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정원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코로의 숲’이 보여준 냉대 기후와 유럽식 정원의 독특한 융합, ‘도카치 힐즈’의 농업과 식문화가 어우러진 언덕, ‘나카사쓰나이 미술촌’과 ‘롯카노모리’가 증명했다. ‘가제노가든’은 드라마의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에니와시의 ‘하나후루’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이 정원으로 표현돼 있다. 홋카이도의 대지는 거대한 하나의 정원과도 같았다.
이 여정 속에서 감탄한 조경의 미학 외에도 눈에 띄는 장면은 일본 기업들이 정원을 매개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롯카테이(六花亭) 같은 현지 기업들은 이윤이라는 기업의 본래 목적에만 안주하지 않고 대지의 혜택을 사회로 환원하며 자연과 지역공동체를 함께 치유하고 있었다. 정원을 통해 기업과 자연, 지역과 시민, 공동체와 환경이 함께 만나 서로를 치유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 기업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소극적 의미의 ESG나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CSV(공유가치창출)를 넘어 ‘네이처 포지티브(Nature Positive) 경영’에 나서고 있다. 훼손된 자연을 더욱 풍요로운 상태로 되돌리고 공동체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우리나라 기업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기업의 영리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정원을 통해 취약한 자연과 지역사회라는 하층의 경계선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국내 일부 기업은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도심 속에 세계적인 거장의 자연주의 공공정원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기증하거나 숲 조성 및 문화예술 지원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의 정원은 인위적인 담장을 높이기보다 자연 그대로를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미학과 비움, 여백을 중시했다. 오늘날 기업들이 조성하는 정원 역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단순히 볼거리를 채워 넣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다시 연결되고 공동체가 회복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자기 집단의 이익과 안정을 최고로 치는 삶에 안주하려는 순간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공학과 권력 쟁취에 매몰돼 있는 정치권, 공교육과 교권은 사라지고 사교육과 입시만이 전부가 된 교육계에도 마찬가지다. 정원이 보여주는 비움의 미학, 사회적 가치, 치유와 회복, 자연과 생명에서 지속가능한 미래의 실마리를 빌려 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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