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금은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대표적인 안전자산의 위력을 과시했다. 지정학적 갈등이 이어지고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을 찾는 투자자들이 늘었고, 금 선물 가격은 지난 1월 말 온스당 5354.8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15일(현지시간)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4063.42달러로 마감했다. 연초 고점과 비교하면 약 24% 낮아진 수준이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금값이 반등하기는커녕 하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안전자산=금값 상승'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그대로 통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금값을 끌어내린 가장 큰 변수로는 금리와 달러가 꼽힌다. 금은 자체적으로 이자나 배당을 만들어내지 않는 자산인 만큼 시장금리가 높아지면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질 경우 채권 등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의 매력이 줄어 금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사상 최고가 찍었던 금값, 불과 몇 달 만에 24% 급락
최근에는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진 것이 금값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커지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했고, 금을 보유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도 높아졌다. 여기에 달러 강세까지 겹치면서 달러로 거래되는 금의 가격 상승을 제한했다.
중앙은행의 매수 흐름이 둔화된 점도 악재로 거론된다.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다변화와 달러 의존도 축소 등을 이유로 금을 꾸준히 사들였다. 그러나 최근 일부 기간에는 순매도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금값을 지지하던 수요에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대신증권은 과거처럼 글로벌 유동성이 크게 늘어나는 환경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금이 이전 고점을 다시 넘어서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이 통화가치 하락이나 인플레이션 위험을 방어하는 수단이라는 점은 여전하지만, 시장 환경에 따라 투자 수요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전망치를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연말 금값 예상치를 기존 온스당 5400달러에서 4900달러로 낮췄고, 도이치방크 역시 4분기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면서 금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값이 계속해서 일방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가격이 충분히 낮아질 경우 중앙은행과 장기 투자자들이 다시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금값은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변수뿐 아니라 미국 금리와 달러 흐름, 중앙은행의 매입 규모가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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