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올해 2월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 규정’을 개정하며 ‘국가대표 지도자 및 전담팀 선발 절차’를 손봤다. 대표팀 지도자와 대표팀 전담팀은 1개월 이상 공개 채용 절차를 걸쳐 선발해야 한다. 대한체육회 정관 및 규정의 영향을 받는 대한축구협회는 해당 규정을 준용했다. 지난 5월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김은중 감독 사례가 대표적이다. A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도 위와 같이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홍명보 감독의 선임과 그 실패는 공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데서 출발했다. 축구협회는 그간 홍 감독 선임에 있어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올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 특정감사 결과에 대한 통보 및 조치 요구 취소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며 절차적 문제가 있었음이 명확해졌다. 홍 감독은 공개 지원, 심층 면접 등 절차를 무시하고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결과가 모든 걸 바꾼다’라는 스포츠계 통념으로 여론을 바꿔보고자 했으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만 안고 물러났다.
홍 감독 선임 과정은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지만, 평가 기준도 논란이었다. 축구협회는 기술철학을 확립하겠다며 ‘MIK(Made In Korea)’를 주창했다. 2024년 6월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는 MIK의 세부 게임 모델을 제시하며 카운터 프레싱, 집약 블록 형성 등을 이야기했다. 그 예시는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였고, 활동량이 최하위 수준이지만 우수한 카운터 프레싱으로 세계를 정복했다며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르헨티나가 리오넬 메시를 위한 특별한 팀을 만들었다는 걸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수치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한 오류였다.
그나마도 홍 감독 선임에는 MIK가 평가표가 아닌 합리화 수단으로 전락했다. 2024년 문체부 특정감사에서 강유정 당시 국회의원이 공개한 이 이사의 대표팀 감독 최종 3인 후보 비교표는 MIK의 허상을 잘 보여줬다. 홍 감독에게는 카운터 프레싱, 라볼피아나, 스위칭 플레이 등 있어보이는 말들을 잔뜩 달아두고 칭찬한 반면 다른 두 후보였던 다비트 바그너, 거스 포옛 감독은 MIK와 어긋나는 점을 어떻게든 찾아낸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바그너 감독은 카운터 프레싱이나 수비 블록 형성 측면에서 MIK와 잘 맞았는데, 전력강화위원회는 바그너 감독의 전방압박 수비 뒷공간 노출과 선수 체력 문제가 우려된다며 오히려 그걸 단점으로 지적했다.
이러한 추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MIK가 아닌 제대로 된 축구철학과 이를 바탕으로 한 평가표를 만들어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위한 규정은 마련됐다. 엄정한 평가표를 마련해야 하고, 그 기반이 될 축구 철학을 명확히 구비해야 한다.
그 중요성은 독일축구협회의 실패로도 잘 드러난다. 독일축구협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요아힘 뢰브 감독을 경질하고 한지 플릭,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이 거쳐갈 동안 사령탑의 변화만 있었을 뿐 독일이 강력했던 시절의 위용을 되찾지 못했다. 빠르고 직선적으로 전방에 공을 투입한다는 독일 축구 전성기의 대전제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관련해 독일 국가대표 주장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필립 람은 “스페인은 20년 동안 확고한 축구 철학을 유지했다. 프랑스는 경기 내내 공격적인 모습으로 임하는 명확한 계획과 스타일이 있다. 아르헨티나도 세계적인 선수 메시의 재능을 중심으로 팀을 완벽히 구축한 모범적 국가”라며 독일의 실패는 이러한 축구 철학의 부재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람이 언급하지 않은 이번 월드컵 또 다른 4강 진출국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축구 철학을 명확히 재설정해 강팀으로 재탄생했다. 잉글랜드는 2011년 유소년 육성 전략을 전면 개편해 유소년 선수들이 잉글랜드 프로 무대에 안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결과 유로 2연속 준우승,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8강 이상 진출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대한축구협회의 MIK가 A대표팀은 물론 유소년 육성 뿌리부터 시작하려 했던 철학이었음에도 아직 그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축구협회는 이미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해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김판곤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은 ‘능동적인 축구’를 기치로 여러 감독과 접촉한 끝에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했다. 벤투 감독이 적극적으로 한국행을 원했고, 훈련 모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한국 축구 발전 방향과 결이 맞았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벤투 감독 선임 당시 진행한 기자회견 또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현재 축구협회 사정상 벤투 감독을 데려오는 게 최선이었다는 걸 설득해냈다. 이임생 이사가 온갖 미사여구로도 홍 감독 선임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명확한 철학 아래 엄정한 평가표를 만들어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9월 말에 있을 하반기 A매치는 임시 감독으로 운영될 확률이 높아진 상황이기에 평가표에 공을 들일 시간도 확보됐다. 이를테면 MIK에서 중시했던 카운터 프레싱과 관련해 데이터로 명확한 기준을 둬 게임 모델을 확립해야 한다. 만약 축구협회가 당장의 게임 모델 확립보다 유소년 육성과 A대표팀 진입에 주안점을 둘 경우 이를 실현할 능력을 검증받은 감독을 선임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한체육회 규정 개정으로 한국인 감독의 경우 사단 구성이 어려워졌다는 점은 변수다. 외국인 감독은 예외 규정이 있어 사단을 꾸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국내 감독은 감독 따로, 코치 따로 뽑아야 하는 실정이다. 올림픽 대표팀에 선임된 김은중 감독 역시 이러한 애로사항 때문에 김태민 수석코치 한 명만 대동하는 데 그쳤고, 사단을 꾸릴 수 없다는 점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수락에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였음이 알려졌다.
이번 선임은 외국인 감독으로 가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단 장기적으로 규정 자체를 볼 때, 축구협회가 명확한 축구 철학을 실현하려면 국내 감독도 사단 단위의 감독 채용이 가능케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은 대한체육회와 협의를 통해 예외사항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공정하고 명확한 평가가 보장된다면 공개 채용 절차의 수정은 문제될 게 없다. 홍 감독의 실패는 공정하지 않고 애매한 평가 기준을 통한 선임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공개 채용으로 감독을 선임하더라도 ‘홍명보식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홍명보 감독 선임 실패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 모든 선임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실패 요인은 무엇일까. 홍 감독의 시작부터 끝까지 드러난 문제를 여섯 가지로 정리한다.>홍명보>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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