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화가에서 ‘어둠의 화가’로…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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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화가에서 ‘어둠의 화가’로…스페인의 거장, 고야의 두 얼굴

투데이신문 2026-07-16 17:02: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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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 제공=유엔씨갤러리]<br>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 제공=유엔씨갤러리]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스페인 왕실의 화려한 일상을 그린 궁정화가이자 인간의 광기와 시대의 부조리를 응시한 예술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렸다.

유엔씨갤러리는 설립 20주년 기념 특별전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를 오는 9월 30일까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고야의 일생을 단독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전시로, 대표 작품을 재구성한 미디어 콘텐츠와 함께 그의 양면성과 예술적 고뇌를 소개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스페인의 화가이자 판화가다. 왕실 초상화와 종교화, 풍속화부터 사회 풍자 판화와 전쟁 기록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시대의 현실과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포착했다. 고전적 미의 규범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정과 비이성, 폭력과 공포를 화면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는 화려한 궁정화가에서 ‘어둠의 화가’로 변화한 고야의 궤적을 따라간다. 왕족과 귀족의 초상에 담긴 권력의 빛과 균열, 사회의 위선과 무지를 풍자한 판화, 청력 상실과 고립 속에서 마주한 인간 내면의 심연을 미디어와 그래픽 등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다.

전시의 중심에는 고야의 대표 판화 연작 <카프리초스> 가 있다. ‘변덕’ 또는 ‘기상천외한 착상’을 의미하는 <카프리초스> 는 18세기 말 스페인 사회에 만연했던 무지와 미신, 부패와 위선을 비판한 연작이다. 고야는 인간과 동물, 악마와 괴물이 뒤섞인 환상적 장면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광기,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왕립 판화소가 제작한 에디션의 진본 판화 80점 전편을 한자리에서 공개한다.

연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제43번 판화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인물 뒤로 부엉이와 박쥐 등 기이한 존재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담았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를 무지와 공포가 차지할 수 있다는 경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제시된다.

전시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를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사진 제공=유엔씨갤러리]
전시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를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사진 제공=유엔씨갤러리]

전시는 총 6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먼저 ‘빛과 그림자의 초상-고야의 두 얼굴’에서는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대표 회화를 대형 미디어로 재구성해 궁정화가와 비판적 예술가라는 고야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이어 ‘스페인의 궁정화가, 고야’에서는 카를로스 4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생애를 그래픽 연대기로 살피며 그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개인적·역사적 사건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빛에서 어둠으로’ 섹션에서는 질병과 청력 상실 등 혼란을 거친 고야의 시선이 화려한 궁정에서 인간과 사회의 어두운 이면으로 이동한 과정을 다룬다. 핵심 섹션인 ‘변덕(카프리초스)’에서는 작품의 제작 배경과 당시 스페인의 사회적 맥락, 에칭과 애쿼틴트 등 사용 기법을 함께 소개하며 고야가 무지와 미신, 부패와 위선을 어떻게 풍자하고 계몽주의적 문제의식을 드러냈는지 살핀다.

‘귀머거리의 집’ 섹션에서는 청력을 완전히 잃은 고야가 말년에 머물렀던 공간을 재현해 공포와 절망, 침묵 속에서 탄생한 ‘검은 그림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지막 ‘어둠에서 빛으로-끝나지 않은 고야의 시대’에서는 전쟁과 폭력, 무의식과 환상을 다룬 고야의 시각 언어가 후대 예술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며 이성이 흔들리는 시대에 예술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고야는 왕실의 권력과 영광을 그리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자리한 불안과 균열을 포착했다. 이성이 무너진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은 특정 시대에 머물지 않고 인간 사회가 반복해서 마주하는 무지와 폭력, 욕망의 얼굴로 읽힌다.

관람객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고야가 남긴 이미지가 단순한 풍자나 환상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현실을 기록한 증언이자 새로운 시대를 요구한 경고의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야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시는 이성이 잠든 오늘의 세계에서 괴물이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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