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름을 잃을 것 같던 날, 나는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을 그리는 서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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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름을 잃을 것 같던 날, 나는 집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을 그리는 서유영 작가

문화매거진 2026-07-16 11:08:55 신고

▲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서유영 작가 / 사진: 서유영 제공
▲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서유영 작가 / 사진: 서유영 제공


[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이 있다. 화려한 기교 때문도, 거대한 화면 때문도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을 법한 단순한 집들이 화면 위에 놓여 있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바라보게 된다. 삼각형 지붕과 사각형 벽, 서로 다른 색을 입은 집들이 가까이 모여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하나의 풍경처럼 보였던 집들은 조금씩 사람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은 어느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진다.

최근 서울 연희동 인테그랄갤러리에서 김판묵 작가와의 2인전 ‘겹쳐진 온도’를 마친 서유영 작가를 만났다. 작품 속 집들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고, 관계가 되었으며, 오늘의 서유영 작가를 만들었는지 그의 삶을 따라가 보았다.

Q. 인테그랄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A. 인테그랄갤러리 대표님께 감사한 마음이 커요. 저는 갤러리마다 서로 다른 작품 목록을 제안하는 편이에요. 작가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겠지만, 저는 가능한 한 많은 작품 목록을 드리고 그중에서 갤러리가 직접 작품을 선택해달라고 말씀드리거든요.

갤러리마다 취향이 다르고, 상업 갤러리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결국 작품 판매잖아요.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과연 잘 설명하고 판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갤러리 관계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작가가 자기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에는 대부분 집이 등장하지만, 누가 봐도 서로 다른 시리즈가 있어요. 현재 진행 중인 시리즈만 해도 다섯 가지 정도예요. 갤러리마다 원하는 분위기를 먼저 듣고 작품 목록을 전달하는데, 막상 선택된 작품들을 보면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인테그랄갤러리는 조금 달랐어요. 대표님께서 작가노트를 정말 열심히 읽으세요. 물론 다른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판매 가능성도 고려하시겠지만,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작가노트와 작품의 연결인 것 같아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을 고르려고 노력하시더라고요.

Q. 이번 전시의 작품 선택이나 구성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나요?
A. 인테그랄갤러리 대표님은 전시마다 추구하시는 분명한 스타일이 있어요. 사실 김판묵 작가님과 함께 전시한다고 했을 때 서로 분위기가 약간 달라서 자칫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제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색채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작품을 선택하셨더라고요. 이번 전시 역시 전체적으로 색감이 한 톤 가라앉아 있었어요. 한여름에는 보통 밝고 화려한 색채를 선호하기 마련인데, 오히려 겨울처럼 차분한 분위기의 전시를 구성하셨죠. 그런 선택은 자신감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판매도 잘 이루어졌고, 제가 아끼는 작품도 새로운 주인을 만났어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전시였습니다.

Q. 작품 판매가 잘 이루어진 것도 이번 전시의 중요한 성과였을 것 같습니다.
A. 물론 판매가 잘되어 기뻐요. 작가에게 작품 판매는 현실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판매와는 별개로 계속 함께하고 싶은 갤러리가 있어요. 아무리 작품을 많이 판매해 주는 곳이라도 작가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맞지 않으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인테그랄갤러리는 제 작업의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잘 전달해 주려고 노력하셨죠.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것과는 다른 결의 신뢰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Q. 작가님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에서 출발하나요?
A. 제 작품의 이야기는 대부분 굉장히 슬프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행복하게 끝나요. 저는 그 과정을 작품에 담고 싶어요. 2019년 노들섬에서 열린 브리즈 아트페어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장항준 감독님이 제 작품 이야기를 듣더니 “세계 평화를 원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어요. 특유의 긍정적이고 유쾌한 말투로요. (웃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행복한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이 훨씬 많을 수도 있고요. 그런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모난 부분을 조금씩 깎아가며 둥글게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작업에 담고 있어요.

▲ 아리랑 72, 100x8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 아리랑 72, 100x80.3cm, Mixed Media on canvas, 2026


Q. 화면에는 뾰족하고 각진 형태가 많지만, 작품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도 느껴집니다.
A. 작품 속 요소들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날카로워요. 마띠에르도 거칠고 날카로운 편이고, 집의 지붕은 삼각형이나 사다리꼴로 이루어져 있어요. 전체적으로 뾰족하고 각이 져 있죠. 그런 날카로움을 색채에서 오는 유연함이나 집과 집을 연결하는 로프의 흐름으로 상쇄하려고 해요. 형태는 날카롭지만 색은 부드럽고, 구조는 각져 있지만 선은 유연하게 흐르는 식이에요. 상반되는 요소가 한 화면 안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작품 속 집과 집 사이의 거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집과 집 사이의 거리를 관계의 거리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나타나는 거리감은 사람 사이의 친밀도일 수도 있고, 가까이 가고 싶지만 오히려 멀어지는 관계일 수도 있어요. 친하지만 어딘가 거리가 있는 사이일 수도 있고, 아직 관계가 분명해지지 않은 이른바 ‘썸 타는 사이’일 수도 있죠. 다만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반드시 먼 관계인 것은 아니고,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친밀한 관계인 것도 아니에요. 물리적인 거리와 마음의 거리는 다를 수 있잖아요. 저는 집과 집의 배치와 간격을 통해 관계의 깊이와 복잡성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Q. 초창기 작업과 현재 작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초창기 작업은 제 개인사에서 시작됐어요.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중심으로 작업했죠. 작업을 계속할수록 이야기가 점점 추상적으로 변하면서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작품에 특정 인물이 등장하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데, 모든 작품 속에 저는 존재해요. 나머지는 제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주변 지인일 수도 있어요. 작품의 모든 장면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가 들어가 있습니다.

Q.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든 본인이 들어가 있다는 말이 흥미로워요. ‘서유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저는 소위 ‘비주류’로 살아왔어요. 지금 제 나이와 학번을 비교해 보면 잘 맞지 않아요. 공부를 남들보다 오래 했고, 정해진 길을 순탄하게 따라간 적도 거의 없거든요. 그 시작은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가고 싶은 학교와 공부하고 싶은 방향이 있었지만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았어요.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해 의대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공부에 대한 의욕도 많이 떨어졌고, 대학입시도 남들보다 오래 준비했어요.

결국 처음부터 가고 싶었던 대학에 진학한 것도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이 정도 공부했으면 됐다. 내 실력은 이 정도인가 보다’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갔죠. 지금 생각하면 입시제도가 크게 변화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저도 그 과정에서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 합창 18, 110x8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4
▲ 합창 18, 110x8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4


Q. 의외의 과거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A. 사범대학에 진학했어요. 당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기면서, 과학 공부를 계속한 뒤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굉장히 전략적인 선택이었어요. 또 대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학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부탁드리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도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났어요. 외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영어를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삽질’을 했어요. 국립공원 안에서 거슬리는 나무를 톱질하고, 곡괭이질을 하며 하루 열 시간씩 일했어요. 한 번 현장에 들어가면 8일 동안 씻지도 못한 채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도 했고요. 주변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고 유럽 출신 친구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재미있어졌어요.

Q. 그런 ‘삽질’이 마냥 삽질로만 기억되진 않을 것 같아요. 분명 피와 살이 됐을 것 같은데. 
A. 유럽 친구들과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함께 곡괭이질을 하다 보면 시간이 많잖아요.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계속 질문했어요.

제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어떤 전공을 하고 싶으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그 질문에 답을 못했어요. 막연히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하면서 성형외과를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이 “그건 미용에 가까운데, 네가 생각하는 사명감 있는 의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 친구들은 모든 것에 ‘왜?’라고 질문했어요. 저도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간 만큼 매일 랜턴에 의지해 영어 일기를 썼어요. 쉬는 날에는 숙소 근처 대학에서 은퇴하신 할아버지께 무료로 영어 지도를 받았고, 제가 쓴 일기를 첨삭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어요.

그 과정에서 ‘나는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를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당시에는 이과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의사를 꿈꾸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아버지도 의사나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고요. 저 역시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막연히 의사를 꿈꿨던 것 같아요.

대학교 2학년 때 외국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일하다가 ‘내가 지금까지 헛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과외로 돈을 벌어 명품을 사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이 완전히 리셋됐어요. 결국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를 그만두었습니다.

Q. 그 이후는요?
A. 고민해 보니 저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라 공부 자체를 좋아했던 사람이더라고요. 특히 과학과 수학을 정말 좋아했어요. 과학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로 과학 공부를 즐겼고요.

그래서 대학원을 자연과학대학으로 진학했어요. 처음에는 교수님도 “사범대를 졸업했으면 임용시험을 보면 되지, 왜 여기 왔느냐”고 하셨어요. 면접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신 셈이죠. 그래도 정장을 차려입고 일주일 동안 매일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결국 연구실에 들어가 학부 4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도교수님이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셨을 때 따라갔고요. 교수님께서는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결혼과 출산을 학생일 때 빨리 마치는 편이 낫다고 조언하셨어요. 과학자에게 진짜 연구는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치면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를 확보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죠.

Q.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셨네요. 
A. 연구를 계속하던 중 첫째 아이를 낳았어요. 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시기 어려운 상황이라 잠시 휴학했고, 이후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했어요. 당시 박사과정 수료까지 마치고 논문만 남아 있던 상태였습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불러 “박사학위를 따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으셨어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했고요. 저도 모르게 “학위를 따서 뭘 해야 하죠?”라고 되물었어요.

연구를 계속하면서 제가 교수가 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거든요. 연구원과 교수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연구원은 맡은 연구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교수이자 학자는 자기만의 질문과 연구과제를 만들어 내야 해요. 굉장히 창의적이어야 하고,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논문 실적이 좋아서 운 좋게 임용이 되고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학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정치적인 방식으로 자리를 유지하는 교수가 아니라 진짜 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제게는 그만한 역량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Q. 결국 오랫동안 이어온 공부를 그만두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A. 당시에는 가정과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어요. 제 성격상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실험실 생활은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생물을 키우는 연구였기 때문에 제 생활주기가 아니라 실험 대상의 주기에 맞춰야 했어요. 주말도 없었고, 만삭일 때도 출산 이틀 전까지 실험실에서 일했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화병이 나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도 잘해야 하고 일도 잘해야 하는데, 둘 다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정신적으로 버틸 수 없겠더라고요. 차라리 하나를 완전히 접는 편이 정신건강에 낫겠다고 판단해 학교를 그만뒀어요.

당시에는 거의 10년 동안 공부만 해온 상태였어요. 대학 졸업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그만두고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정해진 길이 있다면 저는 늘 그 길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쉽게 넘어간 과정이 하나도 없었죠.

​▲ 정물 꽃병, Watercolor on paper, 2017​
​▲ 정물 꽃병, Watercolor on paper, 2017​


Q. 육아에 전념하던 시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A. 한동안은 아이 둘을 돌보느라 열흘간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살았어요. 저는 ‘고학력자인 엄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니 정말 야무지게 잘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책도 정말 열심히 읽어줬고, 구연동화 자격증도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취득했어요. 책을 너무 많이 읽어줘서 성대결절까지 왔을 정도예요.

그러다 큰아이와 둘째가 모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저를 제 이름이 아니라 ‘누구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학교에서 ‘서유영 선생님’이라고 불렸고, 병원에서도 ‘서유영 산모님’이라고 불렸어요. 분명히 제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예방접종을 하러 가도, 유치원에 가도 누구 엄마가 된 거예요. 이렇게 살다가는 제 이름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겼어요.

▲ 비오는 거리, Watercolor on paper, 2017
▲ 비오는 거리, Watercolor on paper, 2017


Q.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가 서유영’이 시작되는 건가요? 그 불안감이 그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나요?
A.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라, 다시 공부한다면 또 끝없이 들어갈 것 같았거든요.

이때 취미라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저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밤을 새워가며 수채화를 그렸어요. 데생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고요.

처음에는 취미니까 12색짜리 물감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고체물감도 사고, 물감의 색도 점점 늘어나고, 팔레트도 고급스러워지고, 붓도 저렴한 것에서 일본산 고급 붓으로 바뀌었죠.

외벌이 가정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취미를 선택하는 데도 비용이 중요했어요. 운동을 배우려고 해도 한 번에 7~8만 원씩 드니 부담스러웠거든요. 반면 스케치북과 물감, 붓은 한 번 사면 오래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 없이 혼자 작업을 시작하신 건가요? 대단하다는 생각뿐입니다. 
A. 아는 게 없으니 유튜브 찾아보면서 배웠어요. 취미미술학원에 잠시 다닌 적도 있지만,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과 맞는 수업을 찾기 어려웠어요. 성인 취미미술 수업은 보통 낮 12시에 시작해 오후 3시에 끝나는데,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돌아왔거든요.

결국 혼자 집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꾸 밤을 새우게 됐어요. 남편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죠. 아이를 돌보다가 졸기도 하고 몸도 망가져 가니, 남편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좋지만 체력을 챙기면서 하라고 했어요.

그림을 그리다가 짜증도 많이 냈대요. (웃음) 제가 원하는 만큼 똑같이 그려지지 않아서 화를 내니까 남편이 “취미로 하는 것 아니야? 똑같이 그릴 거면 사진을 찍지, 누구한테 검사받는 것도 아닌데 왜 짜증을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도 한 번 크게 얻어맞았어요. ‘똑같이 그릴 거면 사진을 찍지, 왜 똑같이 그리려고 애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물 안 개구리, 45.5x53cm, Acrylic on canvas, 2017
▲ 우물 안 개구리, 45.5x53cm, Acrylic on canvas, 2017


Q. 다시 한번 서유영 작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말이 등장했네요. 그때부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건가요?
A.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을 똑같이 따라 그렸어요. 수채화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면서요. 그런데 따라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잘할 수 있겠더라고요. 문제는 제가 원본을 보면 어떻게든 똑같이 그리려고 한다는 것이었어요. 제 성격을 제가 잘 아니까, 제 마음대로 그리려면 원본이 없는 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무엇을 그릴지 고민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게 내 생각을 비율로 표현하는 ‘뇌구조’ 이미지였어요. 제 머릿속의 99%는 육아와 집이었어요. 저는 늘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집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합창 37, 71x71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6
▲ 합창 37, 71x71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panel, 2026


Q. 지금까지 이어지는 삼각형 지붕과 사각형 집의 형태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A. 처음 집을 그렸을 때부터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였어요. 실제 집을 보고 그리기 시작하면 또 똑같이 그리려고 할 것 같았거든요. 자료를 찾는 순간 그 자료에 얽매일 것 같아서 싫었어요.

어떻게 집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딸아이의 스케치북을 봤어요. 아이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삼각형 지붕과 사각형 몸체의 집을 그려놓았더라고요.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집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그릴 줄 아는 형태라면 제가 잘 그리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조금 더 제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반듯한 붓질과 뾰족한 집의 형태에도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는 제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Q. 작가님에게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서유영=집’으로만 기억되는 게 아쉽지는 않으신가요?
A. 맞아요. 한편으론 집의 형태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제가 집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머릿속의 99%가 육아였고, 육아는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졌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고학력자인 내가 아이를 야무지게 키워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것은 가정교육이더라고요. 아이가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 집에서 부모와 생활하며 가치관을 만들고,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배워요. 집이라는 공간은 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기초공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을 직접 그리지 않고 집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미 있는 별 17, 빛을 품다, 80x8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canvas, 2025
▲ 의미 있는 별 17, 빛을 품다, 80x80cm, Acrylic, Sand and Formboard on canvas, 2025


Q. 최근에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우주와 세포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고요.
A. 집의 의미를 확장해 우주까지 연결한 작업도 있어요. 그 작품에서는 집 하나하나가 별과 같아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은하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기도 해요.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모습을 집들이 모인 풍경으로 바라본 거죠. 별이 하나하나 소중하면서도 함께 모였을 때 아름다운 것처럼, 사람 역시 각자 소중한 존재이고 함께 모였을 때 아름답다는 의미예요. 집의 개념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미시적인 관점도 생각하고 있어요. 집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한다면, 그 정체성은 DNA에서 비롯되잖아요. DNA는 세포핵 안에 있고, 세포 역시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은 집이라는 형상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다른 형태를 사용해도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충분히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럼에도 집의 형상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상업예술가이기 때문이에요. 작품 판매를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별이나 세포의 형태로만 그렸을 때 관람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고민하게 돼요.

Q. 작품이 완성됐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요?
A. 완성의 순간은 명확해요. 제 안에서 확신이 서요.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분명히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그림을 치워둬요. 제 작업실과 집이 같은 공간에 있어서 365일 24시간 작품이 눈앞에 있거든요. 한두 달 정도 보이지 않는 곳에 두었다가 다시 꺼내보면 거슬리는 부분이 바로 보여요. 반대로 완성된 작품은 한 달 뒤에 다시 봐도 ‘내가 봐도 멋지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비로소 완성됐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Q. 작업할 때 절대 타협하지 않는 본인만의 원칙도 있나요?
A. 타협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작품의 스타일에 관한 피드백은 비교적 잘 수용하는 편이에요. 첫째 딸이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딸의 의견도 들어요. 어젯밤에도 제 작업을 보더니 “이건 딱 봐도 멋질 것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바탕색이 엄마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색인데 굉장히 고급스럽게 잘 나왔다”고 말했어요. 그런 피드백은 받아들여요. 주변 작가들은 작업 과정을 조금 단순화하면서도 결과물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조언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집 외에 다른 사물을 화면에 넣어보라는 이야기는 잘 수용하지 않아요. 아직은 제 작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집이라는 형태에 얽매이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네 의도를 표현해보라”는 피드백은 다르게 들려요. 제 작업과 작가노트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집이 아니어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으니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고 걱정해 주는 말이니까요.

Q. 벌써 2026년의 반이 지났어요. 대단히 바쁘게 보내셨는데, 올해 상반기 활동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A.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판매됐거든요. (웃음) 저를 신뢰해 주시는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좋아할 만한 관람객에게 작품을 잘 소개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큰 틀에서는 계속 같아요. 물론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올해 제작한 작품만 판매된 것은 아니에요. 지난해나 그 이전에 그린 작품도 새로운 주인을 만났어요. 그동안의 작업 과정과 변화,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특히 관람객에게 잘 전달해주신 인테그랄갤러리와 아트문갤러리 관계자분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Q. 하반기에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A. 오는 9월 개인전이 있어요. 그걸 위해 현재 320호 규모의 대형 작품도 작업하고 있습니다. 개인전 외에도 두 차례의 아트페어와 단체전이 예정돼 있어요. 앞으로도 지금의 작업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형식과 이야기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Q. 스스로를 ‘비주류’라 정의하셨어요. 지금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 어느 곳에 가든 삐걱거릴 수 있고, 남들보다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계에서도 저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비주류예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한 번도 쉽게 주류의 길을 걸어본 적이 없어요. 공부할 때도 그랬고, 연구자의 길에서도 그랬고, 엄마로 살아갈 때도 그랬어요.

그림을 그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꼭 부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비주류로 살아온 시간과 여러 번의 좌절, 그때마다 던져진 질문들이 결국 지금의 작업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서유영 작가 / 사진: 서유영 제공
▲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서유영 작가 / 사진: 서유영 제공


[작가 약력]
2012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생명약학부 생명과학전공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2008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과학교육학부 생물전공 졸업

[개인전]
2025 Blooming Colors, 미기갤러리, 서울
2023 코스모스, 관계의 메아리, 갤러리 H, 서울
2022 우리는 새로운 강을 건너고 있다, 수호갤러리, 성남
2021 From the Inside, 갤러리 아트컨티뉴, 서울
2020 신진작가 서유영 초대기획전 내 마음을 잇다, 설미재미술관, 가평
2020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미워하지 말고 바라보기, 갤러리 아트 14, 담양
2019 HOME & HOME, 갤러리 오누이, 서울
2018 The House: Between Us, JY ART 갤러리, 서울
2017 The House, 문래창작촌 7Place, 서울

[주요 단체전 및 아트페어]
2026 화랑미술제 in 수원, 수원컨벤션센터, 수원
2026 김판묵, 서유영 2인전 겹쳐진 온도, 인테그랄갤러리, 서울
2026 송형노, 서유영 2인전 이상향에 대한 내적 성찰,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남
2026 양종용, 서유영, 이다래 3인전 우리가 머무는 방식, 아트문갤러리, 서울
2025 서유영 신지아 2인전 Trace & Layer, 갤러리명, 서울
2025 뮤지엄 테라피: 칠(漆) 유어 소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서울
2025 Affordable Art Fair Hong Kong, HKCEC, 홍콩
2025 남재현, 비바비, 서유영 3인전 함께, 행복을 짓다, 아트문갤러리, 서울
2024 KB 갤러리 뱅크 위로 Consolation, KB 국민은행 PB센터, 서울
2024 서유영 임수빈 2인전 미시와 거시(micro & MACRO), 비움갤러리, 서울
2023 서유영 이은정 2인전 위로 받고 싶은 너에게, 병원安갤러리, 이천
2023 生活小確幸 Petit doux, Cloud Gallery, 대만
2023 강원청년작가 오늘, 국립춘천박물관, 춘천
2022 박계희 서유영 2인전 The Beautiful Life, 아트리에갤러리, 성남
2022 브리즈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서울
2022 Focus Art Fair, Carrousel du Louvre, Paris
2021 New Normal New Wave 수호아트콘서트, 세종문화회관, 서울
2021 서유영 임수빈 2인전 미시와 거시(micro & MACRO), 비움갤러리, 서울
2020 Young Artist 선정작가 5인展, 남송미술관, 가평
2020 KIMI For You 선정작가 기획전 What’s the MATTER?, 키미아트, 서울
2020 BatterSea Affordable Art Fair, Battersea Evolution, 런던
2019 신진작가 작품구입 공모전 Young Artists, 미누현대미술관, 성남
2019 브리즈 아트페어, 노들섬, 서울
2019 2019 Asia Contemporary Art Show, 콘래드호텔, 홍콩
2018 아트부산, 벡스코, 부산
2018 2018우수작가展,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수상 및 선정]
2022 Singulart Exclusive Artist 선정
2021 제14회 수호아티스트 선정작가
2020 제30회 배동신 어등미술제 입선
2020 설미재미술관 신진작가 초대기획전 선정작가
2020 남송미술관 Young Artist 선정작가
2020 키미아트 KIMI For You 선정작가
2019 미누현대미술관 신진작가 작품구입 영아티스트 12월 선정작가

[출판물 및 기타]
2025년 안수아 시집 말더듬이, 겨울눈 책표지 선정
2024년 Genie TV Original 나의 해리에게 작품 협찬
2024년 KB Gold&Wise 4월호 갤러리뱅크 작품 소개
2024년 빅이슈코리아 1월호 컬럼 슬기로운 문화생활 전시 소개
2023년 월간 전시 가이드 11월호 컬럼 안현정의 전시포커스 전시 소개
2023년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윤인화 박사학위논문 연구참여자
2021년 부산보훈병원 사보 행복한 섬김 가을호 표지 작품 수록
2021년 담양만덕초등학교 특강
2021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패션예술학부 특강
2021년 코오롱 그룹 오운문화재단 사보 살맛 나는 세상 9-10월호 표지 작품 수록
2021년 부산보훈병원 사보 행복한 섬김 여름호 표지 작품 수록
2021년 매거진Q 5월호 컬럼 The Story 작품 수록

[작품 소장]
미국, 홍콩, 프랑스,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캐나다, 스위스, 연세대학교, 미누현대미술관, 수호갤러리, 키미아트, ㈜제니스팜, 법무법인 리더스, 리마인드피부과, 네오집스, HS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갤러리아트14, 센텀쁘띠클리닉의원, 새로운바이오, 더타이트성형외과의원, 바이아트코리아, 개인소장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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