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자운서원 건립 배경 첫 규명…“문묘 종사 논쟁·서인 학통 재편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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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자운서원 건립 배경 첫 규명…“문묘 종사 논쟁·서인 학통 재편의 산물”

경기일보 2026-07-17 17:03: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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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성 파주학연구소장이 율곡이이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파주 자원서원(紫雲)건립은 조선후기 문묘종사논쟁과 서인학통(기호학파)재편의 산물로 규명한 연구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인 제공
차문성 파주학연구소장이 율곡이이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파주 자원서원(紫雲)건립은 조선후기 문묘종사논쟁과 서인학통(기호학파)재편의 산물로 규명한 연구논문을 발표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인 제공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파주 자운서원이 조선 후기 문묘 종사 논쟁과 서인 학통 재편 과정에서 건립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7일 파주학연구소 등에 따르면 최근 학술지 ‘우계학보’ 제50호에 차문성 파주문화원 파주학연구소장의 논문 ‘자운서원의 건립과 성역화 과정에 관한 연구’가 게재됐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는 조선 후기 문묘 종사 논쟁과 서인 학통의 재편 과정이 파주지역 서원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자운서원의 건립과 이전, 성역화 과정을 정치사와 사상사, 공간사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한 첫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강사인 차 소장은 논문에서 “자운산 사당에서 호명리 자운서원으로의 이전과 합향·분사 과정은 파주지역 재지사족의 이해관계와 중앙 정치질서의 변화 속에서 선택된 역사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재지사족은 지역사회에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양반 가문을 뜻한다.

 

차 소장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에 대한 추숭이 향촌 차원의 제향이나 서원 창건에 그치지 않고, 학문의 정통성을 제도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던 당시 지식인 집단의 움직임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율곡 선생의 문집 간행과 신도비·묘정비 건립 등이 학통을 공간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고증 자료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우계학보’를 발간하는 우계학술재단은 “차 소장의 논문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학술적 공백을 충실히 메웠을 뿐 아니라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이 현재의 형태로 정립되는 과정을 소상히 규명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이어 “파주지역 서원의 역사성과 공간 이동의 의미를 재정립해 조선 후기 서원의 성립과 학통 형성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며 “연구에서 규명된 자운서원의 역사적 본질과 다층적 공간 해석은 향후 ‘율곡문화제’ 프로그램을 내실화하고 지역 인문유산을 활용한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파주자운서원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파주자운서원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파주 자운서원은 1615년 광해군 7년 지방 유림에 의해 창건됐다. 이후 1650년 효종 1년 ‘자운(紫雲)’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인 사계 김장생과 김장생의 제자인 남계 박세채를 추가로 배향하고 있다.

 

율곡과 파주의 인연은 ‘율곡전서’와 연보·행장 등에 모두 13차례 기록돼 있다.

 

율곡은 1543년 8세 때 화석정에서 시를 지었으며, 1551년 16세 때 파주에서 어머니 신사임당의 상을 치렀다. 1554년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갔고, 1561년 26세 때 아버지 이원수의 상을 치렀다.

 

이후 1571년 해주에서 파주로 돌아왔으며 1572년 파주에서 객성 관측 기록을 남겼다. 1573년과 1575년에는 병으로 파주에 머물렀고, 1576년 파주에서 황해도 해주 석담으로 돌아갔다.

 

1577년 다시 파주 율곡리로 돌아왔으며, 1583년 탄핵을 받은 뒤 파주에 머물렀다. 이듬해인 1584년 49세로 세상을 떠나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됐다.

 

자운서원 일대는 율곡 이이와 관련한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어 장소적 가치도 크다. 서원 뒤편에는 율곡 이이와 부인 곡산 노씨의 묘를 비롯해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묘 등 가족 묘역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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