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가 한 섬 상인의 예기치 못한 여정을 통해 19세기 동아시아 바다를 복원한다. 7월 19일 방송되는 30회는 전남 신안 우이도에서 홍어를 팔던 문순득의 표류기를 따라간다. 생업을 위해 나선 항해는 거센 폭풍으로 방향을 잃었고,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3년 2개월에 걸친 표류는 문화와 문화를 잇는 기록의 연속이었다. 류큐와 필리핀, 마카오, 베이징까지 이어진 여정 속에서 문순득은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했고, 그 경험은 ‘표해시말’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프로그램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바다의 길과 교류의 흔적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 폭풍 속 첫 도착지, 류큐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
1801년 겨울, 문순득 일행은 평소처럼 배에 올랐지만 거센 풍랑을 만나 항로를 잃는다. 방향을 잃은 배는 끝내 류큐 왕국에 닿았고, 이는 문순득에게 처음 마주한 이국의 공간이었다. 당시 류큐는 다양한 나라의 상선이 오가던 교역지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문순득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가 남긴 기록에는 현지 사람들의 옷차림과 음식, 생활 방식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특히 언어에 대한 기록은 당시 교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제작진은 현지 전문가와 함께 기록 속 표현을 하나씩 짚어가며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조선인이 남긴 류큐에 대한 기록은 문화 교류의 흔적을 보여준다. 낯선 곳에서 시작된 관찰은 이후 이어질 여정의 밑바탕이 된다.
■ 돌아갈 길 막히다, 필리핀에서 이어진 또 한 번의 표류
류큐를 떠난 뒤 문순득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바다에 나선다. 하지만 항해는 또다시 풍랑에 가로막히고, 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 끝에서 도착한 곳은 ‘여송’, 현재의 필리핀이었다.
이곳에서 문순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던 필리핀에는 서양식 건축과 종교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विशाल한 성당은 그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기존의 ‘표해시말’에는 성당 외관 위주의 묘사가 담겨 있지만, 이후 발견된 ‘문순득 일기’에는 내부 모습과 종교 의식에 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같은 경험이 서로 다른 기록으로 남으면서 당시 상황이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낯선 환경 속 체류는 문순득의 기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 기록으로 남은 항해, 조선 지식인들을 움직이다
긴 여정 끝에 문순득은 마카오와 베이징을 거쳐 1805년 고향 우이도로 돌아온다. 생존 자체로도 큰 사건이었지만, 그의 경험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남겼다. 유배 중이던 실학자 정약전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글로 정리하기 시작한다.
정약전이 완성한 ‘표해시말’은 당시 조선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외부 세계를 전하는 기록이 됐다. 이 이야기는 정약용의 저술에도 언급되며 학문적 관심으로 이어졌다. 문순득의 체험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오늘날에도 그의 여정은 이어지고 있다. 신안에서는 문순득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오키나와와 필리핀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참여해 교류의 장을 만든다. 200년 전 바다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현재까지 이어지며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 상인의 표류는 개인의 사건을 넘어 시대를 기록한 이야기로 남았다. 낯선 세계와의 만남은 기록을 통해 전해졌고, 지금 다시 조명되며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 문순득의 여정은 19일 밤 9시 30분 KBS1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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