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부터 중증 원형탈모증에 야누스인산화효소(JAK) 억제제인 바리시티닙이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게 됐다. 오래 기다려온 일이다.
원형탈모증은 흔히 미용 문제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면역계 이상으로 모발이 소실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두피 전체는 물론 눈썹과 속눈썹까지 잃은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사회적 위축은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현실이다.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급여 확대를 결정한 보건당국의 판단에 먼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이 약제를 실제로 급여하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오히려 앞서간 편이다. 여기에 더해 올해 1월 시행된 제9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9)에서는 원형탈모증을 중증도별로 세분화하는 코드가 새로 만들어졌다. 국제적으로도 앞선 시도다. 그만큼 우리가 만드는 기준이 다른 나라가 참고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시행 초기에 확인된 두 가지 대목을 함께 살펴보았으면 한다.
■치료 잘 된 환자가 오히려 급여 받기 어려워진다
첫째는 경과규정이다. 급여기준이 마련되기 전에도 이 약을 써야 했던 환자들이 있었다. 다른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고 더 기다리기 어려웠던 이들로 적지 않은 약값을 전액 본인부담으로 감당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이들이 급여로 전환되려면 투여를 시작하던 시점에 현재의 급여기준이 정한 투여대상에 해당했다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그 시점에는 급여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의료법령이 정한 진료기록부의 필수 기재사항은 인적사항, 주된 증상, 진단명, 진료경과, 치료 내용이다. 탈모의 중증도를 정량 점수(SALT)로 산출해 기록하거나 환부사진을 촬영해 보관하는 것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해당 행위에 대한 수가도 없고 중증도를 구분하는 질병코드마저 올해 1월에야 만들어졌다. 그런 자료가 일관되게 남아 있지 않은 것은 개별 의료진이나 환자의 문제라기보다 당시의 제도적 여건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결과 다소 예상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생긴다. 약이 잘 들어 현재 SALT 20 이하로 호전된 환자는 투여를 시작할 당시의 중증도를 입증할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한편, 지금 시점에서는 중증도가 낮아져 신규 투여대상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규정을 문자 그대로 따르면 급여를 받기 위해 투약을 중단하고 다시 중증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는 제도를 설계하면서 의도한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해법의 실마리는 이미 고시 안에 있다. 경과규정이 요구하는 과거 자료는 앞서 말한 투여 시작 시점의 자료 외에 하나가 더 있다. 투여 기간에 맞는 치료 반응 평가 결과로, 36주를 넘겨 투여해 온 환자라면 36주차 평가 결과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두 자료에 적용되는 잣대가 서로 다르다.
36주차 평가 결과에 대해서는, 객관적 입증이 어려우면 고시 시행 시점에 다시 평가해 제출하도록 하고 의학적 타당성을 감안해 사례별로 판단한다는 완화 규정이 이미 마련돼 있다. 반면 그보다 시점이 이르고 자료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운 투여 시작 시점의 자료에는 이런 완화가 없다.확보하기 더 어려운 자료에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투여 시작 시점의 자료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 주기를 요청드린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고시가 이미 담고 있는 원칙을 조금 넓히자는 것이다.
■투여기간은 반응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는 급여인정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정한 부분이다. 원형탈모증은 관해와 재발을 반복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고, 바리시티닙은 완치제가 아니라 질환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약제다.
이 약제의 허가 근거가 된 3상 임상연구에서 그 점이 확인된 바 있다. 1년간 치료해 모발이 충분히 자란 환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은 투약을 계속하고 다른 한쪽은 중단하도록 한 결과, 투약을 중단한 환자는 약 80%가 이후 치료 효과를 잃었다. 연구진은 모발이 다시 자란 뒤에도 유지요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연구의 장기 추적 결과를 보면 투약을 이어간 환자들은 3년이 지난 시점에도 대부분 반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약제의 임상 근거 자체가 3년 이상의 지속투여를 전제로 축적돼 온 셈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급여기준을 정할 때 우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통상 참조하는 것은 미국 FDA의 허가사항과 영국 NICE, 캐나다 CADTH처럼 규제기관이나 공적 약제급여 평가기구가 내놓은 기준이다. 위 두 가지 대목에 대해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살펴볼 만하다.
이 약제의 미국 FDA 허가사항에는 최대 투여기간에 관한 규정이 없다. 캐나다 CADTH는 이 약제를 최초 처방 시 36주를 급여하고 이후 호전이 지속되는 경우 12개월 단위로 연장하도록 권고하며 총 급여기간에는 상한을 두지 않는다.
영국의 사례가 특히 참고할 만하다. 영국 NICE는 비용효과성을 이유로 이 약제를 권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침이 나오기 전에 이미 NHS에서 이 약으로 치료를 시작한 환자에 대해서는, 환자와 담당 의사가 중단이 적절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종전의 재정 지원 조건 그대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지난 일을 소급해 입증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기간에 상한을 두지도 않았다. 같은 질환에 대해 NICE가 권고한 다른 JAK 억제제에도 총 급여기간의 상한은 두지 않았다.
세 기준에는 공통점이 있다. 투여기간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해외 사례 가운데에는 민간보험의 사전승인 지침도 있으나,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私)보험이 지출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지 의학적 표준이 아니다. 전 국민을 단일 보험자가 책임지는 공보험의 급여기준을 설계할 때 준거로 삼기에는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함께 다듬어 가기를 기대하며
대한모발학회는 이번 급여 확대에 적극 찬성한다. 학회가 요청드리는 것도 고시의 전면 재검토가 아니라 두 가지 보완이다. 앞서 말씀드린 경과규정의 완화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급여인정기간을 미리 정해두기보다 반응 유지 여부에 따라 재평가하고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는 어차피 지속투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방식으로 급여 대상자가 크게 늘어날 우려는 크지 않다.
급여는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제도다. 보건당국과 학회가 함께 다듬어 간다면, 우리 기준이 다른 나라에도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 장용현 대한피부과학회 및 대한모발학회 보험이사 (경북대병원 피부과 교수)ㅣ정리 헬스경향 장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