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이하 현지시간) 미 정보당국의 기밀 보고서를 공개하며 '부정선거론'을 꺼내들었다. 중국이 2020년 미국 대선 전후로 미국 유권자 2억 2000만 명의 정보를 해킹하고,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를 위한 불법 투표용지 제작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2018년 중간선거에도 개입해 자신의 2020년 재선을 막는 데 노력했다고도 했다.
아울러 미 정보당국이 이를 인지하고도 대통령인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미 정보당국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해외 세력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미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문건과 주장에 대해 실제 투표 결과 조작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신분 확인을 강화하는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 법안' 처리를 의회에 압박하기 위한 여론전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바이든 위한 불법 투표용지 제작"
"CIA·FBI 등 정보당국, 대통령에게도 보고 안해…수사 대상"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중국이 지난 2020년 미 대선에 개입해 대규모 유권자 데이터를 불법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정부 투명성 태스크포스와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 직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직접 검토했다"며 "최고 정보기관 수장들의 지원을 받아 조사 결과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대해 "중국이 2020년 선거 기간부터 수년에 걸쳐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 데이터 침해를 실행했고, 그 결과 미국 유권자 파일 2억2천만 건을 불법적으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해당 파일에는 유권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정당 선호도, 등록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국이 2018년 중간선거에도 개입해 자신의 2020년 재선을 막는 데 노력했고 실제로 그 영향이 결과에 반영됐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보당국이 이를 인지하고도 이를 비밀로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FBI가 2020년에 입수했지만 관료들에 의해 묻힌 정보에는 중국의 활동이 조 바이든을 위한 불법 투표용지 제작 시도까지 포함됐다고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이 2018년 미국 중간선거와 2020년 대통령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했으며, 미국 기업인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반(反)트럼프 활동을 벌였다는 CIA 등의 관련 보고서도 공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선거 개입 관련 CIA·NSA(국가안보국) 보고서 수십 건이 대통령 일일브리핑(PDB)에서 제외됐다"며 "대통령과 의회, 미국 국민에게 관련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DNI와 법무부, FBI, CIA에 이처럼 중대한 정보가 어떻게, 왜 숨겨졌는지 조사하고, 은폐에 관여한 사람들을 해고하며, 적절하다면 형사 기소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러·중·이란·북한, 美 선거 인프라 침해할 능력 갖춰"
"비시민권자 27만8천명 유권자로 등록"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선거 인프라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 적대국과 비국가 단체들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내용의 문건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적대국들과 비국가 행위자들이 미국 선거 인프라를 침해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심장을 겨냥한 사이버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토안보부(DHS)가 연방선거 유권자 명부를 검토한 결과 약 27만 8000명의 비시민권자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각 주 정부에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즉각 삭제를 지시했다고도 했다.
백악관 "트럼프 연설서 부정선거 발견 공개…충격받을 것"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앞두고 백악관은 "충격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고 사전 예고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언론은 수천만 미국인들이 선거 무결성에 대해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오늘 밤 대통령의 연설을 반드시 시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가 공개할 발견은 여러분을 충격에 빠뜨릴 것"이라며 "모든 내용은 사실과 증거에 기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줄곧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으며, 2024년 대선 승리 후에도 "조작하기에는 차이가 너무 컸다"고 말하며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전날에도 "투표기기와 선거 무결성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며 "정말 큰 뉴스"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주장, 근거 빈약…'선거보안법' 표결 앞둔 여론전 성격
미국 백악관도 이날 중국이 미국 유권자 2억2000만 명의 정보를 해킹했으며 28만 명에 가까운 비시민권자가 유권자로 등록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문건을 공개했으나 통계가 부풀려졌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중국의 미국 유권자 데이터 획득 및 활용'이라는 제목의 핵심 증거 압축파일은 내용물이 없는 빈 파일 상태였다.
함께 공개된 2020년 7월 CIA 보고서는 중국 해커 그룹이 대선 캠프 관계자들을 상대로 정보 수집을 시도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중국이 선거 결과에 개입할 의도는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명시해 백악관의 '선거 조작' 주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토안보부(DHS) 조사 결과를 인용해 "연방 선거인 명부에서 약 27만8000명의 비시민권자가 불법 등록됐다"고 주장한 것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해당 수치는 이민자 신원 확인 시스템(SAVE)을 통해 도출된 것으로, 귀화 시민을 비시민권자로 잘못 분류하는 오류가 빈번해 통계가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 DHS 내부 문건에 따르면 SAVE 시스템을 통해 대조한 6800만 건 중 확인된 비시민권자 등록 건수는 약 2만8000건 수준이었다.
백악관은 전자 투표 시스템의 보안 취약성도 문제 삼았지만, 연방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은 이를 외부 공격이 아닌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ISA는 일부 주법과 복잡한 인증 절차가 취약점을 발생시킨다며, 종이 투표지 사용과 수작업 감사를 권고했다.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공화당이 추진 중인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통과를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당 법안은 투표 등록 시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번 의혹 제기가 법안 통과를 위한 여론전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부정선거 방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투표율을 낮춰 공화당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외신 "이미 공개된 데이터" 실시간 팩트체크
주요 방송사, 트럼프 대통령 '부정선거 연설' 생중계 거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국 언론도 실시간 팩트체크팀을 가동,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입수했다고 주장한 유권자 파일은 이미 공개된 기록이고 선거 결과 조작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NYT는 백악관이 공개한 문건들이 상당 부분 가려진 상태였으며, 중국의 활동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보다 훨씬 제한적이고 신중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외국 세력이 2020년 대선에서 실제 투표나 개표 과정에 개입했다는 공개된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종이 투표지를 이용한 대규모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증거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 이후 지방정부와 주 정부, 연방정부 차원에서 수십차례 조사와 감사, 재검표, 소송이 진행됐지만, 선거 결과를 바꿀 정도의 광범위한 부정행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바도 2020년 대선 직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광범위한 부정선거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NYT는 외국 세력의 여론 조작이나 선거 시스템의 보안 취약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과장하거나 투·개표 조작 주장과 뒤섞으면서 정당한 선거 보안 우려를 오히려 흐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ABC, NBC, CNN 등 주요 방송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지상파로 송출하지 않았다.
ABC는 연설을 'ABC 뉴스 라이브'와 라디오 채널을 통해 송출했고, NBC 역시 무료 인터넷 방송 'NBC 뉴스 나우(NBC News NOW)'에서만 제공했다. CNN은 연설의 뉴스 가치를 검토한 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제공할 계획이다. 반면 폭스뉴스와 폭스 방송 계열사는 연설을 생중계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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