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경찰이 보험사기 혐의와 관련해 자생한방병원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자동차보험 내 한방 진료비 지급과 심사체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보험업계는 이번 수사가 과잉진료와 보험금 누수 구조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개별 사건을 한방 진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최근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자생한방병원과 자생의료재단 등 관련 시설 5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수사는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등 주요 손해보험사 4곳이 지난 4월 자생한방병원을 공동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보험사들은 교통사고 환자에게 개별적으로 처방돼야 할 한약이 사실상 사전에 대량 제조돼 공급됐고, 이 과정에서 수백억원대 보험금이 부당하게 지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한방병원은 한약이 환자별 진단과 처방에 따라 조제됐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과거 유사 사건에서도 혐의없음이나 불송치 처분이 내려졌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의료기관의 혐의 여부를 넘어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전체 진료비 가운데 한방 진료비 비중은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수사 결과에 따라 첩약과 약침, 추나요법 등 한방 진료 항목의 청구와 심사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보험업계의 요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맞춤 처방이냐 대량 조제냐…보험사기 성립 여부 관건
경찰은 교통사고 환자의 처방 기록과 원외탕전실 조제 자료 등을 확보해 한약 처방과 보험금 청구 과정에 위법성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수사의 핵심은 환자별 진단과 처방이 실질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다. 보험사들은 개별 처방을 전제로 지급된 첩약 진료비가 사전에 대량 제조된 한약에 청구됐다면 보험사기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치료 경과와 무관하게 동일하거나 유사한 한약이 반복적으로 처방됐는지, 원외탕전실의 실제 조제 기록과 의료기관의 처방 기록이 일치하는지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다만 사전에 제조된 한약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보험사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별 진단과 처방이 형식적으로만 이뤄졌는지, 의료기관이 보험사를 속여 보험금을 지급받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수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
자생한방병원은 환자의 증상과 체질, 병력, 진단 결과 등을 고려해 개별 처방전을 발행하고 이에 따라 한약을 조제했다며 대량 처방 의혹을 부인했다. 아울러 과거 유사 사건 8건에서 혐의없음 또는 불송치 처분을 받았다며 수사 절차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보험사기 혐의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실제 위법 여부는 압수물 분석과 관련자 조사 등 향후 수사와 사법 절차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한방 진료비 1조7000억원 육박…청구·심사 기준 바뀌나
보험업계가 이번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배경에는 자동차보험 손해율과 보험료 부담에 직결된 한방 진료비의 가파른 증가세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5년 자동차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전체 진료비는 2조8114억원으로 전년보다 838억원, 3.07%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한방 진료비는 1조6972억원으로 전년보다 821억원, 5.08% 늘었다.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약 60.4%로 올라갔다. 반면 의과 진료비는 1조1065억원으로 같은 기간 14억원, 0.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방 진료비 비중은 2021년 54.6%에서 2022년 58.2%, 2023년 58.1%, 2024년 59.2%로 확대된 데 이어 지난해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한방 진료비가 의과 진료비를 추월한 이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모습이다.
자동차보험은 통상 가해 차량의 보험사가 피해자의 치료비를 지급해 환자가 비용 부담을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구조다. 보험업계는 이러한 특성에 명확하지 않은 지급 기준이 맞물릴 경우 치료 필요성을 넘어선 장기 진료나 반복 처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첩약과 약침, 추나요법 등은 진료 필요성과 적정 횟수, 가격 산정 기준 등을 놓고 보험사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갈등이 반복돼 온 항목이다. 보험업계는 정상적인 치료는 보장하되 허위·과다 청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수사기관도 보험사기를 다수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키우는 민생금융 범죄로 보고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특정 병원의 첩약 처방뿐 아니라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의 전반적인 청구와 지급 구조를 점검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교통사고 후 통증과 회복 속도가 환자마다 다르고 영상검사만으로 증상의 정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진료 기간과 횟수를 일률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심사 강화가 정상적인 환자의 치료 선택권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 설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방 진료비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번 수사가 청구와 지급 과정의 적정성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수사 결과를 예단해서는 안 되지만 정상적인 치료는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허위·과다 청구를 걸러낼 수 있는 객관적인 심사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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