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만에 시청률 21%(이하 전국 기준, 닐슨코리아 제공)를 돌파하고 6회 만에 22.3%까지 치솟은 SBS 금토 드라마 '김부장'. 드라마 비수기로 꼽히는 6~8월, 지상파 드라마가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한다는 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13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소지섭의 액션과 통쾌한 복수 서사가 맞물리며 광고 완판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그런데 이 초대박 드라마가 원래는 다른 방송사에 방영될 뻔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방송가에서 뒷말이 쏟아지고 있다.
'김부장' 주연 소지섭. / SBS 제공
판은 MBC서 짜였는데…결국 SBS가 낚아챘다
방송 관계자들 전언에 따르면 '김부장'은 작년 주연 배우인 소지섭까지 패키징된 상태에서 MBC, TVING과 먼저 편성 논의가 진행됐다. 제작사 판타지오 측에서 먼저 MBC와 테이블에 앉았고, 방송사 편성 조율까지 상당 부분 진척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작비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그 틈을 SBS 자회사 스튜디오S가 파고들었고, 결국 계약은 SBS 쪽으로 넘어갔다. 뉴스엔 보도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정이 알려지며 방송 업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넷플릭스 통해 글로벌 인기 누리고 있는 '김부장'. / 넷플릭스 제공
제작비 이견 외에도 SBS가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제작사 측에 상당히 매력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작가, 감독, 배우 등 이른바 '작감배'들이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게 글로벌 OTT, 특히 넷플릭스 동시 공개 여부다. 방송사 브랜드보다 글로벌 노출이 우선순위가 된 지 오래라는 얘기다.
MBC 드라마국서 '김부장'은 금지어가 됐다?!
MBC 입장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에는 대형 사극 '정년이'를 tvN에 내줬다. '정년이'는 여성 국극 배우의 성장을 다룬 웹툰 원작으로, tvN에서 방영 후 마니아층을 넘어 대중적 호응까지 이끌어낸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부장'이 SBS로 넘어갔다.
연달아 대형 IP를 놓친 MBC 드라마국 내에서는 현재 '김부장'이 일종의 금지어처럼 통한다는 후문이 들린다. 드라마 비수기에 '김부장'이 저 정도 흥행을 이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MBC 내부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부분이다.
설상가상으로 MBC는 '김부장'과 동시간대에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킬러들의 쇼핑몰'을 금토 특선 시리즈로 편성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킬러들의 쇼핑몰' 시청률은 1%대까지 추락했고, 같은 시간 SBS '김부장'은 20%를 손쉽게 넘겼다. 격차가 20%포인트를 훌쩍 넘는 굴욕적인 수치다.
'무빙'·'카지노'는 됐는데…왜 '킬러들의 쇼핑몰'은 안 됐을까
MBC는 불과 얼마 전 같은 방식으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무빙'과 '카지노'를 특별 편성했고, 최고 5.7%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검증된 OTT 흥행작을 편성한다는 공식은 똑같은데, 왜 '킬러들의 쇼핑몰'만 이렇게 외면받은 걸까.
'김부장'과 동시간대에 MBC에서 방영 중인 '킬러들의 쇼핑몰'. / MBC 제공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배우의 결이었다. '카지노'와 '무빙'의 중심에는 최민식과 류승룡이 있었다. 주말 밤 TV 앞을 지키는 5060 중장년층에게 이들은 스크린의 거장으로 각인된 이름이다. 수십 년 만에 TV 화면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콘크리트 시청층을 채널에 고정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됐다.
반면 '킬러들의 쇼핑몰' 주연은 이동욱과 김혜준이다. 2030 세대와 숏폼 플랫폼에서는 화제성이 높지만, 주말 밤 TV의 전통적인 시청층을 단숨에 끌어당기기에는 티켓 파워의 결이 달랐다. 타깃과 배우 사이의 미스매치가 시작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서사 구조의 차이도 컸다. '카지노'는 돈과 권력을 향한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담은 선 굵은 범죄 대하극으로, 서사가 직선적이고 흐름이 뚜렷해 중간에 채널을 틀어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반면 '킬러들의 쇼핑몰'은 과거와 현재를 격렬하게 오가는 교차 편집과 불친절한 타임라인이 특징이다. 이 문법은 전 회차를 한꺼번에 몰아보고 10초 되감기가 자유로운 OTT 환경에서는 강점이지만, 일주일에 두 편씩 중간광고를 견디며 보는 TV 시청자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된다. OTT 최적화 콘텐츠를 TV로 가져왔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한계로 평가된다.
방송사가 이제는 더 이상 '갑'이 아니다?!…구조가 바뀌었나
'김부장' 편성 비화는 단순한 방송사 간 헤프닝이 아니다. 지금 한국 콘텐츠 시장에서 권력 구도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과거에는 지상파 편성권 자체가 절대적인 무기였다. '지상파 프라임타임에 방영해 준다'는 말 한마디가 배우와 제작사를 움직였다. 지금은 다르다. 네이버·카카오 웹툰을 비롯한 검증된 IP가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을 쥐게 됐고, 이 IP를 확보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력 있는 상장 제작사나 대형 스튜디오가 협상에서 유리한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김부장' 원작은 인기 웹툰이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IP인 만큼 제작사 측의 협상력은 강할 수밖에 없었고, MBC는 제작비 이견 앞에서 결국 물러섰다. 반면 SBS는 스튜디오S를 통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넷플릭스 공급 파이프라인이라는 카드를 더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김부장' 포스터. / SBS 제공
드라마 제작비가 회당 수십억 원을 웃도는 시대에 수수료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재정 부담은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 안전한 예산 관리를 택하다 대작 IP를 경쟁사에 빼앗기면, 채널 경쟁력이 약해지고 광고 수익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뒤따른다. MBC가 '김부장'을 놓친 결과가 지금 시청률 1% 대 22%라는 수치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소지섭의 귀환, '김부장'이 더 터진 이유
드라마 자체의 흥행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김부장'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위장해 살아온 전직 국정원 요원이 가족을 건드린 조직에 맞서는 복수극이다. 장르적으로 명확하고, 서사 흐름이 빠르다. 중간에 채널을 돌리다 들어와도 맥락을 잡기 어렵지 않은 구조다.
여기에 소지섭이라는 이름값이 얹혔다. 2012년 드라마 '주군의 태양' 이후 13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됐다. 40~50대 여성 시청층 사이에서 소지섭이 가진 정서적 친숙함은 수치로 단순 환산하기 어렵다. 거기에 시원한 액션 장면과 가족을 지키는 남자의 서사가 5060 시청층의 정서와 맞닿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광고 완판이라는 기록도 주목할 만한 지표다.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광고가 완판되는 건 아니다. 광고주가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자 구성과 구매력을 함께 따진다. '김부장'의 광고가 완판됐다는 건 시청자 규모뿐 아니라 구성까지 광고주가 원하는 타깃에 부합했다는 의미다.
넷플릭스 비영어 쇼 2주 연속 1위…글로벌 시청자도 '김부장'에 꽂혔다
국내 시청률 돌풍에 그치지 않았다. '김부장'은 넷플릭스 글로벌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인했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이 집계한 톱 10 기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일주일간 '김부장'의 시청수는 910만을 기록하며 비영어 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주 연속 정상이다.
'김부장' 주연 3인방 소지섭(가운데), 최대훈(왼쪽), 윤경호(오른쪽). / SBS 제공
같은 기간 2위는 김무열 주연의 '참교육'으로 시청수 360만을 기록했다. '김부장'과의 격차가 550만에 달한다. 한국 드라마 두 편이 넷플릭스 비영어 쇼 상위권을 나란히 점령한 가운데, '김부장'이 압도적인 격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지상파 금토 드라마가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 쇼 1위를 2주 연속 지킨다는 건 단순한 해외 인기를 넘어 SBS와 스튜디오S의 글로벌 유통 전략이 실제 수치로 증명된 결과다. 앞서 언급한 넷플릭스 공급 파이프라인이 '김부장' 편성 협상에서 SBS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스페셜 2회 추가 편성…25일 최종회 앞두고 분위기 달아올라
흥행 열기가 뜨거워지자 SBS가 스페셜 방송 카드를 꺼내 들었다. SBS 측은 "'김부장' 스페셜 방송 2회를 추가로 편성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방송 형식과 내용은 현재 논의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김부장'은 당초 10부작으로 기획됐으며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된다. 오는 25일 최종회로 막을 내릴 예정인 가운데, 스페셜 방송 추가 편성은 그 자체로 방송사가 이 작품의 흥행 모멘텀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스페셜 방송의 구체적인 형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메이킹 필름 중심 비하인드 구성이 될지, 주요 장면을 재편집한 하이라이트 형식이 될지는 추가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김부장'에서 남다른 부부 케미 보여준 김지영, 윤경호. / 국엔터테인먼트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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