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세상의 시계는 늘 숨 가쁘게 돌아가지만, 식물은 결코 타인의 속도에 맞춰 피어나지 않는다. 이른 봄의 매화부터 늦가을의 소국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고유한 계절을 품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유리 교수의 신간 '식물이라는 우주'는 흙 밑에서 묵묵히 뿌리를 뻗고 빛을 향해 끈질기게 비틀어 온 초록빛 생명체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통해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저자는 평생 현미경 너머로 식물 세포를 탐구해 온 생물학자다. 독학사로 출발해 컴퓨터공학에서 식물세포생물학으로 진로를 틀었고, 스위스 로잔을 거쳐 서울대 교수에 오르기까지 굴곡진 궤적을 밟았다. 캄캄한 흙 속에서 웅크린 씨앗처럼 완벽한 고립을 견디며 만개를 준비했던 개인의 이력이, 묵묵히 방향을 탐색하는 식물의 뿌리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멈춰 있는 듯 보이는 식물의 삶은 실상 한계에 맞서는 역동적인 투쟁의 연속이다. 염분을 걸러내는 맹그로브, 공중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틸란시아, 타인에게 기대어 상승하는 담쟁이까지 저마다 결핍을 극복하는 나름의 방식을 터득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환경이 아닐지라도, 현재 주어진 자리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루를 버텨내는 태도가 억겁의 세월을 살아남은 비결이다.
가을의 낙엽과 겨울의 휴면도 정지가 아니다. 풍요의 계절이 지나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과감히 덜어내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이듬해 피워낼 생명력을 조용히 비축한다. 빛이 사라진 밤조차 성장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활성산소의 공격을 피해 숨을 고르고 내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고유한 작동의 시간이다.
자연은 옳고 그름이나 정상의 기준을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무수한 다양성을 긍정하며 느리게 공존할 따름이다. 남보다 늦었다고 조바심 내거나 다른 궤도를 걷는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세한 곁뿌리를 내며 묵묵히 평형을 찾아가는 식물처럼, 우리 각자의 삶도 온전한 자신만의 속도와 계절에 맞춰 찬란하게 피어날 권리가 있음을 역설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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