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최소라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6800선까지 추락했다. 지수는 26일 만에 27% 가까이 떨어졌고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2000조원 줄었다. 반도체 대형주 쏠림과 레버리지 투자 열풍이 상승 속도를 높인 데 이어 낙폭도 키웠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개인투자자의 자금 여력마저 약해져 수급 부담도 커졌다.
다만 주가 급락에도 기업 이익과 반도체 업황의 추세적 훼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6600선 방어 여부와 7월 말 국내외 주요 기술기업의 실적 발표가 향후 증시의 분기점으로 꼽힌다.
◇오르는 데 51일, 되돌아오는 데 26일…시총 약 2000조원 ‘증발’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9.90포인트(p,0.73%) 내린 6856.92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6448.86까지 떨어졌다. 고점과 저점 간 격차는 531포인트를 넘어섰다. 지난달 18일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해 9063.84로 마감한 지 26일 만이다. 거래일 기준으로는 18거래일 만에 9000선에서 6800선까지 밀렸다.
시가총액도 급감했다. 지난달 18일 7413조2473억원이었던 코스피 시가총액은 이날 5616조7497억원으로 줄었다. 26일 사이 1796조4976억원이 증발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시가총액 약 1800조원이 사라진 셈이다.
상승과 하락 속도의 차이도 뚜렷하다. 코스피는 지난 4월 28일 6641.02에서 6월 18일 9063.84까지 오르는 데 51일, 34거래일이 걸렸다. 다시 비슷한 수준인 6625.16까지 내려오는 데는 26일, 18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쌓아 올린 상승분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실상 모두 반납했다.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빨라졌다…쏠림·레버리지가 키운 변동성
최근 코스피의 극심한 변동성은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주에 자금이 몰린 데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까지 빠르게 성장해 주가가 한쪽 방향으로 움직일 때 상승과 하락 속도를 모두 높였다.
9000선 돌파 이후에도 급등락이 반복됐다. 코스피는 지난달 22일 9114.55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다음 날 9.99% 폭락해 8203.84로 내려앉았다. 이틀 뒤인 25일에는 다시 8930.30까지 올랐다. 이후 26일(5.81%), 이달 2일(7.89%) 급락한 뒤 3일(5.76%) 반등했다. 7일과 8일에는 각각 4.91%, 5.35% 떨어졌고 13일에는 다시 8.95% 급락했다. 하루에도 수백 포인트씩 오르내리는 ‘현기증 장세’가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두 종목의 등락은 코스피 전체 흐름을 좌우했다. 상승기에는 반도체주 강세가 지수를 빠르게 끌어올렸지만 차익실현과 업황 고점 우려가 불거지자 같은 구조가 낙폭을 키웠다.
이달 초 ‘33만전자’까지 올랐던 삼성전자는 이달 들어 21% 넘게 하락했다. 미국 나스닥시장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해 기대를 모았던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27% 떨어졌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비롯한 고위험 투자 열풍도 변동성을 높였다. 기초자산 가격 움직임의 배수를 추종하는 상품은 상승장에서 수익률을 높이지만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도 빠르게 불어난다.
같은 기간 ‘TIGER SK하이닉스단일종목레버리지’는 53.76% 떨어지며 ETF 전 상품 중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들도 41~42%대 하락했다. 기초자산보다 낙폭이 큰 레버리지 상품의 특성상 반도체주 급락의 충격도 고스란히 확대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주요 기술적 지지선을 시험하다’라는 보고서에서 “최근 출시된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의 급격한 디레버리징(강제 매도)이 장중 변동성을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증시 조정의 원인으로 ▲인공지능(AI), 특히 프론티어 모델 수요에 대한 의구심 ▲AI 설비투자(Capex) 사이클 우려를 꼽았다. 여기에 ▲수급 꼬임 ▲ 이란 긴장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도 영향을 미쳤다며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기관 팔고 개인 실탄도 줄었다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매도세도 지수를 끌어내렸다. 국내 증시가 단기간 급등한 뒤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고 개인투자자의 자금 여력마저 약해져 수급 부담이 커졌다.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외국인 주식자금은 323억7000만달러 순유출돼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외국인 주식자금은 올해 1월부터 6개월 연속 순유출됐다. 상반기 누적 순유출액은 1102억1000만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170조682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순유출액 70억7000만달러의 15배를 웃돈다.
기관도 매도 행렬에 가세했다. 이달 들어 기관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원 이상 순매도했다.
개인투자자의 자금 여력도 빠르게 약해졌다. 매수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24일 136조5527억원까지 불어났지만 지난 10일 105조5757억원으로 줄었다. 약 보름 사이 30조9770억원, 22.7% 감소했다.
‘빚투’ 규모도 줄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달 24일 38조6328억원까지 늘었지만 지난 10일 35조5739억원으로 감소했다. 3조589억원, 7.9% 줄어 지난달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강대승 SK증권 연구원은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비중은 지난 9일 기준 10.2%로 6월 9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해 이란 전쟁 당시 수준을 웃돌았다”며 “순매수 규모는 유지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던 신용과 예탁금이라는 자금의 기초체력은 이미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추세 훼손은 아니다…7월 말 ‘실적’에 쏠린 눈
본격적인 2분기 실적 시즌은 시장의 하방을 지지할 변수로 꼽힌다. 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가운데 메타는 오는 29일, 아마존은 30일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30일, SK하이닉스가 7월 말 실적 발표와 컨퍼런스콜을 앞두고 있다.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계획과 국내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 수요 전망이 반도체주와 코스피의 방향을 가를 전망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격은 약세를 말하고 있지만 이익과 단가, 밸류에이션은 아직 그 신호를 확정하지 않았다”며 “본질은 AI 설비투자에 있고 답은 7월 말에서 8월 초 빅테크 가이던스 전까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낙폭이 컸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추세적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국인 수급이 안정되지 않았고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미국 통화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반도체 대형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높은 변동성도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
또, 단기간에 이전 고점을 회복하는 ‘V자 반등’보다는 반등 뒤 저점을 다시 확인하는 ‘W자형’ 흐름에 대비해야 한다. 가격 매력은 높아졌지만 외국인 수급과 반도체 업황, 기업 이익 전망을 더 확인해야 한다.
노동길 연구원은 “완전한 V자 복귀를 전제하기보다 W 형태의 리테스트를 감수해야 한다”며 “현물 코어는 유지하되 레버리지는 줄이고, 신규 매수는 6600선 방어와 다음 이익 컨센서스 확인 이후 분할 접근할 구간”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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