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경의 나비효과] 오비맥주 살린 어피니티, 홈플러스 무너뜨린 MBK… 사모펀드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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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경의 나비효과] 오비맥주 살린 어피니티, 홈플러스 무너뜨린 MBK… 사모펀드의 두 얼굴

폴리뉴스 2026-07-19 10:10:23 신고

[편집자주] 홈플러스가 2000억원의 긴급 자금으로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20일 법원의 회생 속행 여부 결정을 앞두고 불씨는 여전히 위태롭다. 앞선 두 편에서 이 회사의 몰락과 사라질 유산을 기록했다면, 이번에는 그 몰락을 부른 자본 자체를 들여다본다. 오비맥주를 1위로 키운 것도, 홈플러스를 파산 직전으로 몬 것도 사모펀드였다. 무엇이 두 회사의 운명을 갈랐는지, 그 경계를 짚어본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홈플러스가 회생의 불씨를 되살렸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 16일 이사회를 열어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을 최종 승인했고,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이 대출금 전액을 보증하기로 했다.

여기서 DIP란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이 법원 감독 아래 사업을 이어가도록 대는 운영자금을 말한다. 이 2000억원은 밀린 임금과 협력업체 납품대금을 치르고, 문 닫은 점포를 다시 열어 상품을 채우는 데 쓰인다.

회사를 온전히 되살리는 자금이 아니라,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에게 가장 먼저 꽂는 수액에 가깝다. 멈춰 선 회사가 다음 처치를 받을 때까지 시간을 버는 응급 조치다. 2000억원은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3일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며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법원은 회생계획을 이어갈 최소 운영자금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30년 역사의 대형마트를 파산 문턱에 세웠고, 20일 즉시항고 기한까지 이 돈이 마련돼야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법원이 회생 속행을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법원이 밀어낸 자리를 국회가 떠안았다. 자금 조달을 중재한 것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였다. 을지로위원장 민병덕 의원(정무위 · 더불어민주당 · 안양동안갑)은 1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으로 홈플러스에 생계를 기댄 30만 명이 파산의 공포에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면서도 "2000억원이 마련됐다고 해서 홈플러스가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대주주가 책임 있는 경영 정상화 계획을 내놓고 실제로 이행해야 한다"며 MBK를 향해 9월 4일까지 휴업 점포의 영업을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주목할 것은 시점이다. 그동안 자금의 절반만 보증하겠다던 대주주가 전액 보증으로 돌아선 때가, 국회의 청문회 예고와 정확히 맞물린다. 청문회라는 압박이 없었다면 김 회장의 결단도 나오지 않았을 카드다.

여당 지도부에서도 "이번 자금 투입을 일시적 면피용으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한병도 원내대표 직무대행)는 경계가 나왔다. 증언대에 서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면피가 아니냐는 시선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국회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을지로위원회는 청문회 추진과 별개로 21일 정무위원회 현안질의를 열어 휴업 점포 피해와 고용 불안, 협력업체 미지급 대금, 회생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기로 했다.

박지혜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이번 자금 지원을 "인공호흡기를 단 것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고, "무리한 인수 부채를 기업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알짜 매장을 매각한 '약탈적 금융'의 민낯이 오늘의 위기를 자초한 근본 원인"이라고 MBK를 겨눴다.

응급 처치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회가 감시를 늦추는 순간 회생의 동력도 함께 식을 수 있고, 그 책임은 중재에 나섰던 을지로위원회와 정무위의 몫으로 남는다.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그대로다. 애초에 흑자를 내던 마트가 왜 사모펀드의 손에서 파산 직전까지 갔는가. 그리고 사모펀드란 대체 무엇인가.

 

같은 사모펀드, 갈린 두 운명; (왼쪽) 운영자금 문제로 영업을 중단한 홈플러스 파주운정점 입구가 지난 14일 쇼핑카트로 막혀 있다. (오른쪽) 한 대형마트에 오비맥주 카스 제품이 진열돼 있다.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뒤 파산 기로에 섰고, 오비맥주는 2009년 KKR·어피니티에 인수돼 만년 2위에서 1위로 올라선 뒤 지금도 시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같은 사모펀드, 갈린 두 운명; (왼쪽) 운영자금 문제로 영업을 중단한 홈플러스 파주운정점 입구가 지난 14일 쇼핑카트로 막혀 있다. (오른쪽) 한 대형마트에 오비맥주 카스 제품이 진열돼 있다. 홈플러스는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뒤 파산 기로에 섰고, 오비맥주는 2009년 KKR·어피니티에 인수돼 만년 2위에서 1위로 올라선 뒤 지금도 시장을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의도의 공식 언어가 된 '약탈'

홈플러스 사태 이후 여의도에서 '약탈적 사모펀드'는 하나의 공식 언어가 됐고, 사모펀드 전체를 기업사냥꾼으로 보는 정서도 짙어졌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정말 그런 존재라면, 지금 정부가 첨단산업을 키우겠다며 대규모 민간 투자 자본을 부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매일 쓰는 쿠팡을 키운 것도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사모 자본이었다. 문제는 사모펀드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좋은 자본과 나쁜 자본을 가려낼 기준이 없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그 답을 찾으려면 10년 전, 홈플러스의 주인이 바뀌던 새벽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5년 9월 초, 영국 테스코가 내놓은 홈플러스를 두고 마지막 승부가 벌어졌다. 유력한 후보는 KKR과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사실상 선정됐다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MBK파트너스가 인수가를 높이고 노조 위로금까지 떠안겠다는 조건을 던지며 막판에 판을 뒤집었다. 최종 인수가는 약 7조2000억원. 당시 기준 국내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이자, 10년 뒤 파산의 씨앗이었다.

여기서 하나의 가정을 세워 본다. 그날 홈플러스를 품은 손이 MBK가 아니라 어피니티였다면. 어피니티는 만년 2위였던 한 맥주회사를 인수해 1위로 끌어올린 뒤 원주인에게 두 배 넘는 값으로 되판 자본이었다. 그 회사가 오비맥주다.

오비맥주를 1위로 키운 손

2009년, AB인베브는 오비맥주를 약 2조3000억원에 KKR과 어피니티 컨소시엄에 넘겼다. 오비맥주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오르는 국내 1세대 맥주 명가이자 한때 두산그룹의 상징이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의 구조조정 속에 벨기에 자본으로 넘어간 회사였다. 공교롭게도 홈플러스 역시 같은 외환위기에 삼성 손을 떠나 영국 테스코로 넘어갔으니, 한국 유통과 한국 맥주를 대표하던 두 회사가 나란히 그 겨울에 국적을 바꿨다.

그런 오비맥주를 사모펀드가 사들인 2009년의 매각도 장사가 안돼서가 아니었다. AB인베브는 한 해 전 미국 앤하이저부시(버드와이저)를 인수해 세계 최대 맥주기업으로 올라섰는데, 그 합병으로 짊어진 막대한 빚을 줄이려 알짜 자산부터 팔아야 했다. 흑자 기업이 본사의 재무 사정 탓에 매물로 나온 것으로, 홈플러스가 테스코 본사의 분식회계로 팔린 것과 닮은 구조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었다. AB인베브는 매각 계약에 5년 안에 오비맥주를 되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담아 두었다. 언젠가 반드시 되찾겠다는 뜻이었다. 사모펀드는 되사갈 주인을 위해 회사를 키우는 5년을 맡은 것이다.

당시 오비맥주는 하이트에 밀린 만년 2위였다. 이들이 택한 방식은 사모펀드에 대한 통념과 정반대였다. 인력을 줄이고 자산을 파는 대신, 우수 인력을 투입하고 생산 설비에 과감히 투자했으며 전국 도매망을 다시 짰다.

인수 2년 만에 오비맥주는 하이트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탈환했다. 보유 기간 매출은 연평균 16.1%, 영업이익은 24.6%씩 늘었다. 그러자 AB인베브는 계약상 권리를 앞당겨 행사해, 2014년 오비맥주를 약 6조원에 되사들였다. 5년 전 판 값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사모펀드는 3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고 떠났고, 오비맥주는 다시 벨기에 원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명지대 임미희,김민영 교수는 이 거래를 두고 "사모펀드가 단순한 기업사냥꾼이 아니라 기업의 근본 경쟁력을 키우는 적극적 소유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분석했다. 그렇게 다져진 체력은 지금도 이어져, 오비맥주는 지난해 매출 1조7000억원으로 인수 이래 최대 실적을 내며 국내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주력 카스는 가정용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쥐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보고펀드가 인수한 버거킹은 전문경영인 영입과 24시간 영업 확대로 3년 만에 실적이 급성장했는데, 인수 당시 3300명이던 임직원이 매각 시점에는 5500명 이상으로 오히려 늘었다. 사모펀드가 반드시 고용을 줄이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MBK조차 일본에서는 골프장 운영사 아코디아를 인수해 원금의 네 배를 회수하는 성공을 거뒀다. 사모펀드를 한 가지 표정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오비맥주와 홈플러스는 무엇이 달랐나. 두 거래 모두 인수 대상의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빚을 내 사들이는 차입매수(LBO)였다는 점은 같았다. 갈림길은 그 빚을 어디에 썼느냐에 있었다.

어피니티는 오비맥주에 돈을 넣어 경쟁력을 키운 뒤 그 값을 알아본 인수자에게 넘겼다. 반면 MBK는 홈플러스의 부동산 가치만으로 투자금 회수가 된다고 보고, 인수 직후부터 알짜 점포를 팔아 빚 갚는 데 몰두했다. 회사에 재투자돼야 할 현금이 임대료와 이자로 빠져나가는 사이, 흑자 기업의 체력은 소진됐고 온라인 전환의 실탄도 남지 않았다. 

회사를 키워 되판 자본과 뼈대만 남기고 팔아치운 자본. 이 차이가 한쪽은 살리고 한쪽은 무너뜨렸다. MBK가 홈플러스의 회생 신청 직전까지 단기채를 발행한 대목에 이르면, 불운과 선택의 경계는 뚜렷해진다.

그렇다고 사모펀드를 없앨 수 있나

그럼에도 사모펀드를 자본시장에서 몰아낼 수는 없다. 이미 경제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1195개, 출자약정액은 167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2004년 15개로 출발한 시장이 20여 년 만에 이만큼 커졌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투썸플레이스)와 쓰는 카드(롯데카드)가 사모펀드의 손을 거쳤거나 그 안에 있고,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로 성장한 쿠팡의 뒤에도 사모 자본이 있었다.

더 큰 역설은 지금 벌어진다. 정부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앞세워 민간 금융권과 투자 자본을 첨단산업으로 끌어들이고, 벤처펀드와 사모펀드가 굴리는 대규모 자금도 그 생태계의 한 축이다. 자본을 산업의 동력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국회는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 규제를 검토한다. 한 손으로 자본을 부르고 다른 손으로 미는 격이다.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의원(정무위·더불어민주당·평택병)은 최근 한 포럼에서 "균형 잡힌 제도 설계를 통해 자본이 혁신과 성장으로 흘러가고, 그 성과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법조 실무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법무법인 광장 김수연 연구위원은 "한두 건의 사례로 사모펀드의 역기능만 부각하는 것은 무리"라며 "미국에서도 규제 법안이 제도화되지 못한 것은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의 표적이 빗나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홈플러스를 겨냥한 규제가 정작 국내 토종 운용사에만 적용되고, MBK처럼 자금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글로벌 사모펀드는 비켜갈 수 있다는 우려다. 겨냥한 표적은 놓치고 엉뚱한 곳만 옥죄는 역차별의 위험이다.

MBK는 지금, 팔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는 MBK의 국내 전략에도 변곡점이 됐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MBK가 홈플러스 사태로 당분간 국내 신규 투자는 어렵고, 보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MBK는 지금 사는 국면이 아니라 파는 국면에 있다. 홈플러스라는 실패를 계기로 손에 쥔 자산을 서둘러 현금화하는 수확기에 접어든 것이다.

가장 발 빠른 매물은 국내 1위 골프장 운영사 골프존카운티다. 2018년 투자한 이 자산은 펀드 8년차를 맞아 회수 시점이 됐고, MBK는 모건스탠리를 앞세워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홈플러스와 롯데카드가 담긴 펀드의 회수가 막힌 상황에서, 안정적 현금흐름을 내는 골프존카운티를 먼저 팔아 성과를 증명하려는 카드로 읽힌다. 여기에 일본 시니어케어 기업 재팬웰빙을 약 2조원에 매각하며 대규모 회수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해외에서 수조원을 회수하고 신규 투자까지 이어가면서도, 정작 파산 기로에 선 홈플러스에는 오랫동안 직접적인 자본 투입 대신 대출과 지급보증에 머물러 왔다. 이번 2000억원 전액 보증도 파산이 코앞에 닥치고 국회가 중재에 나선 뒤에야 나왔다.

민병덕 의원은 "MBK가 10년간 배당과 자산 매각으로 5조원이 넘는 현금을 회수하고도 회생 자금 조달에는 침묵해 왔다"며 "단순한 기업 부실이 아니라 약탈적 사모펀드가 부른 민생 참사"라고 규정했다. 펀드별로 자금이 분리 운용돼 특정 회수 자금을 다른 기업에 그대로 넣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지만,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법적 구조가 아니라 대주주가 어디에 먼저 돈을 쓰느냐는 우선순위다.

MBK가 쥔 유통 · 소비 자산은 홈플러스만이 아니다. 2019년 약 1조3810억원에 인수한 롯데카드는 8년째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과 홈플러스 관련 채권 793억원의 손실까지 떠안았다. 한 사모펀드가 쥔 자산들이 서로의 부실을 나눠 지는 구조다.

'좋은 사모펀드'라 해서 무조건 길을 터줄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오비맥주를 살린 어피니티는 지난해 롯데렌탈을 약 1조6000억원에 인수하려 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올 초 제동을 걸었다. 어피니티가 이미 SK렌터카를 보유해, 렌터카 1위와 2위가 한 지배 아래 놓이면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자본의 선의와 별개로 독과점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다.

국회가 홈플러스 하나에 이토록 매달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국회가 사기업, 그것도 외국계 자본과 사모펀드가 얽힌 회사의 회생에 팔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시장 논리에 맡길 일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비판이다. 그 비판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일자리다.

도소매를 아우르는 유통업은 제조업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산업으로, 취업자만 300만 명을 웃돈다. 대형마트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직영 노동자뿐 아니라 입점 소상공인, 납품 협력업체, 물류와 배송까지 고용의 사슬이 함께 끊긴다. 홈플러스에 걸린 생계가 30만 명으로 헤아려지는 이유이며, 사모펀드가 유통 기업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곧 수많은 일자리의 운명이 되는 이유다.

국회가 나선 것은 특정 기업이나 그 대주주를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통 산업 전체에 걸린 고용의 안전망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모펀드 하나를 살리는 일과 30만 생계를 지키는 일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걸린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앞선 편에서 짚었듯,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국민연금은 상환전환우선주 형태로 6121억원을 출자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이 이 인수의 종잣돈이 된 것이다. 그 돈은 지금 미지급 이자를 포함해 9000억원 안팎의 손실 위기에 놓여 있다. 30만 명의 생계와 수천억 원의 국민 노후자금이 함께 걸려 있기에, 홈플러스 사태는 한 사기업의 부실을 넘어선다. 국회가 사모펀드 문제에 손대는 명분도 여기서 나온다.

청호나이스, 다음 갈림길

그리고 지금, 새 시험대가 놓여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이 정수기 렌탈기업 청호나이스를 약 1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창업주의 별세로 30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주한 유족이 경영권을 내놓은 결과다.

칼라일은 두 얼굴을 지닌 자본이다. 보안업체 ADT캡스를 인수해 오작동을 잡고 고객만족을 끌어올린 뒤 SK텔레콤에 되판, 고쳐서 파는 성공의 이력이 있다. 동시에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에서는 인수 빚 이자를 충당하려 유상감자로 자금을 빼낸 전력도 있다. 청호나이스가 어느 얼굴을 마주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청호나이스에는 이 인수가 기회일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얼음정수기를 선보인 기술 기업이지만, 코웨이와 시장을 양분하던 시절을 지나 직수 정수기로의 전환기에 대응이 늦으면서 지금은 렌탈업계 5위로 물러나 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자본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수기 렌탈은 매달 구독료가 들어오는 안정적 사업이라, 칼라일이 ADT캡스에서 보여준 투자로 키우는 방식이 통할 여지가 크다. 홈플러스처럼 감당하기 버거운 덩치도 아니다. 관건은 칼라일이 어느 손을 내미느냐다.

옥석을 가릴 규칙, 정치의 몫이다

결국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온다. 사모펀드는 악인가.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오비맥주를 살린 것도, 버거킹의 고용을 늘린 것도 사모펀드였다. 문제는 자본의 존재가 아니라 잣대의 부재다.

같은 차입매수라도 회사에 투자하는 자본과 회사의 자산을 덜어내 거둬가는 자본을 구분하고, 좋은 자본이라도 독과점은 걸러내며, 인수 빚을 회사에 떠넘기는 구조와 과도한 배당·자산 매각에는 제동을 거는 규칙. 그 잣대를 세우는 일이 정치의 몫이다.

인수 단계의 공익 심사, 차입 부담을 피인수 기업에 전가하는 구조의 규율, 연기금 출자의 책임 기준, 과잉 배당과 자산 매각에 제동을 거는 입법.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깜깜이 사모펀드 방지법'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첨단산업 육성에 민간 자본을 부르면서 동시에 홈플러스의 재발을 막으려면, 사모펀드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옥석을 가려낼 정교한 규칙부터 마련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자본을 만나 되살아나고 어떤 기업이 회수의 대상으로 주저앉을지, 그 갈림을 언제까지 우연에 맡길 수는 없다. 

 

[조자경 경제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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