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분홍빛 보자기 배경 앞, 금빛 궁중 복식이 위엄을 드러낸다. 푸른 치마의 굵은 주름, 붉은 신, 단정히 틀어 올린 머리 장식은 태평무가 품은 오랜 기원을 상징한다. 강윤주의 전통춤 공연 ‘태평장춘(太平長春)'이 ‘한영숙제 박재희류 춤으로 미래를 잇는 희망의 봄’을 부제로 막을 올린다.
‘태평장춘’은 태평한 세상과 오래 지속되는 봄의 기운을 뜻한다. 태평무가 지닌 축원의 성격, 살풀이춤의 해원, 승무의 정화, 학무의 고고한 기품, 벽파입춤의 단아한 몸짓이다. 과천시 승격 40주년을 맞은 해에 과천에서 성장한 춤꾼 강윤주가 고향 무대에서 전통춤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강윤주는 과천 청계초등학교와 문원중학교를 졸업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 무용과와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한국무용전공을 거쳐 한국무용의 길을 걸었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이자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다. 사단법인 춤랑예술원 이사장, 강윤주춤랑무용단 대표로 활동한다. 벽파춤연구회 감사, 국가무형유산 태평무전승회 회원, 한영숙춤보존회 회원으로 전승 활동 중이다.
공연의 핵심은 한성준, 한영숙, 박재희로 이어지는 한국 전통춤의 주요 맥이다. 강윤주는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한영숙제 박재희류’ 이수자로 박재희 선생에게 배웠다. 한성준이 정리한 춤의 뿌리, 한영숙이 세운 절제와 품격, 박재희가 이어온 손끝의 미학을 자신의 몸으로 다시 해석한다. 프로그램은 승무, 학무, 살풀이춤, 벽파입춤 ‘가인여옥(佳人如玉)’, 태평무로 구성했다. 각 작품은 한국춤의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장삼의 긴 선이 공기를 가르는 승무, 학의 기품을 닮은 학무, 수건 끝에 감정을 실어 보내는 살풀이춤, 맨몸 사위의 기본을 보여주는 입춤, 태평성대의 기원을 담은 태평무가 단계적으로 펼쳐진다.
한영숙류 승무는 공연의 첫 호흡을 열기에 알맞은 작품이다. 승려 복식을 연상시키는 장삼과 고깔, 느린 발디딤, 깊게 눌렀다 풀어내는 호흡이 핵심이다. 장삼은 팔의 움직임을 길게 확장한다. 몸은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옷자락은 공기 속에 긴 선을 남긴다. 북가락에 이르면 쌓아온 고요가 몸 밖으로 터져 나온다. 승무의 매력은 금욕적 정적과 강한 박동 사이의 간극에 있다. 학무는 고고한 기품을 전한다. 학의 몸짓을 본뜬 춤은 팔의 선, 목의 각도, 발의 이동이 모두 절제되어야 한다. 느리게 펼쳐지는 동작에는 새의 날개짓을 닮은 여백이 있다. 박재희가 재구성한 한영숙류 학무는 궁중무용의 우아함과 전통춤 특유의 내면적 호흡을 아울러 보여준다. 흰 의상과 낮은 발디딤, 유려한 팔사위는 보는 이에게 청정한 감각을 남긴다.
살풀이춤은 한과 해원의 정서를 담는다. 수건은 감정의 궤적이다. 손끝에서 풀린 수건은 바람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몸 가까이 돌아온다. 발은 깊게 디디고, 상체는 작은 떨림으로 감정을 전한다. 살풀이춤의 미학은 격정의 표출보다 눌러 참은 감정의 여운에 있다. 흐느끼듯 풀리는 선, 다시 모아지는 몸, 아주 작은 고개짓 하나가 춤의 밀도를 높인다. 벽파입춤 ‘가인여옥(佳人如玉)’은 박재희류 춤의 단정한 미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입춤은 춤꾼의 몸 자체가 중심이 된다. 발디딤, 손목의 회전, 어깨의 낮은 움직임, 눈길의 방향이 모두 춤의 언어다. ‘가인여옥’은 옥처럼 단정하고 빛나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뜻한다. 춤은 화려함보다 품위로 나아간다. 절제된 사위 안에서 호흡의 깊이와 몸의 균형이 드러난다.
대미는 한영숙제 박재희류 태평무다.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춤으로 알려졌다. 화려한 궁중 복식, 섬세한 발놀림, 장단의 세밀한 변화가 어우러진다. 발끝은 빠르고 정확하다. 상체는 높고 품격 있게 서 있다. 작은 발동작 안에 장단의 변화가 있다. 손사위는 절제된 곡선을 그린다. ‘태평장춘’은 태평무에 담긴 축원성을 공연 전체로 확장한다. 승무에서 마음을 씻고, 학무에서 기품을 세우며, 살풀이춤에서 맺힌 감정을 풀어낸다. 벽파입춤은 몸의 기본으로 돌아가고, 태평무는 평안을 기원하며 끝맺는다. 다섯 작품은 각각 독립된 춤이지만, 한 편의 의례처럼 이어진다.
무대에는 강윤주를 비롯해 강소정, 유혜리, 조유진, 최미옥, 최자인, 강민정, 윤영숙, 성은미, 김신아, 현민아, 정윤진, 고혜영, 강민지 등이 오른다. 벽파춤연구회와 국가무형유산 태평무전승회도 우정 출연한다. 전통춤의 맥을 나누어 온 예인들이 한 공연에서 각자의 호흡을 더한다. 음악은 전통음악그룹 판이 맡는다. 장구 유인상, 아쟁 이관웅, 대금 이성준, 피리 이정훈, 가야금 김나영, 꽹과리 고령우, 징 이현승이 연주한다. 전통춤에서 음악은 배경음이 아니다. 장단은 발을 움직이게 하고, 선율은 손끝의 방향을 이끈다. 장구와 꽹과리는 춤의 박을 세운다. 대금과 피리는 호흡의 길이를 열어준다. 아쟁과 가야금은 감정의 바닥을 만든다. 징의 울림은 공간을 넓히며 춤의 끝자락에 여운을 남긴다.
강윤주는 2008년 제5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민족무용부문 시니어 2등, 2013년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논문포스터대회 대상 등을 수상했다. 2025년에는 제16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무용부문을 받았다. 주요 작업으로는 2016년 안무작 ‘길에서 길을 묻다’, 2021년 강윤주의 전통춤 ‘화무화첩’, 2023년 강윤주의 전통춤 ‘화무화폭’ 등이 있다. 예술감독과 구성·연출은 강윤주가 맡는다. 무대감독 박근우, 조명디자인 원재연, 음향감독 이원만, 의상감독 나희정 등 제작진이 참여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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