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정치가 마주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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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정치가 마주한 얼굴들

경기일보 2026-07-19 19:27: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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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주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국회를 떠난 뒤 듣는 질문이 있다. “왜 요즘은 SNS에 정치 이야기를 쓰지 않나요.”

 

정치의 중요성을 잊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회라는 광장을 벗어난 뒤 다른 측면에서 정치를 더 자주,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다만 지금의 나는 공공 산하기관의 일원이다. 정치 중립에 대한 언어는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기에 현실 정치의 파고 위에 쉽게 말을 얹지 않을 뿐이다.

 

4월, DMZ에서 열린 세계문학 페스타에서 비평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프리야 바실을 만났다. 얼마 전 그에게서 도착한 편지에는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레비나스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순간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마주한 이상 우리는 그를 외면할 자유가 없으며 그를 향한 책임은 이미 내게 주어져 있다는 선언이다.

 

그 문장들을 읽으며 나는 헌법기관이라 불리는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헌법기관이란 소속된 정당의 목소리를 기계적으로 복기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떤 얼굴의 고통에도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자리다. 다양한 ‘얼굴’을 대신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는 평화를, 누군가는 문화와 예술을,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과 청년, 노인, 환경과 지역을 이야기하고 풀어내야 한다.

 

물론 정치에는 늘 ‘시대정신’이라 불리는 준엄한 우선순위의 숙제가 가로 놓여 있다. 그러나 그 무게에 압도돼 다른 삶의 과제들이 ‘차선’이라는 이름으로 마냥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결코 국민의 얼굴 뒤에 서열을 매기거나 번호표를 붙일 수 없는 영역이어야 한다. 정치는 자주 어떤 특정 현안만이 이 시대의 유일한 숙제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이곳에서도 시작된다. 최선이었던 것이 차선도 아닌 골치 아픈 문제로 뒤바뀌는 것이다. 그 모습은 대부분 선거가 끝나고 일어난다. 정치의 풍경이 지독한 모순으로 읽히는 순간이다.

 

정치의 문법을 보며 서글픈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정치인이든, 여론을 주도하는 평론가와 논객이든, 광기 어린 눈빛을 거두고 성숙한 눈으로 현안을 마주하는 일은 도대체 불가능한 것일까. 촌철살인이 아닌 독기 어린 말과 번뜩이는 눈이 당연한 태도이자 유능함의 척도가 돼버린 현실. 뜨겁게 약속했던 현안마저 정쟁의 불씨가 돼 갈등으로 점화된다면 그 논쟁 속에서 ‘차선책’으로 밀려난 민생들은 얼마나 더 초라해지겠는가. 본질은 같다. 정쟁의 불길 속에서 우리가 마주 봤던 ‘국민의 얼굴들’이 모두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의 풍경은 국민이 내어준 삶의 숙제를 푸는 대신 정치의 중심에서 생산된 갈등을 도리어 국민이 풀고 있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국민이 정치의 안위를 염려해야 하는 주객전도의 풍경이 서글프다.

 

국회를 떠난 뒤 나는 평화를 위해, 문화예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소외된 이웃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정치는 이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먼저 걸어가야 한다. 스스로 만들어낸 미로와 손익의 계산기에서 벗어나 그동안 보지 못했던 국민의 진짜 얼굴을 다시 온전히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정치개혁일지도 모른다. 정치가 번호로 매길 수 없는 숙제를 푸는 환대를 깨달을 때, 약속한 것을 저버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민주주의의 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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