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충남 청양 칠갑산 자락에는 오래된 민속 신앙과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품은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칠갑산 장승공원’이다. 울창한 산림과 어우러진 이곳은 나무와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 만든 장승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삶과 믿음을 만날 수 있는 민속 테마공원이다. 장승은 예부터 마을 입구를 지키며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는 존재였으며, 칠갑산 장승공원은 이러한 전통을 오늘날의 공간으로 되살려 놓은 곳이다.
칠갑산 장승공원은 장승문화가 시대 변화 속에서 점차 잊혀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1999년 5월 개최된 ‘칠갑산장승축제’를 계기로 조성된 이곳은 오래된 조형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민속문화를 보존하고 후대에 알리기 위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공원 곳곳에 세워진 장승들은 청양 지역 마을에서 실제로 제를 올리던 장승의 모습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각 마을마다 조금씩 달랐던 장승의 생김새와 표현 방식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에 방문객들은 한 장소에서 다양한 지역 장승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장승 하나하나에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과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
장승의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미를 지닌 솟대, 땅 위에 세워진 선돌 문화와 이어져 발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장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을 지키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과거 장승은 마을의 경계 표시이자 수호신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우고 제를 올리며 풍년과 평안,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다. 장승은 나무 조각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는 매개체였다.
칠갑산 장승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규모의 ‘칠갑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다.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진 이 장승은 공원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모습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수호자의 모습과 닮아 있으며, 칠갑산의 기운과 청양인의 정신을 표현한다.
칠갑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평화와 안녕, 생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풍요로운 삶과 지역의 발전을 바라는 청양 주민들의 마음을 담은 표현이기도 하다. 높이 10m가 넘는 장승 앞에 서면 전통 장승이 가진 상징성과 규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공원 내부에는 전국 각지의 장승을 재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지역별 특징을 반영한 장승들은 각기 다른 표정과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장승은 익살스러운 얼굴로 친근함을 전하고, 어떤 장승은 강한 표정으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12개의 띠 동물을 표현한 장승은 어린이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공간이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 친숙한 동물들이 장승으로 표현돼 전통문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칠갑산 장승공원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전국 장승 조각가들이 만든 창작 장승 작품이다. 매년 열리는 장승문화축제에서 조각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제작한 작품들로, 전통적인 장승의 형태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같은 장승이라는 소재라도 작가마다 다른 해석과 표현을 담아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공원 안에는 나무 장승과 함께 석조 장승도 자리한다. 특히 눈과 귀, 입을 가린 모습의 장승은 많은 방문객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는 보아서는 안 될 것은 보지 않고, 들어서는 안 될 것은 듣지 않으며, 조심해야 할 말은 삼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승마다 새겨진 문구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세계 평화’, ‘여기 좋아’, ‘나도 그래’ 등 다양한 글귀가 새겨져 있어 전통 장승이 현대적인 감성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군대장군, 단군여장군, 하르방 대장군과 여장군 등 다양한 형태의 장승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칠갑산 장승공원이 특별한 이유는 전시된 장승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통 의식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장승제’가 열린다. 주민들은 장승 앞에 모여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오랜 풍습을 이어가고 있다.
청양 지역의 장승제는 칠갑산 자락 여러 마을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치면 탄정리, 이화리, 대치리, 농소리와 정산면 용두리, 송학리, 천장리, 해남리, 대박리, 남양면 금곡리, 운곡면 위라리와 미량리 등에서는 지금도 주민들이 함께 장승제를 준비하고 있다.
장승제는 과거의 의식을 재현하는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세대를 이어 전통을 전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가진다.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고, 어린 세대에게는 우리 민속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칠갑산 장승공원을 걷다 보면 장승이 사람들의 삶과 바람을 담아온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느끼게 된다. 웃는 얼굴, 무서운 표정, 익살스러운 모습까지 각각 다른 장승에는 마을을 지키고 가족의 행복을 바랐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청양은 오랜 세월 장승제를 이어오며 한국 장승문화의 맥을 지켜온 지역이다. 칠갑산 장승공원은 그 전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자연 속에서 우리 민속의 가치를 느끼고 싶은 여행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푸른 칠갑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장승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의 징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나무에 새긴 사람들의 소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과 함께 걷고, 우리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곳이 바로 청양 칠갑산 장승공원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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