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등 아시아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큰 폭으로 상승한 가운데,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관련 종목의 투자 비중을 줄이며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피델리티인터내셔널과 블랙록 등 주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최근 아시아 반도체 기업들의 높은 밸류에이션과 확대된 변동성을 이유로 투자 비중을 조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들의 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은 최근 6개월 동안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세 기업은 MSCI 신흥시장(EM) 지수에서 약 29%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지수 비중은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주요 기업들의 비중을 합한 것보다 큰 수준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자산운용사들은 특정 종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캐롤라인 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 집중도가 과도한 수준인지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블랙록 역시 신흥시장 주식 비중을 일부 축소하고 있다. 웨이 리 글로벌 최고투자전략가는 "상당 부분의 실적 기대감이 이미 주가에 반영됐다"며 "차익 실현 이후 시장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MSCI 신흥시장 지수는 올해 약 19% 상승했지만 최근에는 차익 실현 매물이 증가하면서 상승세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올해 들어 한국 증시에서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신흥시장 펀드 운용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수를 그대로 추종할 경우 반도체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반면, 비중을 줄일 경우 AI 산업 성장에 따른 추가 상승 기회를 놓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UBS는 AI 시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등 주요 업체들의 과점 구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기술 산업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향후 변수도 적지 않다. 미국 정부의 인텔 지원 정책과 함께 중국의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상장 추진은 글로벌 메모리 시장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AI 투자 확대가 지속되는 동안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단기적으로는 높은 밸류에이션과 투자 집중에 따른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신중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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