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기에는 돈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더 벌고 더 모으고 싶지만 일상까지 돈 걱정에 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번뿐인 삶, 돈에 끌려가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항해할 수 없을까요? [머니마이웨이]는 월급·소비·주거·대출·노후처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문제들을 경제의 언어로 풀어보고 각자의 삶에 맞는 돈의 기준을 찾아갑니다. [편집자주] |
점심시간에 휴대전화로 아파트 시세를 보다 은행 앱을 켭니다. 전세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았고 몇 년 더 돈을 모을 생각이었지만 주변에서 집을 샀다는 소식이 들리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집값이 더 오르면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고 아이가 생겨 맞벌이 소득이 줄기 전에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살 수 있는 집을 찾은 것도 아닌데 대출 한도부터 계산합니다. 연봉과 모아둔 돈을 입력하고 예상보다 적은 금액이 나오면 일단 창을 닫습니다. 며칠 뒤 은행이 대출 한도를 줄였다는 기사가 나오면 다시 앱을 엽니다. 아직 계약할 집도 없는데 마음은 이미 마감 직전의 사람처럼 급해집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6월 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만에 8조3000억원 늘었고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4조5000억원이었습니다. 은행들이 한 해 동안 늘릴 수 있는 대출 규모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하반기에는 금융권의 자체적인 대출 관리가 강화될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가계대출 통계는 가계가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정부는 이 수치를 바탕으로 대출 규제와 총량 관리의 강도를 조정하고 은행도 이에 맞춰 대출 한도와 심사 기준을 손봅니다. '대출 증가세를 관리한다'는 발표는 개인에게 '내게 남은 기회가 줄고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전세로 몇 년 더 살 생각이던 사람도 "이러다 영영 집을 못 사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르면 이미 늦었다고 느끼고,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기회가 닫혔다고 느낍니다. 당장의 계획표에는 없던 내 집 마련이 갑자기 올해 안에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됩니다.
온라인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가슴이 더 갑갑해집니다. 누군가는 부모에게 몇 억원을 지원받았고, 누군가는 맞벌이 소득과 대출을 최대한 끌어모아 집을 샀으며, 누군가는 몇 년 전 산 분양권이 두 배가 됐다고 자랑합니다.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출발했는지, 매달 얼마의 이자를 감당하는지, 어떤 가족 사정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만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은 주거 안정뿐 아니라 자산 형성과 노후 대비까지 걸린 선택입니다. 집값 상승기마다 무리해서라도 집을 산 사람과 기다린 사람 사이의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도 반복됐습니다. 내 집 마련에 소득과 자산을 집중하는 선택을 개인의 조급함이나 과욕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주택 구입은 개인의 성실함과 준비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집값과 금리, 대출 규제, 은행별 대출 여력, 계약 시점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같은 연봉과 비슷한 신용점수를 가진 사람도 실제로 빌릴 수 있는 금액과 주택 구입 가능성은 달라집니다. 어제까지 가능했던 대출이 오늘은 막히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자금 계획이 정책 발표 한 번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외부 변수로 생긴 결과까지 준비 부족 탓으로 돌리는 순간 주택 구입은 삶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개인의 성실함과 능력을 재는 잣대로 바뀝니다. 집을 아직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평가할수록 내 집 마련은 준비해야 할 목표보다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그 압박은 정작 신중해야 할 순간에 판단을 흐리고 결정을 서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제시하는 최대 대출 한도는 내 집 마련에 적정한 예산이 아닙니다. 소득과 부채, 담보가치를 기준으로 금융회사가 빌려줄 수 있다고 판단한 상한선인데, 마치 지금 활용하지 않으면 사라질 기회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대출 가능액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 집을 사기 위해 최대한 끌어와야 할 자금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계속 전월세로 살라는 말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전월세 비용을 내는 대신 대출을 감당하며 집을 마련하는 편이 더 현실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대출 한도가 줄기 전에 사야 한다는 조급함이 적정 주택 가격과 상환 부담의 범위를 넓힌다는 데 있습니다. 평소라면 무리라고 판단했을 금액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집을 사면 전월세 갱신과 주거비 상승에 대한 불확실성은 줄어듭니다. 그 대신 가계 자산은 쉽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주택에 집중되고 앞으로 벌 소득의 일부는 원리금 상환이라는 고정비로 바뀝니다. 시세와 대출 한도는 계속 달라지지만 한 번 떠안은 상환 부담은 오랜 기간 가계의 선택을 제약합니다. 문제는 시장의 변화가 빨라질수록 집이 없을 때의 불안은 크게 보이고 집을 산 뒤 감수해야 할 제약은 작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내 집 마련은 주거 불안을 줄이는 동시에 장기 부채와 자산 집중이라는 부담을 함께 떠안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불안에 매몰되지 않고 집이 없을 때의 불안과 집을 산 뒤의 부담을 같은 무게로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계대출: 개인이나 가구가 주택 구입, 생활비, 사업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보험사·카드사 등 금융회사에서 빌린 자금.
☞주택담보대출: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고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빌리는 대출. 대출 한도와 금리는 소득, 부채, 담보가치 등에 따라 결정된다.
☞대출 총량관리: 가계대출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일정 기간의 대출 증가 규모와 속도를 관리하는 방식.
☞포모(FOMO) 심리: 다른 사람이 얻는 기회나 이익을 자신만 놓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판단이나 결정을 서두르는 심리.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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