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새로운 상권이 생겨나는 동안에도 오래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심 한가운데에는 과거의 생활과 건축, 전통문화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남아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그런 서울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서울 중구 필동 남산 자락에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은 1998년 문을 열었다. 지금은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찾는 대표적인 전통문화 공간이지만, 이곳은 한때 수도방위사령부가 자리했던 군사 보호 구역이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던 공간이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바뀌면서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
남산골한옥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살았던 한옥 다섯 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각기 다른 구조와 생활방식을 품은 집들이 모여 당시 사람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한옥은 모두 이전하거나 복원한 건물이다.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역사적 가치가 높은 가옥을 옮기거나 원형을 바탕으로 재현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덕분에 관람객은 시대별 한옥의 특징을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다.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한옥 특유의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흙길과 돌담, 기와지붕, 마당이 이어지고 계절마다 다른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도심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남산 숲과 연결된 자연환경 역시 이곳만의 매력이다.
순정효황후 윤씨 집안과 관련된 옥인동 가옥은 'ㅁ'자 구조를 갖춘 전통 한옥이다. 당시 상류층 생활공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간 배치가 눈길을 끈다.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은 왕실과 관련된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한자 '원(元)' 형태의 구조가 특징이며,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와 함께 살펴볼 만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오랜 연구를 거쳐 건물의 실제 주인이 밝혀지면서 명칭이 변경된 사례다. 과거에는 박영효 가옥으로 알려졌지만, 조사 결과 민영휘가 민씨 일가를 위해 지은 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 연구가 계속 이뤄지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무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집이다. 'ㄹ'자 형태의 구조와 실용적인 공간 배치는 당시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목수가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99칸 규모였지만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전통 목조건축 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한옥만 둘러보는 것으로 방문이 끝나지 않는다. 전통공예관에서는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며,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함께 운영된다. 잠시 쉬어가며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여유롭게 느낄 수 있다.
남산국악당도 빼놓을 수 없다. 국악 공연과 다양한 전통예술 프로그램이 열리며 서울 도심에서 우리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공연장 역할을 하고 있다. 계절별 공연도 꾸준히 이어진다.
서울 1000년 타임캡슐 역시 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다. 1994년 서울 천도 600주년을 기념해 매설된 이 타임캡슐은 오는 2394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시 생활용품과 시대상을 담은 물품들이 진공 상태로 보관돼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한복 체험과 한지공예, 전통놀이, 활 만들기, 한옥 만들기, 약선문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주말에는 실제 전통혼례가 열려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계절마다 열리는 문화행사도 방문 이유가 된다. 설과 추석에는 민속놀이와 공연이 펼쳐지고, 야간 개장 기간에는 조명이 더해진 한옥 풍경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낮과 밤의 모습이 전혀 다른 공간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의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건축, 공연, 체험, 휴식이 함께 어우러진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속에서 오래된 시간을 천천히 걸어볼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남산골한옥마을은 지금도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명소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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