 단순한 혜택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는데, 생활고 속에서 세상을 떠난 한 젊은 예술인의 죽음 이후 예술가의 가난과 불안정이 더 이상 개인의 낭만이나 선택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그 제도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예술인이라는 직업군이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호명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예술인패스는 2014년 시범 시행을 거쳐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2015년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나는 그 다음 해 예술인 복지 지원금 300만 원을 받았다. 이후 나는 주변 동료 작가들에게 자발적 홍보대사인 것처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이후 재단은 예술인들을 위한 다양한 공공사업을 진행했고, 당시 주거 불안으로 고통받던 나는 예술인들을 위한 금융상품과 주거 안정에 관한 제도적 안전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만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제도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10년짜리 전세 임대가 만료되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으로 예술인복지재단의 전세임대지원을 떠올리고 있다. 물론 그 제도에 기대어 사는 동안, 그 제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자생력이 생기기를 낙관적으로 상상하면서 말이다.

다시 대구미술관으로 돌아와 보자. 이 순간을 위해 나는 기차 안에서부터 예술인패스 카드를 찾기 위해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했다. 기억이 가물한 비밀번호를 몇 번이고 고쳐 써가며 겨우 패스카드를 다운로드했는데, 8년 전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예술인패스를 사용했던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관은 수요일과 토요일 야간개장 시간에 무료관람이 가능했다. 오후 6시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료관람 시간이 아직 30분쯤 남아 있어서 입구 주변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고, 매표소 앞에는 아직 줄을 선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틈을 타 매표소 직원에게 당당히 말했다.

“성인 한 명이요.”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곧 있으면 무료입장인데 굳이 돈 내고 들어가는 저 바보는 뭐지?’하는 표정이었을 것 같다. 나는 그 표정에 작은 반전을 더하듯 “예술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인패스를 보여주자 직원분은 “네, 발권 도와드리겠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하고 말했다. 모든 과정이 빙판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매끄럽게 지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예술인으로 누릴 수 있는 아주 작은 특권을 만끽했던 나는, 12년 만에 찾는 대구미술관에서도 내심 비슷한 장면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내가 예술인이라고 밝혔을 때, 주변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려왔던 것 같다.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만 하는 예술을 한다니, 너는 부자니?” 혹은 그 반대로 “부자도 아닌데 예술을 한다면 돈은 되니?” 하고 묻는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인이라는 이름 위에 환상을 덧씌워 바라보는 시선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주체적인 삶,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과 판타지를 만들어, 진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타지 속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캐릭터에 내 얼굴을 씌워 바라보는 느낌이다.

무엇이 되었든, 양쪽 모두 그런 시선과 태도 속에서 진짜 ‘나’와는 괴리된 소외를 경험한다. 부자도, 낭만적인 가난뱅이도,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름의 판타지도 아닌 채로, 그저 작업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현실은 그 시선들 사이에서 자주 흐릿하다.

그래서 어쩌면 예술인패스는 내가 예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도 안에서 잠깐 확인받는 작은 증표에 가까운 것 같다. “예술인입니다”라고 말할 때 아주 잠깐이나마 내 삶의 방식이 공적으로 발권되는 기분을 주는 대상이 된다.

친구 두 명과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성인 입장권을 발권하기 위해 키오스크 무인 발권기 앞에 섰다. 1인당 입장료는 1,000원. 시립미술관 관람료가 이렇게 저렴하다니...

무인 발권기에서 뽑으면 간편하기 그지없는 시스템 앞에서, 나는 굳이 친구 두 명을 제외한 내 티켓을 따로 뽑기 위해 안내원을 찾아갔다. 예술인패스를 보여주고 신분증 확인까지 거친 끝에, 300원 할인된 가격인 700원으로 티켓팅이 되었다.

▲ 예술인패스로 발권한 티켓 / 사진: 이응 제공
▲ 예술인패스로 발권한 티켓 / 사진: 이응 제공


표를 받고 나니 약간 황망한 웃음이 나왔다. 300원 할인이라니, 참 소박한 금액 아닌가. 아무래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그 장면만큼 면이 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럴 때 아니고서 어디다 써먹으랴. 어쨌거나 기차 안에서 생각나지 않은 비번을 찾아가며 발권한 예술인패스는 무사히 제 역할을 했다. 약간 머쓱한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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