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강원도 동해시의 가을은 무릉계곡에서 시작된다. 두타산 자락을 따라 흐르는 물과 바위, 그리고 오래된 이름이 품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순간, 도시는 축제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매년 10월, 동해시를 대표하는 동해무릉제는 지역의 전통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무릉제의 출발은 이름에서부터 상징성을 띤다. ‘무릉’이라는 명칭은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이상향,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을 벗어난 평온한 세계를 뜻하는 이 표현은 동해 무릉계곡의 경관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문화적 상상력과 맞닿는다.
조선시대 문헌 '척주지' 속 '두타산기'는 무릉계곡의 가치를 이미 오래전에 기록했다. 암석이 이어진 계곡과 그 앞에 자리한 중대사는 당시에도 빼어난 풍광으로 평가받았다. 자연과 인간의 기억이 겹쳐진 장소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점은 무릉제의 성격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동해무릉제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공동체의 결속을 동시에 드러내는 의례에서 시작된다. 첫날 아침, 두타산 산신에게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산신제가 봉행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이어지는 풍년제는 공동체의 바람을 모으는 자리다. 한 해의 수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은 주민들이 공유하는 삶의 리듬을 반영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도 이러한 전통 의례가 이어진다는 점은 지역 정체성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전야제의 분위기는 전통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이어진다. 개막식과 공연,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을 만든다. 자연과 기술,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다.
둘째 날에는 거리 전체가 무대로 변한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퍼레이드는 공동체의 집단적 표현으로 읽힌다. 군악대를 선두로 펼쳐지는 행렬은 천상과 인간, 바다와 산을 아우르는 상징을 담아 도시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수륙재와 결합된 퍼레이드는 동해라는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다. 바다와 산, 인간과 신을 함께 담아낸 구성은 지역 문화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의 의미를 현재의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다.
민속경기는 축제의 또 다른 볼거리다. 널뛰기, 윷놀이, 그네, 씨름, 투호 등 전통 놀이가 한데 모여 세대를 잇는 장을 만든다. 참여하는 이들의 연령과 배경은 다양하지만, 놀이를 통해 형성되는 유대감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해군과 육군의 줄다리기는 무릉제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3전 2선승제로 진행되는 이 경기는 긴장과 환호가 교차하며 현장의 열기를 끌어올린다. 관람객과 참가자가 함께 호흡하는 순간, 축제는 하나의 공동체로 확장된다.
체육행사와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게이트볼대회, 궁도대회, 학생체육대회는 참여의 폭을 넓히고, 서예대전과 시조경창, 풍물놀이 경연은 전통 예술을 이어간다. 동시에 힙합댄스 경연과 마임축제는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구조는 무릉제가 지닌 포용성을 보여준다. 과거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문화와 결합하며 살아있는 축제로 자리 잡는다.
먹거리 장터도 펼쳐진다. 동해의 특산물은 지역을 체험하는 매개가 된다. 먹태, 두부, 복분자 등은 각각의 마을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묵호의 먹태는 바다의 시간을 품은 식재료다. 잘게 찢어 간장과 마요네즈에 곁들여 먹는 방식은 간결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바삭하면서도 깊은 맛은 방문객들에게 동해의 기억을 남긴다.
신흥마을의 두부와 웅녀동의 복분자 전통주는 또 다른 풍미를 전한다. 직접 만들고 맛보는 체험은 지역 문화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청소년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댄스 버스킹과 놀이마당은 젊은 세대가 축제의 주체로 나서는 장면을 만든다. 전통 중심의 구조 속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동해무릉제는 자연, 역사, 공동체가 서로 이어지며 지역 문화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지역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 이 축제에 담겨 있다.
결국 무릉제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재의 삶 속에서 전통을 새롭게 풀어내고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두타산 아래에서 시작된 이 축제는 해마다 새로운 기억을 더하며 동해의 시간을 이어간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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