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림·전략당·이수근·유럽간첩단, 그 모든 사형 구형의 자리에 그가 있었다
2026년 여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황진호(黃振灝, 1935~) 항목 부제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4건의 간첩사건에서 5명의 목숨을 앗아간 공안검사."
이수근 사건의 피해자 김판수는 검찰 조사를 받을 때 검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증언했다.
"너는 재판도 필요 없고 그냥 처벌해야 되지만, 대한민국이 좋아서 재판을 한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재판은 형식이라고 직접 말한 것이다. 그 검사가 황진호였다.
1935년 일본 나고야 출생, 마산고에서 등록금을 빌려 졸업하다
황진호는 1935년 11월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성장했다. 마산고를 거쳐 1953년 서울법대에 입학했지만, 생활이 어려워 미군 군무원으로 3년을 일하다 9년 만인 1962년 졸업했다. 전 국무총리 노재봉은 마산고 동기로서 형편이 어렵던 황진호의 한 학기 등록금을 대주기도 했다.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 동기로는 이회창, 박우동, 박만호(1936~), 박종연(1927~), 오병선(1939~2014), 최상엽(1937~)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4명이 황진호와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사 속의 동류, '재판은 형식'이라 말한 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소련 대숙청 시기 검사들은 종종 피의자에게 직접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운명은 이미 결정됐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절차일 뿐이다."
황진호가 김판수에게 한 말이 정확히 같은 구조다. 재판이 형식임을 검사 자신이 시인하는 순간, 사법정의는 죽는다. 황진호는 1968년 검찰잡지에 "인간의 자유에 깊은 신뢰를 부여하면서 국가의 안전을 지켜나가는 법 운영"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 글을 쓴 같은 사람이, 직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에서 4명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의 마지막 호소를 무시하다
황진호의 첫 정점은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다. 중앙정보부 수사관이 임석한 가운데 신문하며 공포감을 조장하고 허위진술을 강요했다. 경제학자 권재혁은 검찰 기소 직후 "황 검사님 귀하"라는 자술서를 써서 동지들의 형량을 덜어주고 자신에게 가중형량을 부가해달라고 호소했다. 황진호는 이를 무시하고 전원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1969년 11월 4일, 권재혁의 사형이 집행됐다.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1969년, 이수근, 항소를 기다리지 않은 밤
이수근 위장간첩사건에서 황진호는 사형을 구형했다. 1969년 5월 19일 사형이 선고된 그날 밤, 황진호는 이수근의 항소에 대비해 밤 12시까지 대기했지만 이수근은 항소하지 않았다. 7월 2일, 사형이 집행됐다. 2018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50년이 걸렸다.
1969년, 박노수와 김규남, 7·4남북공동성명 직후의 사형집행
박노수·김규남 유럽거점 간첩단사건에서도 황진호는 사형을 구형했다. 박노수의 누나는 동생이 성기고문까지 당했다고 증언했고, 조카는 외삼촌 김규남이 흰 사각팬티만 입은 채 야구방망이로 맞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재심을 청구했으나 그 심리가 마치기도 전인 1972년 7월,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사형이 집행됐다. 남북화해를 발표한 정권이, 그 직후 조작간첩들을 서둘러 처형하고 10월 유신쿠데타를 감행했다.
1967~1968년, 동백림 사건의 6명 사형구형
황진호는 동백림 사건 1심 공판검사로도 참여해 정하룡, 조영수, 윤이상(1917~1995), 천병희, 최정길, 정규명 등 6명에게 사형이 구형되는 자리에 있었다. 선고는 사형 2명, 무기징역 4명이었다.
1967년, 김두한 구속, 사카린 밀수사건의 뒤처리
황진호는 1966년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 특수수사반으로 차출돼 이병철(1910~1987)을 직접 신문했으나, 정작 이병철은 불기소됐다. 이듬해 이 사건을 국회에서 폭로하며 국무총리에게 오물을 투척한 김두한 의원을 반공법으로 구속기소했다. 김두한은 보복성 수사 끝에 정치적 생명이 끝났고, 1972년 고문후유증으로 55세에 사망했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소련식 "재판은 형식"이라는 검사의 발언은 가장 위험한 사법부패의 증거로 평가된다. 검찰이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미리 정해진 결론의 집행자가 되는 순간, 법치주의는 죽는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황진호가 김판수에게 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
"너는 재판도 필요 없다."
그 한 문장이, 한국현대사에서 검찰권력이 얼마나 위험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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