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동성 배우자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국내 최초로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 권리를 법적으로 확인했다. 동성혼은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혼인관계에 준하는 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인정만으로도 소성욱·김용민 부부는 4년간의 소송 끝에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이를 동성혼 법제화로 가는 디딤돌로 받아들였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는 전 세계 총 37개국이며, 아시아에서도 대만(2019년), 태국(2025년), 네팔(2026년)에서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온전히 인정될 때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삶은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까? 동성혼 법제화 20주년을 맞은 미국에서 최근 발표된 한 연구가 이 질문에 구체적인 데이터로 답한다(☞ 논문 바로가기: 결혼의 영향에 대한 인식과 동성결혼의 미래에 대한 우려: 미국내 LGBTQ+ 기혼자를 대상으로 한 혼합 연구방법론을 활용한 연구).
2024년은 매사추세츠주가 미국 최초로 동성혼을 인정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고, 연방 차원의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Obergefell v. Hodges)*이 내려진 2015년 이후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 시기는 혼인평등의 앞날에 대한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이기도 했다. 2024년 한 해에만 성중립 화장실 금지, 성확정 의료 접근 제한, 학교에서 성소수자 관련 언급 금지 등을 담은 반성소수자 법안 533건이 발의·통과되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와 더불어, 2022년 연방대법원의 돕스 대 잭슨 판결(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로 임신중지권이 뒤집히는 과정에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오버거펠 등 다른 판례들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남기며, 혼인 평등 자체가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성소수자 커뮤니티 전반에 확산했다. 여기에 2024년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까지 겹치면서, 많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는 연방 차원의 보호가 후퇴할 가능성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연구팀은 바로 이런 시점, 즉 동성혼이 이미 법적으로 인정된 상태이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유독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국면에서 해당 연구를 설계했다. 2023년 말~2024년 초 사이, 실제로 결혼한 미국 성소수자 484명(평균 48세, 21~83세 분포)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들의 삶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혼인평등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불안을 느끼는지를 함께 살펴보았다.
먼저 결혼 자체가 개인과 관계에 미친 영향을 보면, 참여자의 83%가 결혼 후 안전감과 안정감이 커졌다고 답했고, 75%는 삶의 만족도가, 61%는 파트너와의 친밀감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부정적 변화를 보고한 항목은 성생활 빈도(13%)와 운동 습관(12%)에 불과해 소수였다. 참여자들은 서술형 문항에서 "이혼이나 파트너로부터 버려짐에 대한 불안이 줄었다", "가족에게 배우자로서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등의 응답을 남겼는데, 이는 결혼이 단지 법적 절차가 아니라 성소수자로서 내재화한 낙인을 완화하고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하는 기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참여자의 약 60%는 결혼이 거주지 선택, 직업·소득 계획, 저축과 은퇴 계획에까지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해, 결혼이 개인의 심리적 차원을 넘어 생애 전반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꾼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연방 차원의 혼인평등(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이 갖는 의미를 묻는 문항에서는 참여자의 94%가 "그 판결이 내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완전한 법적 권리와 책임의 인정"(79%), "50개 주 전역에서 인정된다는 사실"(75%), "헌법상 권리로서의 정당성"(72%)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특히 절반 가까운 참여자는 결혼 이전에 배우자의 건강이 위독한 상황에서 병원 면회조차 거부될까 걱정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연방 차원의 인정이 주(州)별로 제각각이었던 제도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주었다고 서술했다. 이는 결혼이 개별 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참여자 대다수가 이 권리를 이미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약 80%가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에 대해 매우 또는 다소 우려된다고 답했으며, 이 우려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나 그 배우자인 경우, 그리고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더 크게 나타났다. 실제로 참여자의 25%는 결혼이나 출산 시기를 앞당기거나 세컨드 페어런트 입양(second parent adoption)**을 서두르는 등, 법적 불확실성에 대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25% 이상이 다른 주로, 다른 25% 이상은 아예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다고 답했다. 특히 연방 차원의 위협에 대한 우려는 국외 이주 희망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단일 변수였다. 이는 법이 일단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효과가 저절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신뢰가 당사자들의 정신건강과 삶의 계획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연구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이중적이다. 첫째, 건강보험 판결이 보여주듯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실질적 보호(의료 접근성, 재정 안정성, 가족으로서의 사회적 정당성)는 결코 상징적 수사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요인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 연구의 참여자 상당수가 "내가 얻은 권리를 다시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다른 주 혹은 다른 나라로 이주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법적 인정이 단지 판결 하나로 완결되지 않으며 지속적인 제도화 없이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동성혼이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은 뒤 김용민 씨가 말했던 "사랑이 이겼다"는 기쁨 뒤에는, 흔들리지 않는 제도로서의 혼인평등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법 제정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걸음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다. "모두의 결혼"(☞사이트 바로가기)과 같은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후원 역시, 오늘의 판결 하나를 내일의 온전한 제도로 만들어가는 데 힘을 보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서지 정보
Goldberg, A. E., & Smith, J. Z. (2026). Perceived Impact of Marriage and Concerns About the Future of Marriage Equality: A Mixed-Methods Study of LGBTQ+ Married Individuals in the United States. Sexuality Research and Social Policy, 23, 103–121.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Obergefell v. Hodges)이란 미국 연방대법원이 수정헌법 제14조(적법절차 및 평등보호 조항)에 따라 동성 커플의 결혼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임을 인정하고,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판결을 말한다.
**세컨드 페어런트 입양은 이미 자녀의 출생증명서에 이름이 올라가 있거나 혼인 중인 경우에도, 법적 관계가 결혼이나 정치적 상황 변화에 의해 번복되지 않도록 비생물학적 부모가 자녀와의 법적 친자관계를 별도로 확정해두는 입양 절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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