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의 안보 동맹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토(NATO) 정상회의를 전후한 유럽 외교가의 미묘한 기류를 흥미로운 표현으로 전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두고 서로의 불안과 고민을 적나라하게 털어놓는 비공개 논의를 '테라피 세션(therapy session)'이라 불렀다.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 가능성과 미국의 방위공약 불확실성 속에서, 더 이상 과거의 동맹만을 맹신할 수 없게 된 유럽 지도자들의 깊은 실존적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유다.
현재 유럽이 주판알을 튕기며 고심하는 선택지는 크게 둘로 나뉜다. 미국을 최대한 달래며 시간을 버는 독일 마르크 뤼터식 '플래터리(아부) 외교'와, 미국 의존을 줄이고 유럽 스스로 안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캐나다 마크 카니식 '자강(自强) 외교'다. 길은 달라 보이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된다. 미국이라는 오랜 배우자와의 '사랑 없는 결혼'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이혼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포스트-아메리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의 안방, 눈치 없이 문을 연 '방산 세일즈맨'
그런데 이 엄중한 역사의 전환기에서 대한민국의 행보는 기묘하다 못해 위태로워 보인다. 비유하자면, 집안 안방에서는 부부가 심각하게 이혼을 고민하며 재산 분할과 생존을 논하고 있는데, 넥타이를 맨 손님이 문을 쑥 열고 들어와 해맑게 외치는 꼴이다.
"많이 불안하시죠? 걱정 마십시오. 가성비 끝내주고 성능 확실한 최신형 무기가 여기 있습니다. 많이들 사십시오!"
물론 냉정하게 말해 방산 수출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방위산업 역시 국가 제조업의 핵심 축이며,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자 수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엄연한 국가 산업이다. 실제로 한국은 폴란드와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고, 루마니아와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국으로 협력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 축적해 온 한국 방위산업의 기술력과 제조업 경쟁력이 이뤄낸 분명한 성과다.
문제는 도덕적 선악의 유무가 아니라, '방산이 외교를 대체하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전략적 딜레마에 있다.
무기는 자동차나 반도체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자동차는 인간의 이동을 돕고, 반도체는 문명의 편의를 높이지만, 무기는 궁극적으로 '전쟁'과 '파괴'를 전제로 수요가 창출되는 특수한 상품이다. 방산기업은 역설적이게도 국제 정세가 불안하고 갈등이 고조될수록 번창하며, 평화가 정착되면 시장이 축소되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더욱이 현대의 방산 거래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단품 매매로 끝나지 않는다. 부품 공급망의 연계, 유지보수(MRO), 공동 개발, 나아가 정보 공유와 군사 훈련까지 엮이는 장기적인 '안보적 결속'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유럽의 대규모 재무장 프로세스에 깊숙이 발을 담근다는 것은, 단기적인 수출 실적의 달콤함 이면에 유럽의 복잡한 지정학적 위험과 동맹의 부담까지 우리 몫으로 떠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용주의의 덫: 특정 진영의 '군수기지'로 남을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외교 전략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서 다극화 질서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결속력은 예전 같지 않고, 중국·러시아·인도 등 브릭스(BRICS) 중심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무게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현 정부가 지향하는 대한민국 외교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전쟁과 분단의 고통 속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이유럽의 재무장 수요에 편승해 특정 진영의 '전천후 군수품 공급기지'가 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오히려 다극화되는 세계의 여러 축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전략적 자율성을 가진 평화 중견국'이 되는 것이 맞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의 행보는 철학 없는 실용주의, 즉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된 단견(短見)으로 보인다. 나토 정상회의 등에서 보여준 과도한 진영 외교와 러시아·중국을 겨냥한 날 선 발언들은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고,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완전히 끊어버린 채 얻어내는 방산 실적이 과연 지속 가능한 국익인지 의문이다.
평화가 곧 최고의 안보이자 국익이다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대전략은 단순히 자주포와 전차를 몇 대 더 많이 파는 '1차원적 세일즈'에 머물러선 안 된다. 우리의 진짜 미래는 한반도의 평화적 안정 관리를 바탕으로,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경제·물류·외교의 평화 허브가 되는 것에 있다.
과거 우리가 꿈꿨던 두만강 공동개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북방경제 협력과 같은 거시적 비전들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현실의 장벽에 갇혀 걸음이 멈춰져 있지만, 지정학적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이 외교적 공간을 넓히기 위해 반드시 쥐고 있어야 할 전략적 자산임에 분명하다. 이 거대한 꿈을 전면 수정하고 무기판매상으로 나서 냉전의 최전선 전초기지를 자처하는 현실은 참으로 묵시록적이다.
방산은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수단(Means)일 수는 있어도, 국가 전략 그 자체인 목적(Ends)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화려한 수출 청구서가 내일의 감당할 수 없는 지정학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축배를 들어야 할 순간은 K-무기의 계약 도장이 찍혔을 때가 아니라, 한반도와 글로벌 무대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평화의 영토를 한 뼘 더 넓혔을 때다. 다극화 시대의 진짜 실력은 총칼을 많이 파는 세일즈 능력이 아니라, 갈등을 중재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외교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한 것은 '총칼의 세일즈'가 아니라, 침몰하는 진영 논리의 바다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평화의 생존 전략'이다.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