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축구의 쇄신을 둘러싼 갈등이 ‘개혁 대 기득권’의 정면충돌로 번지고 있다.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물러났지만 논쟁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 쟁점은 한 사람의 퇴진을 넘어, 다음 한국 축구를 좌지우지할 밥그릇 싸움으로 넘어가고 있다.
도화선은 서강일 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장의 발언이었다. 서 회장은 KBS 인터뷰에서 K축구혁신위원회에 참여한 박지성과 이영표를 겨냥해 “인생을 얼마나 살았고 법과 사회를 얼마나 안다고 혁신위원회를 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비판만 하지 말고 직접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라는 주장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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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가 검토하는 회장 선거 직선제 전환에도 반대했다. 그는 “현행 정관에 따라 회장 공석 후 60일 이내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며, 아시안게임과 A매치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제도 개편을 이유로 행정 공백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협회 운영을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인식이다. 선수 출신이라는 이유로 개혁을 논할 자격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논쟁은 세대와 권력의 싸움으로 바뀐다. “그들이 뭘 아느냐”는 말에는 축구 행정에 오래 몸담은 기득권 세력만이 협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폐쇄적 인식이 깔려 있다.
서 회장은 정 전 회장의 재임 기간도 ‘13년 천하’가 아닌 ‘13년 희생’으로 평가했다. 2023년 승부조작 연루자 등에 대한 기습 사면 역시 시기와 절차가 성급했을 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와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몽규 회장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승부조작 사면’이 어떤 세력에 의해 주도됐고,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잘 보여준다.
박성완 충남축구협회장과 백현식 부산축구협회장 등 일부 지역 협회장도 행정 공백 최소화와 정 전 회장의 공과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들의 주장이 잇달아 나오면서 정 전 회장의 퇴진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던 기존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르는 모양새다.
개혁 진영은 현행 구조에서 선거를 다시 치르면 얼굴만 바뀔 뿐 권력 구조는 그대로 남을 수 있다고 본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서 회장의 발언을 두고 “정몽규 회장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며 “시·도협회부터 중앙 수뇌부까지 이어지는 축구 행정 전반의 인식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세상은 변했지만 협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 국가대표 이천수도 한발 더 나갔다. 그는 “회장과 대표팀 감독이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개혁이 완성되지 않는다”며 “20~30년간 협회 행정을 주도한 내부 핵심 인사들이 책임지고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새 회장과 임원이 들어와도 실무 조직이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논리로 버티면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정 전 회장은 떠났지만 그를 떠받쳤던 구조는 남아 있다. “박지성이 뭘 아느냐”는 발언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현실을 모르는 한 마디가 축구계 개혁의 필요성을 더 강조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번 충돌의 본질은 정 전 회장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한국 축구가 바꿔야 것은 회장 한 명의 이름이 아니다. 기존 축구 행정 세력만이 전문성과 자격을 갖췄다고 볼 것인지, 선수와 팬을 비롯한 새로운 주체에게 권한을 나눌 것인지의 싸움이다. 한국 축구의 진짜 개혁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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