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국내 유료방송 업계가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으로 정면충돌했다. 케이블TV 사업자인 LG헬로비전과 콘텐츠 사업자인 CJ ENM이 프로그램 사용료를 놓고 법적 분쟁에 돌입해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계약 갈등을 넘어 국내 유료방송 생태계의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LG헬로비전은 지난달 방미통위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CJ ENM과의 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양측의 갈등은 콘텐츠 사용료 산정 방식에서 비롯됐다. LG헬로비전은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가 마련한 ‘콘텐츠 사용료 공정 배분 산정기준안’을 근거로 CJ ENM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조정했다. 해당 기준안은 케이블TV 사업자의 콘텐츠 사용료 부담이 전체 유료방송 평균보다 높을 경우 이를 단계적으로 평균 수준으로 맞추자는 취지다.
하지만 CJ ENM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존 계약에 대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용료를 삭감한 것은 계약 위반이라며 미지급 사용료 지급을 요구하며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이에 LG헬로비전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산하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며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LG헬로비전이 사용료 조정을 선택한 배경에는 케이블TV 산업의 급격한 위축이 있다. IPTV와 OTT 확산으로 케이블TV 가입자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주요 수익원이었던 홈쇼핑 송출수수료까지 줄어들면서 수익 기반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반면 콘텐츠 사용료는 매년 상승하면서 사업자들의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케이블TV 사업자들의 경영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는 계속 줄고 있는데 콘텐츠 비용은 오르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비용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CJ ENM의 입장은 다르다. 콘텐츠 제작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사용료를 낮추면 양질의 콘텐츠 제작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은 물론 스포츠 중계권 확보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콘텐츠 제작 비용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사용료를 낮추면 결국 콘텐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플랫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콘텐츠 가치에 걸맞은 정당한 대가 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 갈등을 단순한 기업 간 분쟁으로 보지 않는다. 그동안 프로그램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은 정부의 중재 등을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CJ ENM이 법적 절차를 밟고, LG헬로비전은 정부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등 갈등이 공개적인 법적 분쟁으로 확대됐다.
이는 유료방송 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그만큼 첨예해졌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향후 콘텐츠 사용료 협상 방식과 유료방송 사업자·콘텐츠 사업자 간 거래 관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는 OTT 확산에 따른 미디어 시장 재편이 꼽힌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디즈니플러스 등 OTT가 급성장하면서 유료방송 가입자는 감소하고 광고시장도 위축됐다. 반면 콘텐츠 제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제작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결국 케이블TV 등 플랫폼 사업자는 비용 절감이 절실하고, 콘텐츠 사업자는 수익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갈등이 일회성 분쟁이 아니라 국내 유료방송 산업이 새로운 수익 배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평가한다.
유료방송 업계 관계자는 “과거처럼 가입자가 꾸준히 늘던 시절의 콘텐츠 거래 구조를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며 “정부도 시장 변화에 맞는 콘텐츠 사용료 산정 기준과 분쟁 조정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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