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만에 소방보고서…인테리어업체, 전기공사 신고도 없이 '쥐꼬리 연결'
부친 "남은 가족도 중화상…화재 원인·배후 엄정 수사해달라"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2026년 2월 24일 4시 57분.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업무 생각에 마음이 급했고, 가족들이 깰까 봐 전등을 켜지 않고 집을 나섰다.
김모(59)씨는 그렇게 고교생인 큰딸과 이별했다. 출근 직후 주방에서 거대한 화염이 발생했고, 불은 집 전체로 퍼졌다. 큰딸은 화마 속 목숨을 잃었다.
새집에 온 지 닷새째였다. 주방에는 인덕션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방 안에 맴돌던 본드, 페인트, 시너 냄새 등 공사의 잔향을 김씨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김씨는 19일 연합뉴스에 "큰딸이 의사가 되기를 원해 고교 입학 시기에 맞춰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며 "딸이 사춘기라 그나마 깨끗하게 인테리어가 끝난 집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은마아파트 4천여세대 중 해당 매물을 선택했다.
주방·바닥·화장실·창문뿐 아니라 전등까지 개보수된 유일한 세대였다.
이후 5개월이 지나기까지 화재 원인은 미궁 속에 있었다.
다만 소방 당국은 최근 167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화재가 앞서 있던 인테리어 공사와 연관성이 있다는 취지의 추정적 결론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 '쥐꼬리 방식' 전선 연결…인테리어 부주의 원인 지목
연합뉴스가 입수한 강남소방서 보고서를 보면 조사팀은 이번 사고를 일단 원인 미상으로 종결했다. 발화 원인을 가리키는 물리적 증거까지 죄다 불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팀은 보고서 곳곳에서 이사 직전 이뤄진 전기 배선 공사 도중 업체 측 부주의가 화재의 전기적 요인으로 연결됐을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부각했다.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주방 천장 내 전선끼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연결된 데다, 그마저도 불연성 보호재로 덮이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임대인은 그해 1월 중개업자 권유로 세대를 전면 개보수했다.
중개업자가 연결해준 인테리어 업체는 내력벽을 허물어 주방을 인접한 작은 방까지 넓혔다.
이에 두 공간의 조명을 보다 큰 조명으로 합치는 전기공사가 수반됐다. 기존 조명으로 연결된 전선들을 각각 1m와 1.2m씩 연장해 새 조명에 붙이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은 '쥐꼬리 접속' 방식으로 기존과 신규 배선을 접붙였다.
두 전선의 피복을 벗기고, 구리 선끼리 공구로 꼬아놓은 뒤 절연 테이프를 칭칭 감는 방식이다.
작업자는 조사팀에 해당 방식이 전용 커넥터로 전선들을 압축·결합하는 것보다 안전하며, 실제 이 방식으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조사팀은 "접속부의 기계적 강도를 약화하고 접촉 저항을 올려 발열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배선 손상, 접속 불량 등 시공 결함으로 인한 발화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무자격자가 전선 만졌다…유족은 "엄정한 수사 촉구"
전선을 만진 작업자들은 전기 기술 자격증이나 면허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화재 예방차 통상 전선에 씌우는 보호용 관도 설치하지 않은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발열에 취약한 환경이 겹겹이 형성된 셈이다.
조사팀은 이런 정황을 종합해 "임의로 전선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신규 전선과 노후 전선이 혼용됐을 것"이라며 "연속적 쥐꼬리 접속 부위가 여럿 확인되며 안전 점검 없이 시공돼 국부 발열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재차 짚었다.
그러면서 "공동주택 관리 규약에 전기공사 면허 확인 절차를 명시하도록 권고해 무자격자의 부실시공을 원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당시 업체 측은 관리사무소에 문제의 배선 공사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통상 전기 시설물 등 공사는 아파트 관리주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공사계획서에는 난방, 수도, 도배, 화장실 공사 등이 기재됐으나 전기공사는 빠져있었다.
업체 대표는 조사 과정에서 "깜빡하고 적지 않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유족 김씨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천장 내 배선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고, 그 배선은 누구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사람이 죽었고, 남은 가족도 중화상을 입었다. 화재 원인과 동기, 배후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이 은마아파트 화재 이후 불에 취약한 노후 아파트의 소방 설비를 포함해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20년 넘게 끌어오던 은마아파트 재건축 여론에도 불을 지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은 이달 2일 사업시행계획이 인가됐다. 화마가 덮치고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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