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조쉬 사프디 감독이 또 한 번 미친 연출력을 입증했다.
조쉬 사프디 감독의 전작 ‘언컷 젬스’는 보는 이의 신경을 미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는 인생 역전을 노리고 베팅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위태로운 선택을 하며 불안감을 높였다. 선을 넘고야 마는 행동들이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런데 이 감독의 신작 ‘마티 슈프림’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독한 영화였다.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 분)는 첫 신부터 매력을 발산한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여성을 유혹하며, 등장과 동시에 욕망에 솔직한 캐릭터라는 걸 선언한다. 마티는 성공에 미쳐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탁구 선수인 그는 곧 성공가도를 질주할 것만 같은 기세를 뿜어 낸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 결승까지 가는 등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초반엔 비루한 현실을 버티고 있는 캐릭터이기에 성공을 응원하게 되고, 언더독 신화를 쓰며 감동을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마티는 언더독이 아닌 ‘독'(Dog) 같은 행동으로 신뢰를 잃는다. 그는 큰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한다. 친구를 철저히 도구적으로 이용하고 탁구로 사기를 치는가 하면,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등 도덕·윤리적인 선을 쉽게 넘어버린다.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보였던 것들은 점차 돈을 위한 위험한 도박으로 변질돼 간다. 이처럼 ‘마티 슈프림’은 제어 장치를 잃고 폭주하는 마티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언컷 젬스’처럼 환장할 만한 선택이 더 위험한 선택을 초래하고, 긴장감이 증폭되는 조쉬 사프디의 연출은 이번에도 탁월했다.
거짓말을 일삼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마티는 결코 옆에 두고 싶은 인물이 아니다. 멋진 척 무게를 집고 호기롭게 행동하다가도 궁지에 몰리면 비굴하고 지질한 행동으로 실망을 안기기도 한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다”라며 야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아이언맨’ 시리즈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같은 아우라를 뿜어내지만, 마티는 개차반에 가까운 캐릭터다. 비상한 두뇌와 소름 돋는 계획 따윈 없다. 인간을 향한 선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관객이 정을 붙이기 어렵게 한다.
조쉬 사프디의 재능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이 지옥행 열차 속에서 관객은 마티라는 인물을 조금씩 응원하게 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최악의 행동과 절제를 모르는 태도 탓에 바보 같은 결과를 반복함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잘 되길 바라게 된다. 여기엔 몇 가지 장치가 있다. 우선, 그의 아이를 가진 레이철(오데사 아지온 분)이 있다. 그는 결혼 후에도 마티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캐릭터인데,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는 설정으로 연민의 감정을 갖게 했다. 그가 마티에게 헌신하고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려는 모습이 마티의 부정적인 면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다른 하나는 마티의 처절함에 있다. 마티는 항상 더 큰 것을 탐하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그리고 매 순간 최악의 상황을 회피할 기회를 얻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을 취하다 쫄딱 망한다. 마티는 막연히 자신이 잘 될 거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광기 어린 행보를 보이며 관객을 기겁하게 한다. 영화 중반부 즈음에 관객은 마티가 어떤 비극을 맞이할지 예상할 수 있고, 그때부터는 “제발, 그 선만큼은 넘지 마”라는 마음을 갖고 그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조쉬 사프디는 관객이 연민의 감정을 가질 때까지 마티를 망가뜨리는 지독한 연출을 택했다.
이 외에도 마티 주변의 인물들의 결점을 부각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마티는 분명 정의롭고 호감을 갖게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캐릭터들은 더 독한 면을 가지고 있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욕망과 욕망의 대결 구도를 형성으로써 관객이 마티에게 이입할 여지를 남겨뒀다. 물론, 마티가 가진 욕망이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질 법한 감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티모시 샬라메도 관객의 마음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이 엮여 관객은 마티가 그토록 염원하던 탁구 경기에 참여하길 바라고, 응원하며 영화에 이입할 수 있었다.
‘마티 슈프림’을 보며 조쉬 사프디의 재능에 또 한 번 감탄해야 했다. 그는 이번에도 비호감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이야기를 설득시켰고, 러닝타임 내내 혼란을 증폭시키는 사건들을 배치해 재미를 높였다. 이후 조쉬 사프디는 어떤 아수라장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게 될까. 얼마나 신경을 긁을지 불안하고,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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