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LG전자가 58년간 축적한 냉난방공조(HVAC) 기술을 앞세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발생하는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어하느냐가 AI 데이터센터 경쟁의 승부처인 만큼 칠러와 냉각수분배장치(CDU) 등 기존 HVAC 역량을 바탕으로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의 연산량과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냉각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AI 서버에 탑재되는 GPU는 기존 서버용 반도체보다 전력 소모와 발열량이 높아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고성능 냉각 시스템 도입이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한 관계자는 “AI GPU는 전력 소모와 발열이 크기 때문에 서버 간격 조정이나 고성능 냉각 시스템 적용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AI 데이터센터 경쟁력은 전력과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LG전자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에어컨과 냉난방공조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상업용 공조 등 B2B 사업을 지속 확대해왔다. 시장 자체의 성장성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HVAC 시장 규모는 2025년 5249억달러(약 808조원)에서 연평균 8.1% 성장해 2035년에는 1조2000억달러(약 1848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는 AI 시대에 맞춰 새롭게 냉각 사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확보한 공조 기술이 AI 인프라 확대와 만나 성장 기회를 얻은 것”이라며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력이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현재 AI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초대형 칠러와 CDU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칠러는 데이터센터 내부 냉각에 필요한 냉수를 생산·공급하는 장비이며, CDU는 서버 내부로 전달되는 냉각수의 온도와 흐름을 조절하는 핵심 설비다. AI 서버의 고집적화로 기존 공기 냉각 방식의 한계가 나타나면서 액체 기반 냉각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냉각 장비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통합 솔루션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친환경 열회수 시스템과 전력 소비 절감형 직류 솔루션 등을 통해 냉각 효율을 높이고, 데이터센터 운영 전반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성과는 이미 숫자로 구체화되고 있다. LG전자의 2025년 데이터센터향 칠러 수주 실적은 전년 대비 3배 수준으로 성장했다. 미국 등 글로벌 주요 지역 AI 데이터센터에 냉각 솔루션 공급을 확정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 참여도 추진하고 있다. 차세대 냉각 방식으로 꼽히는 액체냉각 시장 진입을 위한 인증 절차도 진행 중이다.
LG전자의 경쟁력은 계열사와의 협업을 통한 통합 대응 역량이다. LG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 기술과 LG CNS의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DBO) 역량을 결합해 냉각, 전력, 운영을 아우르는 AI 데이터센터 솔루션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과정에서 냉각뿐 아니라 전력 안정성과 운영 효율까지 요구되는 만큼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LG는 HVAC 장비뿐 아니라 그룹 내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 역량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냉각부터 전력 관리, 운영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제안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핵심 부품 경쟁력 확보에도 힘을 싣고 있다. LG전자는 컴프레서와 모터를 자체 개발·생산하고 있으며, 열교환기·인버터·히트펌프 등 HVAC 핵심 기술 고도화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생산부터 판매, 설치, 유지보수까지 현지에서 대응하는 현지완결형 사업 구조를 통해 글로벌 시장 대응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술력과 함께 지역별 파트너십 확보도 중요한 경쟁 요소로 꼽힌다. LG전자는 차별화된 HVAC 솔루션 역량을 기반으로 주요 지역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중동 등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는 지역에서 수주 기회를 넓혀가고 있다. 중동은 인도, 브라질 등과 함께 B2B 냉난방공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의 주요 신흥 시장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AI 산업 성장과 함께 열관리 시장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의 중심은 GPU와 메모리 반도체이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열관리 기술도 필수 요소”라며 “AI 가치사슬이 확대될수록 냉각 기술은 핵심 후방 인프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