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에는 돈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더 벌고 더 모으고 싶지만 일상까지 돈 걱정에 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번뿐인 삶, 돈에 끌려가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항해할 수 없을까요? [머니 마이웨이]는 월급·소비·주거·대출·노후처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문제들을 경제의 언어로 풀어보고 각자의 삶에 맞는 돈의 기준을 찾아갑니다. [편집자주] |
휴대전화 메모장에 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실손보험, 간병보험, 치매보험이라는 단어가 줄줄이 적힙니다. 부모님이 가입한 보험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자신의 주거비와 노후 준비만으로도 빠듯한데 부모님의 보험까지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빠진 보장을 한꺼번에 채워야 할 것 같아 마음은 조급해지고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합니다.
보험 상담을 받을수록 선택은 더 어렵기만 합니다. 암 진단비를 넣으면 뇌혈관과 심장질환이 마음에 걸립니다. 수술비를 추가하면 간병비가 걱정됩니다. 보장을 하나 제외할 때마다 하필 그 질병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렇게 필요한 특약을 하나씩 더하다 보면 부모의 노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이 커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줄일 만한 항목이 마땅치 않습니다.
최근에는 고령층의 실손보험 가입 문이 이전보다 넓어졌습니다. 금융당국은 2025년 4월부터 노후·유병력자 실손보험의 가입 가능 연령을 90세까지 확대했습니다. 보장 연령도 110세까지 늘었습니다. 가입 연령 제한 때문에 의료비 보장이 필요한 고령자가 보험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입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70대의 실손보험 가입률은 38.1%, 80세 이상은 4.4%에 그쳤습니다.
올해 5월에는 5세대 실손보험도 출시됐습니다. 보험료는 4세대 실손보험보다 약 30% 낮아졌습니다. 급여 입원 치료와 암·뇌혈관·심장질환 등 중증 비급여 치료에 보장의 무게를 둔 대신 비중증 비급여의 자기부담은 커졌습니다. 비중증 비급여의 연간 보장 한도는 1000만원이며 입원 자기부담률은 50%입니다. 실손보험은 실제 지출한 의료비 가운데 약관에서 정한 금액을 보상하는 상품으로 병원비 전액을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고령자나 치료 이력이 있으면 보험사의 심사 결과 일반 실손보험 가입이 거절될 수 있습니다.
불안 심리에 보장 확대? 위험 선별이 먼저
부모님의 보험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병이 생겼을 때 가족이 부담하게 될 비용을 종류별로 나누는 일입니다. 치료비 자체와 치료 기간의 생활비, 간병비, 요양비는 서로 다른 지출입니다. 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소득 수준에 따른 본인부담상한제를 통해 연간 부담액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초과분을 공단이 부담합니다. 비급여와 선별급여, 전액본인부담금, 임플란트, 2·3인실 상급병실 입원료 등은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간병과 요양 비용은 치료비와 별도로 봐야 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사람에게 재가·시설급여를 제공하지만 식사재료비와 이미용비 등 일부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합니다. 병원 간병비까지 모두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므로 가족이 직접 부담할 비용을 따로 따져봐야 합니다.
공적 제도가 일부 비용을 덜어주더라도 민간보험으로 보완해야 할 영역은 있습니다. 저축이 충분하지 않은 가정에서는 한 차례의 중증질환이나 장기 돌봄이 부모의 생활비뿐 아니라 자녀의 주거와 노후 준비까지 흔들 수 있습니다. 민간보험은 이처럼 가계 자산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나누는 수단입니다.
그렇다고 질병마다 보험을 하나씩 추가하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암과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진단비는 병원비에만 쓰이는 돈이 아닙니다. 치료 기간의 생활비와 간병비, 교통비처럼 실손보험으로 보전하기 어려운 지출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진단비 규모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부모의 소득과 자산, 치료 기간에 가족이 부담해야 할 현금 규모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장례비처럼 발생 가능성이 높고 필요한 금액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비용은 보험료를 내는 방식과 별도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의 비용을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험은 발생 가능성이 낮더라도 한 번 닥치면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에 대비할 때 효율이 커집니다. 예상 가능한 비용까지 모두 보험으로 준비하면 월 보험료가 빠르게 불어날 수 있습니다.
보험료를 누가 얼마나 오래 낼 수 있는지도 보장 내용만큼 중요합니다. 부모님에게 일정한 연금이나 소득이 없다면 보험료는 사실상 자녀가 부담하게 됩니다. 현재 월급에서 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하면 이직이나 주거 이전, 자신의 질병과 노후 준비가 겹쳤을 때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도에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거나 아예 없을 수 있으며 부모님의 질병 위험이 커진 시기에 보장까지 끊길 수 있습니다.
모든 걱정을 보험으로 없앨 수 없는 노릇입니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이 부담하는 부분, 부모의 자산으로 감당할 부분, 자녀가 지원할 부분, 보험회사에 넘길 위험을 분산하는 일입니다. 보험에 가입하면 부모님의 의료비 불확실성은 줄어듭니다. 그 대신 자녀의 소득 일부가 장기간 보험료로 고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보험을 몇 개 갖췄는지가 아니라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에 대비하면서도 그 보험료가 자녀의 주거와 노후 준비를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는지입니다.
☞실손의료보험: 질병이나 상해로 실제 부담한 의료비 가운데 약관에서 정한 금액을 보상하는 보험. 여러 상품에 가입해도 실제 지출한 의료비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
☞자기부담률: 보험금 지급 대상 비용 가운데 가입자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비율. 자기부담률이 높을수록 보험료는 낮아질 수 있지만 치료를 받을 때 가계가 지출할 금액은 커진다.
☞본인부담상한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비의 연간 본인부담액이 소득 수준별 상한액을 넘으면 초과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제도. 비급여 등 일부 의료비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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