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출생신고 누락으로 가족관계등록부 없이 살아온 62세 남성이 수원시 공무원의 도움으로 법원 절차를 거쳐 신분을 되찾았다. 사진은 강모씨와 수원시청 새빛민원실의 김경숙 팀장 모습. /수원시청
평생을 법적 테두리 밖 유령으로 떠돌던 62세 남성이 한 공무원의 10개월에 걸친 끈질긴 조력 끝에 마침내 국민으로서의 이름을 되찾았다.
1964년에 태어난 강모(62)씨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었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친척 집과 보육 시설을 전전했던 강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정한 거처 없이 재활용품 선별장 등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행정기관 문을 두드렸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서류가 없어 매번 "등록이 어렵다"는 답변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민등록 전제조건 '가족관계등록부', 존재하지 않는 자의 법적 장벽
강씨가 주민등록을 하지 못한 가장 큰 법적 장벽은 호적 때문이었다.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가 존재해야 한다.
지난해 8월, 강씨가 찾아간 수원시청 새빛민원실의 김경숙 팀장은 1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는 많이 봤지만, 호적 자체가 없는 경우는 수십 년 공직 생활 중 처음 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가족관계등록부 자체가 없는 이른바 '무적자'가 신분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관할 법원에 '성과 본의 창설 허가'를 청구해야 한다. 법원 허가가 떨어져야 비로소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평생 아무런 흔적 없이 사는 건 아니지 않나"… 10개월의 동행
행정기관 내부의 일반적인 민원 업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동주민센터와 구청, 법원을 수없이 오가야 했다. 하지만 김 팀장은 강씨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법률 상담 변호사를 강씨와 연결해 법적 절차를 밟도록 돕고, 모든 과정에 직접 동행하며 길잡이를 자처했다.
김 팀장은 끝까지 강씨를 도운 이유에 대해 "이가 몇 개 빠지시고 병원도 못 가시는 상황이었다"며 "평생을 60년 넘게 살았는데 아무런 흔적 없이 이렇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들의 10개월에 걸친 끈질긴 노력은 결국 법원 허가를 이끌어냈다.
62년 만에 얻은 통장과 병원 진료 권리
기나긴 법적, 행정적 여정 끝에 강씨는 마침내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었다. 이제 강씨는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아프면 당당히 병원에 가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며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지인의 집에 거주 중인 강씨는 기초적인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해 수원시청에서 후속 상담 절차를 진행 중이다.
김 팀장은 "강씨가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이런 기회를 제가 갖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했다.
제도적 무관심 속에 62년간 서류상 유령으로 방치됐던 한 시민의 삶은, 법의 문턱을 함께 넘어준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만나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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