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비누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아지면 이상한 변화가 나타날 때가 있다. 새 비누를 사용할 때는 풍성하게 나던 거품이 잘 생기지 않고 표면도 딱딱하게 굳거나 갈라진다. 단순히 크기만 작아졌을 뿐인데 비누가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유튜브 채널 ‘사물궁이 잡학지식’에서도 다룬 이 생활 속 궁금증에는 비누의 화학적 구조와 수분 변화가 관련돼 있다.
기름때를 씻어내는 비누의 원리
비누가 어떻게 때를 씻어내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비누 분자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비누 분자에는 물과 잘 섞이는 친수성 부분과 기름에 잘 달라붙는 소수성, 즉 친유성 부분이 함께 들어 있다. 이처럼 물과 기름 양쪽에 작용하는 물질을 계면활성제라고 한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툴로 생성한 자료사진.
비누가 물과 만나면 소수성 부분은 물을 피해 안쪽으로 모이고 친수성 부분은 바깥쪽에서 물을 향한다. 이 과정에서 비누 분자들이 둥글게 모인 ‘미셀’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손에 묻은 기름때를 비누로 문지르면 비누 분자의 소수성 부분이 기름때에 달라붙는다. 이후 여러 비누 분자가 기름때를 감싸 미셀을 만들고 물로 헹굴 때 기름때를 품은 미셀이 함께 씻겨 나간다. 비누가 물만으로 잘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를 제거할 수 있는 이유다.
비누는 유지 성분인 트리아실글리세롤에 물과 강염기를 넣고 가열하는 ‘비누화 반응’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트리아실글리세롤의 에스테르 결합이 끊어지고 지방산 세 분자와 글리세롤 한 분자로 가수분해된다. 여기서 나온 지방산이 강염기의 양이온과 결합해 지방산의 염을 형성하는데 이 물질이 바로 비누다.
작아진 비누에서 거품이 줄어드는 이유
비누는 사용할수록 조금씩 닳아 작아진다. 그런데 크기가 작아져도 거품이 잘 나는 비누가 있는 반면 유독 단단하게 굳어 거품이 거의 생기지 않는 비누도 있다.
비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 분야는 아니어서 전문가들도 이 현상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알려진 화학적 특성을 종합하면 비누 내부의 수분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비누화 반응 과정에서는 강염기인 수산화나트륨이 완전히 반응하지 않고 비누 내부에 일부 남을 수 있다. 수산화나트륨에는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 스스로 녹는 ‘조해성’이 있다. 비누를 물기가 많은 곳에 오래 두면 쉽게 눅눅해지는 데에도 이런 성질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유튜브 '사물궁이 잡학지식'
습한 화장실에 놓인 비누는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했다가 다시 건조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 수산화나트륨이 소실되고 수분 증발만 이어지면 비누 내부는 점차 마른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비누 표면이 갈라지거나 딱딱하게 굳고 거품도 잘 나지 않게 된다.
이처럼 거품이 줄어든 작은 비누를 물에 오랫동안 담가두면 다시 거품이 잘 생기는 경우가 있다. 비누 내부로 수분이 다시 스며들기 때문이다. 다만 수분이 증발해 비누가 다시 마르면 거품은 또 줄어들 수 있다.
크기가 작아져서 거품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비누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표면적이 줄었기 때문에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는 설명도 나온다. 그러나 작은 비누 조각 여러 개를 한데 모아 사용하면 거품이 다시 잘 생기는 시험 결과를 고려하면 단순한 표면적 감소만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다 써가는 비누에서 거품이 잘 나지 않는 주된 원인은 비누의 크기보다 내부 수분의 감소에서 찾을 수 있다. 비누가 오래돼 딱딱하게 굳고 갈라졌다면 크기가 작아져서라기보다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전자레인지에서 비누가 부풀어 오르는 까닭
비누 내부에 수분이 있다는 사실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용하던 비누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면 비누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레인지 안의 마그네트론은 고압 전류를 이용해 마이크로파를 만든다. 이 마이크로파가 비누 속 물 분자에 작용하면 물 분자는 에너지를 흡수해 1초에 약 24억 5000만 번씩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정렬 방향을 바꾼다.
물 분자의 방향이 매우 빠르게 바뀌는 과정에서 분자끼리 충돌하며 열이 발생한다. 이 열로 비누 속 수분이 가열돼 수증기로 변한다. 수증기는 같은 양의 물보다 부피가 훨씬 크기 때문에 비누 내부를 밀어내며 전체 크기를 부풀린다.
새 비누는 상대적으로 두껍기 때문에 마이크로파가 내부까지 침투하기 어렵고 아직 사용하지 않아 수분도 많지 않으므로 크게 부풀지 않는다. 반면 여러 차례 사용한 비누에는 수분이 들어 있어 전자레인지에서 더 크게 부풀 수 있다.
다만 전자레인지에서 부풀어 오른 비누는 조직이 푸석푸석해지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비누가 부푸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집에서 직접 실험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아진 비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쓰는 방법
크기가 작아져 손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비누도 보관과 사용 방법만 바꾸면 끝까지 활용할 수 있다. 비누가 작아졌다고 해서 세정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에 적셔 거품을 충분히 낼 수 있다면 일반 비누처럼 손 씻기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작은 비누 여러 개가 남았다면 물이 잘 빠지는 비누망이나 비누 주머니에 모아 사용하는 방법이 간단하다. 망이 비누 조각을 잡아주기 때문에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 물에 적신 뒤 망을 비비면 작은 조각도 흩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품을 낼 수 있다.
사용한 비누망은 세면대나 욕조 바닥에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좋다. 흐르는 물로 가볍게 헹군 뒤 고리에 걸어 물기를 빼고 말린다. 비누가 물에 오래 닿아 있으면 표면이 쉽게 무르고 빨리 녹을 수 있다. 물이 고이지 않는 비누받침대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작은 비누를 새 비누에 붙여 쓰는 방법도 있다. 두 비누의 맞닿을 부분을 물에 살짝 적신 뒤 작은 조각을 새 비누 표면에 눌러 붙인다. 이후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말리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비누를 오래 물에 담가 지나치게 무르게 만들면 형태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비누 조각을 물에 녹여 액체비누처럼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은 피하는 편이 좋다. 고형비누에 물을 섞으면 원래 제품과 다른 상태가 되고, 성분 농도와 보존 조건도 달라진다. 가정에서 임의로 희석한 비누는 세균이나 곰팡이 증식을 막는 보존 조건과 사용 가능 기간을 확인하기 어렵다.
오래 보관한 비누에서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나거나 이물질과 변색이 보이면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 후 피부가 붉어지거나 가렵고 따가운 증상이 나타나도 즉시 사용을 중단한다. 용도가 다른 비누 조각은 한 망에 섞지 않고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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