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나 응급진료는 집 가까운 병원에서, 암이나 고난도 수술은 충분한 경험을 갖춘 거점병원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지역의료의 모습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의료혁신위원회가 실시한 시민 공론화 결과, 응급·필수의료는 생활권 안에서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암 등 고난도 치료는 지역 거점병원을 중심으로 집중하는 의료체계에 높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혁신위원회 시민패널 운영위원회는 1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1차 공론화 숙의토론회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성별과 연령, 거주지역, 의료 접근성 등을 고려해 선정된 시민패널 300명이 참여했으며, 최종 분석에는 세 차례 설문에 모두 응답한 291명의 의견이 반영됐다.
일상 진료와 응급의료는 '생활권 안에서'
조사 결과 시민들은 의료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적정한 진료권이 달라져야 한다고 인식했다.
가장 많은 응답자는 감기와 만성질환 같은 일상 진료는 자신이 거주하는 시·군·구 안에서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야간·휴일 소아진료와 24시간 응급실, 분만 서비스 역시 지역 내에서 제공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특히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처럼 치료가 몇 분, 몇 시간이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응급질환 역시 가능한 한 가까운 지역에서 신속한 처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입원과 일반 수술은 인근 생활권 병원에서, 암이나 장기이식 등 고난도 치료는 광역 거점병원에서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완결형 의료체계'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지역에서 해결 가능한 의료는 지역 안에서 마무리하고, 고난도 진료는 권역별 거점병원에 집중하는 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골든타임' 확보
시민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분야로 꼽은 것은 응급의료였다.
응답자의 가장 많은 비율은 응급환자가 골든타임 안에 최종 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했다.
그 뒤를 이어 지역·필수의료 인력 확충, 국립대병원의 권역 거점병원 육성, 지역 수술병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응급실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환자가 적절한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되고 최종 치료까지 연결되는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근 정부 역시 권역응급의료센터 기능 강화와 응급환자 이송체계 개선을 의료개혁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지역 병원이 믿을 만하다면 이용하겠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 거점병원에 대한 이용 의향이었다.
토론 전에는 지역 거점병원의 역량이 강화될 경우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81.1%였지만, 숙의 과정을 거친 뒤에는 89.6%까지 상승했다.
의료취약지역 거주자의 변화는 더욱 뚜렷했다. 사전 조사에서는 지역 병원 이용 의향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토론 이후에는 90%를 넘어서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역 병원의 의료 수준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다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완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된다.
시민들은 지역 거점병원을 이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의료진의 전문성과 경험을 꼽았다.
이어 24시간 응급 대응체계, 오진을 줄일 수 있는 표준화된 진료시스템, 중증 진료과의 안정적 운영, 첨단 검사·수술 장비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지역 의료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가치로 의료의 질을 선택한 응답이 의료 접근성을 선택한 응답보다 크게 높았다.
이는 단순히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원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역의료가 살아야 지방도 산다
지역의료는 의료서비스를 넘어 지역 정주 여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0% 이상은 지역의료 수준이 거주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답했으며, 의료서비스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지방에서 계속 생활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숙의 과정 이후 86.3%까지 증가했다.
의료 접근성이 지역 인구 유출과 지방소멸 문제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역의료 강화가 단순한 보건정책이 아니라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라는 인식도 함께 확인된 셈이다.
의료혁신위원회는 이번 공론화 결과를 이달 말 정책 논의에 반영할 예정이다.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지역 거점병원 육성, 필수의료 인력 확충 등을 중심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시민 의견은 향후 세부 정책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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