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사우스워크 철도 아치 아래 자리한 JA 프로젝츠(JA Projects) 스튜디오에서의 제이든 알리. 그의 스튜디오는 다양한 도시와 예술에 대한 서적과 자료로 꽉 차 있어 다층적 관심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런던 사우스워크의 철도 아치 아래, 한때 자전거 창고였던 공간에 건축과 공공예술, 문화 커미션을 넘나드는 JA 프로젝츠(JA Projects) 스튜디오가 있다. 벽돌의 질감과 높은 천장으로 쏟아지는 자연광, 작은 화단은 이 스튜디오의 언어와 닮아 있다. 창립자 제이든 알리(Jayden Ali)는 건축가이자 아티스트, 큐레이터로서 환경에 정체성과 공동체의 서사를 새기는 작업을 이어왔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영국관 공동 큐레이터, 새로 개관한 V&A 이스트 뮤지엄(East Museum) 설계자인 그에게 공간을 짓는다는 건 언제나 이야기를 심는 일이다.
스튜디오가 철도 아치처럼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어떻게 이 공간을 갖게 됐나요
런던 테이트 모던 뒤편, 사우스워크 지구의 비즈니스 개선 단체인 베터 뱅크사이드(Better Bankside)가 운영하는 지속 가능성 허브의 일부였던 공간이에요. 베터 뱅크사이드와 공공 공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마침 스튜디오를 구하고 있다고 하니 자전거 보관소로 쓰이던 이 공간을 제안해 줬어요. 자전거 창고를 개조한 스튜디오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유럽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시대 철도 아치의 연속 구간 아래에 있기 때문이에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귀환 병사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사회 기반 시설을 짓기 위해 건설된 구조물이죠. 지역 커뮤니티를 지탱해 온 공간에서 작업한다는 건 언제나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지역 정원사를 위한 화분 창고도 설계했는데, 그분도 어느새 우리 팀의 일원이 됐어요. 매일 아침 풍성한 식물과 마주하며 이 지역과의 연대를 느낍니다.
스튜디오에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오브제를 꼽는다면
솔직히 말해 어떤 오브제보다 ‘청결함’ 그 자체가 중요해요. 저는 지저분한 환경에서는 일을 못해요. 다른 한 가지는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영국관 설치 작업에 사용했던 팬스틱(Panstick)이에요. 외부에 매달아둔 철제 팬(Steel Pan)을 관람자가 직접 두드려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만든 도구죠. 재활용 자전거 튜브로 만든 1m짜리 스틱인데, 철제 팬이 머리 위 1.5m 높이에 매달려 있어 같은 길이로 제작했습니다. 로열 아카데미 여름 전시에도 출품했던 작품이에요.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일깨워주죠.
한때 자전거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개조한 스튜디오 내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건설된 빅토리아 시대 철도 아치의 벽돌 질감과 높은 천장이 작업 환경의 언어가 된다.
화단 창으로 빛이 쏟아지는 작업 공간. 제이든 알리는 이곳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V&A 이스트 뮤지엄 등 도시의 서사를 건축으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건축, 공공미술, 전시, 문화 커미션까지 다양하게 전개해 온 JA 프로젝츠의 실천을 관통하는 것은
저희는 문화가 공식적인 공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화는 일상에서 만들어지고 지탱됩니다. 그게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설계하는 공간은 아래 두 가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명(Resonance)’과 ’지지(Support)’인데요. 공명한다는 건 공간이 그것을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도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지한다는 건 그 공간이 인프라처럼 작동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이 계속해서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거예요.
정체성과 커뮤니티, 도시의 서사에 대한 당신의 관심은 어디서 온 건가요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예술의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스튜디오의 실천이에요. 저는 4세대 터키계 키프로스인이자 카리브해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또 이스트 런던에서 자란 흑인으로서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 작업을 통해 탐구합니다. ‘혼종성(Hybridity)’에 대한 헌신과 ‘차이’가 강점이 된다는 믿음이 핵심이죠. 제 다양한 배경 중 한 가지라도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제 작업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요. 스튜디오 작업에서는 그 렌즈가 더 넓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주장하지 못했던 커뮤니티들, 예를 들어 여성과 남아시아 커뮤니티, 청년들을 위해 그들의 서사를 중심으로 끌어오는 것, 그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이에요.
건축 작업에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새로운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나요
저희 이야기는 리서치와 직관의 결합으로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꽤 자랑스러워요. 도시를 경험한다는 건 결국 감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학습된 지식만큼이나 살아낸 경험도 소중히 여깁니다. 저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맥락을 탐색하는데, 이것이 부지를 보는 것만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 장소를 누가 사용하는지, 그들의 일상에 어떤 의례의 흔적이 있는지, 미디어는 이 장소를 어떻게 기록해 왔는지부터 먼저 살핍니다. 그렇게 모은 것을 포토 몽타주로 만들고, 거기에 제가 쓴 글을 덧붙입니다. 일종의 선언문이자 명상 같은 텍스트예요.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프로젝트의 내적 브리프가 만들어지고, 저희는 그것을 기준점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갑니다.
새 프로젝트는 항상 리서치와 직관의 결합에서 시작된다. 부지의 역사와 사용자의 일상, 미디어가 기록한 장소의 흔적을 살피는 과정이 그가 하는 설계의 출발점이다. 팀버 버(Timber Burr), 왁스, 스테인드글라스 등 그가 다루는 소재는 단순한 물성을 넘어 이야기를 담는 커다란 그릇이다.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영국관 큐레이터로서 선보인 ‘댄싱 비포 더 문(Dancing Before the Moon)’은 당신의 커리어에 큰 전환점이 됐나요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브리티시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서 저는 공동 큐레이터이자 영화공동 제작자였고, 참여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 스튜디오인 JA 프로젝츠는 무대 연출을 맡았어요. 처음으로 실천의 ‘다성성(Polyphony)’에서 인정받은 순간이었죠. 스페셜 멘션을 받고 심사위원단이 우리의 가치를 알아준 경험은 자신감까지 북돋워주었어요. 커리어 초반에 자신만의 방법론을 세우고 이를 지켜내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방법론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의례와 퍼포먼스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이 어디서든 유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줬어요.
올해 파리에서 세 번째로 열린 ‘매터 앤 셰이프(Matter and Shape)’ 공간 디자인은 어떤 개념에서 출발했나요
‘매터 앤 셰이프’는 오브제를 축하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제로 한 대화의 장이 되는 자리잖아요. 그런 사회적 성격이 출발점이었고, 배경이 된 튈르리 정원을 깊이 들여다봤어요. 튈르리 정원은 루브르궁의 옛 승마학교 자리입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의회 토론이 열렸던 공간이기도 하죠. 엘리트주의에서 보다 평등한 삶의 방식을 논했던 역사가 저에게 영감을 줬고, 부지가 지닌 길쭉한 형태가 오디토리엄 구성에 반영됐어요. 동시에 16~17세기에 튈르리 정원에 뽕나무를 심어 이탈리아 비단에 대한 의존을 끊으려 했던 역사적 시도에도 주목했습니다. 실패로 끝난 실험이지만, 정원을 생산적 풍경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매터 앤 셰이프’의 전체 디자인 언어를 지배했어요. 전시에 놓인 모든 오브제는 결국 땅에서 나온 물질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최근 문을 연 V&A 이스트 뮤지엄 프로젝트도 인상적입니다. 16~30세 청년을 위한 공간으로 지어진 박물관이라죠
저에게 가장 깊이 남은 프로젝트입니다. 설계 전 과정에 청년들이 함께했어요. 면접 단계에서 저희를 인터뷰한 것도 청년들이었고, 이후 78번의 워크숍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전시 투어를 다니고, 소재 샘플을 살피고, 개념을 잡아 나갔어요. 저는 이스트 런던에서 자랐고 17세에 처음 건축 관련 일을 했는데, 그게 V&A 이스트 뮤지엄이 들어선 올림픽 파크 프로젝트였습니다. 만약 당시 설계 과정에 이런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달랐을까 싶어요. V&A 이스트 뮤지엄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 전체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소재와 장인에 대한 접근방식이 남다릅니다
저희에게 소재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에요.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츠(Royal Academy of Arts)에서 선보인 작품 ‘엔탱글드 패스츠(Entangled Pasts)’에서는 월넛 버(Walnut Burr)를 사용했습니다. 나무에 생기는 혹 같은 성장물이 감염이나 트라우마의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했죠. 고통이 그토록 아름다운 결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식민주의의 상처와 그로부터 피어나는 아름다움, 생존의 회복력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절한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장인이나 제작자와 협업을 시작합니다. 스튜디오 위고 블란자트(Studio Hugo Blanzat) 같은 그래픽 디자이너와의 협업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협업이 결과물에 풍부함을 더해줘요.
런던은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남아시아 커뮤니티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아시아 도시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런던의 문화적 혼종성은 독보적이에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고 축제처럼 뒤섞인 환경을 사랑합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단편영화를 만들 기회가 있었어요. 말 위의 카자흐 유목민부터 타슈켄트 한가운데서 빵과 직물,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에 이르기까지 깊고 풍부한 장인 문화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도쿄는 소음과 혼돈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고요하게 작동하는지, 그런 역설이 계속 생각하게 만들고 영감을 줍니다. 올여름에는 상하이와 홍콩에 방문할 계획인데, 서울에도 꼭 가보고 싶어요. 제가 새로운 도시에서 찾고 싶은 건 화려한 문화시설뿐 아니라 도시의 리듬, 사람들의 일상 의례, 그들이 만든 오브제들을 나누고 모으는 방식이에요.
사우스워크 비즈니스 개선 단체 베터 뱅크사이드(Better Bankside)의 지속 가능 허브의 일부였던 자리에 둥지를 튼 스튜디오.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도 방문했죠. 인상에 남은 전시가 있었다면
‘에이 매거진 큐레이티드 바이(A Magazine Curated By)와 나이키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축구와 종교, 스타디움과 대성당의 관계에 관한 대화도 진행했고요. 왁스와 스테인드글라스, 목재의 연결을 탐구한 알코바(Alcova)의 젊은 작가들의 작업도 아름다웠어요. 우즈베키스탄 예술문화재단의 전시도 강렬했습니다. 밀란의 소음 속에서 진정성 있는 고요함을 만들어냈죠. 변화하는 생태계에 놓인 디자이너들에게 ‘빵 바구니와 빵 도장’을 디자인하는 과제를 줬는데 단순하지만 강한 주제, 즉 어떻게 사람들이 모이고, 나누고, 공동체를 이루는지를 보여줬어요. 친구인 댄 타울리(Dan Thawley)가 포르나세티(Fornasetti)와 함께 선보인 러그 전시도 훌륭했습니다. 빛과 질감, 톤의 유희, 공간에 사운드스케이프를 도입한 방식이 좋았어요. 우리 스튜디오도 소리와 공간의 물성을 동등하게 다뤄요.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살짝 틀었을 때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밀란에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국 독자에게 JA 프로젝츠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요
집요하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발신하려 하는 스튜디오라는 것, 아름다움과 공명 속에 사회적 목적을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봐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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