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잉글랜드가 ‘우승 청부사’로 선임한 토마스 투헬 감독이 자승자박에 빠졌다. 좋은 선발 라인업으로 한 골을 만들었지만 지나치게 콘셉트에 매몰된 교체 전략으로 두 골을 내줬다.
16일(한국시간) 미국의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4강전을 치른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에 2-1로 승리했다. 결승전 상대는 스페인이다.
두 팀 모두 선발 라인업에 약간 변화가 있었다. 4강까지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전술적으로 완성되지 못했던 두 팀 감독의 고민이 엿보이는 변화였다. 양쪽 변화가 위치상 딱 맞아떨어지면서 서로 맞물렸다.
아르헨티나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줄리아노 시메오네를 투입했다. 그동안 윙어를 한 명 쓴다면 왼쪽에만 배치했고, 윙어의 기량에 만족하지 못하자 결국 아예 윙어 없는 전술을 쓰곤 했던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의 변화였다. 사실 메시 중심 선수 구성이 자리 잡은 2021년 이래 좌우 중 한 곳에만 윙어를 쓴다면 오른쪽에 앙헬 디마리아(은퇴)를 배치한 적이 더 많기 때문에 그리 새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중앙과 오른쪽을 넘나들면서 뛰는 메시가 시메오네의 기동력을 활용해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진영 한쪽을 무너뜨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담긴 변화였다. 빈약해지는 왼쪽 공격은 스트라이커 훌리안 알바레스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보완하려 했다.
잉글랜드는 그동안 선발과 교체를 오갔지만 풀타임 뛴 적은 없는 제드 스펜스를 레프트백으로, 비주전조에 있던 모건 로저스를 오른쪽 윙어로 배치했다. 둘 다 섬세한 플레이는 썩 잘하지 못하지만 신체능력과 집중력을 무기 삼아 팀에 기동력을 더해줄 수 있는 선수였다. 특히 8강 노르웨이전에서 교체 투입돼 좋은 모습을 보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선수 기용의 효과는 섬세한 전술이 아니라 전반적인 경기 양상을 바꿔 놓았다. 안 그래도 라이벌 의식이 강한 두 팀의 싸움에서 더 거칠고 강하게 압박하는 역할을 시메오네가 맡았다. 그리고 매치업 상대가 스펜스였다. 시메오네는 원래 체구는 작은 편이지만 악바리처럼 뛰면서 공수 양면에서 투지를 불어넣는 게 장점이다. 공을 따내기 약간 늦은 상황에서도 죽어라 달라붙어 경합하며 반칙을 불사했다.
아르헨티나의 선수 구성 변화를 예상하지 않았다면,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감독의 스펜스 투입은 메시를 막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시메오네와 매치업을 이루면서 두 투박하고 많이 뛰는 측면 자원은 정면대결을 벌이는 셈이 됐다. 메시가 대신 중앙으로 많이 이동하면서 미드필더 엘리엇 앤더슨과 부딪쳤다.
후반전 초반 시메오네가 모처럼 잉글랜드 수비 배후로 침투하면서 완벽한 속공 기회를 잡는 듯 보였는데, 스펜스가 전속력으로 따라와 슬라이딩 태클로 저지한 게 이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투헬 감독의 다른 승부수 로저스는 선제골 어시스트만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큰 틀에서 보면 좌우 윙어를 앤서니 고든과 로저스로 배치, 활동량 많고 간결한 선수들로 측면에서 에너지 우위를 점하겠다는 생각으로 볼 수 있었다. 로저스는 대단히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진 못했으나 간결한 크로스로 고든의 문전 침투와 마무리를 이끌어 냈다.
이처럼 선발 전술 싸움에서는 투헬이 리오넬 스칼로니 아르헨티나 감독에게 판정승을 따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미 잉글랜드는 탄탄한 팀이었는데, 아르헨티나가 공격을 강화하자 여기 맞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해 수비를 거푸 투입했다. 이게 악수였다.
투헬 감독의 첫 교체카드로 고든을 빼고 센터백 에즈리 콘사를 넣은 순간 이미 파이브백으로 전환한 셈이었는데, 잠시 후에는 미드필더 데클란 라이스를 장신 센터백 댄 번으로 바꿨다. 본업이 센터백인 선수를 4명이나 우겨넣었다. 대형상으로는 5-4-1이 됐다.
그런데 지나치게 수비적인 교체는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공세를 아예 저지하지 못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중요한 건 메시가 크로스를 못 올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두 명이 집요하게 달라붙으면 메시가 이를 뚫어낼 역량이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한 명만 붙였다. 메시는 자기 앞의 수비수 단 한 명을 다양한 심리전으로 요리하면서 2도움을 올렸다.
잉글랜드의 쓸데없이 숫자만 많은 센터백은 경기장 위에 박아놓은 장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엔소 페르난데스에게 중거리 슛 동점골을 내줄 때는 다들 너무 물러나 있는 게 문제였다.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헤더 역전골 상황에서는 그 많은 센터백이 단신 스트라이커 한 명을 막지 못했다.
투헬 감독이 상대의 강점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약자를 자처하는 모습은 사실 직전 직장이었던 바이에른뮌헨부터 시작됐다. ‘나는 승부사’라는 자의식이 비대해진 모습이다. 바이에른 시절 바이엘04레버쿠젠이 무패행진을 이어가자,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던 바이에른이 급조한 파이브백으로 맞섰다가 오히려 3골을 내주고 무너진 바 있다. 김민재의 몸 상태와 전술 습득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기용했다가 제손으로 경기를 그르쳤다. 그래놓고 이후 일정에서 김민재를 배제했던 사례가 있는데, 이번 경기도 비슷했다.
선수 기량의 총합, 그리고 8강 연장 승부로 지친 선수들 대신 투입할 수 있는 카드의 다양성에서 잉글랜드가 분명 앞섰다. 그런데 마치 아르헨티나보다 한참 약한 팀을 맡은 듯 일찌감치 웅크렸다가 두들겨 맞고 말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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