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개봉한 '토이스토리5'가 올 여름 전 세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면서 제작사인 '픽사'에도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픽사'가 글로벌 콘텐츠 강자로 꼽히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의 계열사라는 사실에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디즈니는 픽사를 비롯해 마블, 루카스필름, 20세기 스튜디오 등 내로라하는 콘텐츠 기업을 소유한 글로벌 콘텐츠 그룹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런 디즈니를 일군 주역은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를 중심으로 한 디즈니 가문이다.
토이스토리부터 어벤져스, 아바타까지…세계인의 눈과 귀, 마음까지 섭렵한 '디즈니 왕국'
지난 1923년 창립된 디즈니는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한 곳이다. 지난해 디즈니의 공식 매출은 944억달러(약 123조원)로 전년 대비 3% 늘었고 영업이익도 176억달러(약 24조원)로 12% 증가했다. 특히 순이익은 124억달러(약 17조원)로 전년보다 74억달러(약 10조원) 늘며 무려 두 배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다. 시가총액도 1700억달러(약 221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중 넷플릭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베스트 글로벌 브랜드 2025'에서 디즈니는 브랜드 가치 순위 17위에 이름을 올렸다.
디즈니는 국내 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존에도 공식·비공식 루트를 통해 크고 작은 작품을 선보이긴 했지만 한국 시장에 공식으로 진출한 계기는 1990년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디즈니 계열 영화의 배급을 대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992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를 출범시키며 애니메이션 수입과 배급, 캐릭터 라이선스 사업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국 시장에서 디즈니의 위상은 흥행 성적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겨울왕국 1·2'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등은 모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성과를 일궜다. 또 지난 2021년 11월부터는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OTT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의 매출액은 431억원이다. 국내 영화 배급 시장 점유율은 2위(13.6%)에 올라 있다.
글로벌 콘텐츠 업계에서는 디즈니가 100년 넘게 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기 콘텐츠를 활용한 사업 확장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으로 디즈니는 자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테마파크 '디즈니랜드'로도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 캐릭터 라이선스, OTT 플랫폼 등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하나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을 영화, 테마파크, 스트리밍 등으로 연결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전략의 모범 사례라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3월 기준 디즈니의 최대주주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7.80%)이다. 이어 미국 자산운용사 뱅가드 캐피털(6.63%),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4.82%) 등도 대주주에 올라 있다. 나머지 지분(80.75%)은 다른 기관투자자와 일반주주가 나눠 갖고 있다. 디즈니 산하에는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0세기 스튜디오 등 네 곳의 계열사가 존재한다. ▲픽사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 ▲마블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 ▲루카스필름 스타워즈, 인디아나존스 등 ▲20세기 스튜디오 아바타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IP 강자들이다. 디즈니는 2006년 픽사(74억달러), 2009년 마블(40억달러), 2012년 루카스필름(40억달러), 2019년 21세기폭스 영화·TV 자산(713억달러) 등을 차례로 사들이며 '디즈니 왕국'을 완성했다. 디즈니는 이들 기업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동생은 창작 활동, 형은 경영 시스템 구축…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파이오니어(Pioneer)'
역사상 가장 성공한 콘텐츠 기업으로 일컬어지는 디즈니의 시작은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즈니 가문의 시작은 엘리어스 디즈니와 플로라 콜 디즈니 부부였다. 건설업자이자 사업가였던 엘리어스 디즈니와 교사였던 플로라 디즈니는 슬하에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다. 다섯 남매 가운데 훗날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역사를 바꾼 인물은 셋째 로이 올리버 디즈니와 넷째 월트 디즈니 형제였다. 월트는 1922년 캔자스시티에서 홀로 만화 스튜디오를 운영했으나 얼마 가지 못해 파산하게 됐다. 이후 수중에 약 40달러를 들고 형인 로이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월트는 다시 만화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로 결심하고 형과 힘을 합쳐 1923년 10월 '디즈니 브라더스 카툰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 40년 동안 형제의 합작은 계속됐다. 형 로이는 재무와 경영을 맡고 월트는 작품 구상과 제작을 맡았다. 돈과 작품이라는 형제의 단순한 역할 분담이 오늘날 디즈니 제국의 초석이 된 셈이다.
디즈니가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난 계기는 1928년 미키마우스의 탄생이었다. 직전 해인 1927년에도 '오스왈드 더 럭키 래빗'이라는 캐릭터로 일부 성공을 거뒀지만 배급사와 재계약 과정에서 캐릭터 저작권과 핵심 애니메이터들까지 잃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훗날 "캐릭터 소유권은 반드시 창작자가 가져야 한다"는 디즈니의 철학으로 이어졌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디즈니는 1928년 유성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로 미키마우스를 탄생시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1937년에는 세계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흥행시키며 '긴 작품은 흥행할 수 없다'는 업계의 공식마저 깨는 저력을 과시했다. 1955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하며 '캐릭터 IP'를 활용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영화와 테마파크, 캐릭터를 하나의 사업으로 연결하는 모델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동생 월트가 작품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뒀다면 형인 로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다른 능력을 과시했다. 일례로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제작 과정에서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사 곳간이 바닥을 보이자 대출까지 일으키며 동생의 창작 활동을 도왔다. 이후에도 월트가 새로운 사업을 전개할 때마다 은행 대출, 투자 유치 등을 통해 든든한 우군 역할을 자처했다. 캐릭터 IP 사업을 체계화해 영화 흥행에만 의존하지 않는 수익 구조를 만든 장본인도 로이였다. 이후 1966년 동생 월트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은퇴를 미루고 다시 디즈니 회장으로 복귀해 동생이 구상했던 '월트 디즈니월드'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1971년 12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1세대 경영인들이 세상을 떠난 후 회사 경영을 맡은 인물은 로이의 외동아들 로이 에드워드였다. 디즈니 부회장과 애니메이션 부문 회장을 지낸 그는 두 차례 회사의 최고경영진 교체를 주도하며 디즈니의 사업 방향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놓았다. 1984년 당시 론 밀러 회장 겸 CEO의 보수적인 경영 방식에 반발해 경영진 교체를 이끈 뒤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경영 복귀 직후에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의 흥행을 이끌어 냈다. 또 2003년에도 당시 CEO 마이클 아이스너의 디즈니 정체성에서 벗어난 경영 방식을 문제 삼아 주주운동 조직인 '세이브 디즈니(Save Disney)' 캠페인을 조직했다. 그 결과 2005년 아이스너 CEO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로이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난 뒤 디즈니 경영에 있어 디즈니 가문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로이 에드워드의 장녀인 수잔 디즈니 로드는 부모가 설립한 '로이 앤드 패트리샤 디즈니 가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고 장남 로이 패트릭 디즈니는 투자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차녀 애비게일 디즈니는 영화 제작자이자 사회운동가로, 차남 티머시 디즈니는 영화감독·제작자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이들 중 디즈니 이사회에 참여하는 인물은 없다.
창업자 가문의 빈자리는 전문경영인들이 채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이클 아이스너는 1984년부터 2005년까지 파리 디즈니랜드 개장과 ABC 인수 등을 이끌며 디즈니를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일궈냈다. 이후 취임한 밥 아이거 CEO는 올해 초까지 무려 20여 년간 디즈니를 이끌며 픽사와 마블을 비롯한 자회사 인수를 주도해 오늘날의 '디즈니 왕국'을 건설했다. 현재 디즈니의 경영은 올해 3월 취임한 조시 다마로가 CEO를 맡고 있다. 약 28년간 디즈니에 몸담아 온 다마로 CEO는 테마파크·리조트 사업을 총괄한 '디즈니 익스피리언스' 부문 수장을 지낸 이력을 지녔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디즈니의 성공은 창작을 맡은 월트와 경영을 책임진 로이 형제의 완벽한 역할 분담에서 시작됐다"며 "혁신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와 이를 사업으로 연결하는 경영자가 균형을 이룬 것이 오늘날 '디즈니 왕국'의 기틀이 된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디즈니는 과거 미키마우스부터 현재의 마블, 스타워즈 등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강력한 IP를 창출하고 꾸준히 확보해 왔다"며 "캐릭터 상품부터 테마파크, OTT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한 OSMU(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IP나 자료를 여러 매체·형식·채널로 확장해 활용하는 전략)는 디즈니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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