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피부는 건강의 증거가 아니라 손상후 청구되는 영수증이다. 피부에게 이 계절은 공격이며 우리는 방어를 해야한다.
- 선크림은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를 갖고 있다. 상황에 따라 어떤 선크림을 발라야 할 지 고려해야한다.
- 여름은 색소 시술에는 나쁜 계절이지만 리프팅에는 무난하다. 유행하는 PDRN성분의 화장품 과 집 초음파 기기에는 저마다 장점과 한계가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얼굴에는 티가 난다.
며칠 사이 반 톤쯤 짙어진 피부색, 우리는 그걸 잘 쉬고 잘 놀았다는 증거로 여긴다.
피부 한 가운데 검은색 반점 같은게 있다. 벌레에 물린 상처를 그대로 햇빛에 노출 시키면 이렇게 PIH가 나타나게 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피부 과학의 언어로는 정반대다. 그을림은 훈장이 아니라 영수증이다. 자외선이 피부 세포의 DNA를 건드리자 피부가 급히 멜라닌이라는 검은 우산을 펼쳐 든 것. 그게 태닝이다. 그을린 피부색은 손상에 대한 방어 반응이고 방어가 일어났다는 건 이미 공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여름 피부의 모든 이야기가 여기서 출발한다. 여름은 피부를 공격한다. 따라서 우리는 방어를 해야 한다.
여름이 남기는 자국
여름 피부가 가장 오래 앓는 건 화상도 주름도 아니다. 자국이다.
피부에 자극이나 손상이 생기면 그 자리에 멜라닌이 몰려, 원래보다 짙은 갈색으로 남는다. 여드름 짠 자리가 거뭇해지는 것, 벌레 물린 데가 몇 달째 안 빠지는 것. 다 같은 원리다. 이것을 PIH라고 한다. 한국인의 피부는 여기에 유독 약하다. 멜라닌이 부지런히 활동하는 우리 피부는 같은 자극에도 더 쉽게 더 오래 자국을 남긴다. 그러니 여름 관리의 절반은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새 자국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하나 더. 얼굴의 갈색 반점을 다들 '기미'라 부르지만, 기미와 주근깨와 검버섯은 다른 병이다. 기미는 광대뼈를 따라 양쪽에 옅게 번지고 호르몬과 얽혀 까다롭다. 주근깨는 어릴 때부터 있던 작은 점이 볕에 진해진 것이다. 검버섯은 세월과 자외선이 쌓여 경계가 또렷해진 반점이다. 원인이 다르니 관리도 다르다. 어떤 건 지우면 되고, 어떤 건 잘못 건드리면 더 짙게 돌아온다.
선크림 어떻게 바를 것인가
우리는 선크림에 대해서 다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유기냐 무기냐'. 무기자차가 자외선을 거울처럼 튕겨낸다고들 하지만, 무기 성분도 상당 부분은 흡수해 처리한다. 성분 계열을 두고 고민할 시간에 봐야 할 게 따로 있다.
선크림은 어떤 브랜드인지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명확히 발라야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숫자다. SPF 50을 샀다고 50의 방어를 받는 건 아니다. 그 숫자는 피부 1제곱센티미터당 2㎎을 발랐을 때 나오는 값인데, 실제로 사람들은 그 절반도 안 바른다. 양을 반으로 줄이면 방어력은 반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크게 떨어진다. SPF 50이 실제로는 20 이하로 떨어진다.
얼굴과 목에 필요한 양은 반 티스푼. 검지와 중지 두 마디에 길게 짜는 정도다. 그리고 두 시간마다, 땀 흘리거나 물에 들어갔으면 그때 그때 다시. 숫자보다 양과 다시 바르는 것이 먼저다. 마지막으로 다들 빼먹는 네 군데. 입술, 눈꺼풀, 머리 가르마, 귀. 특히 입술은 자외선차단제를 거의 안 바르면서 피부암이 드물지 않게 생기는 자리다.
투명한 선크림의 맹점
막아야 할 빛은 자외선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빛, 특히 청색광(흔히 말하는 블루라이트)도 피부 색소를 자극한다. 게다가 이 가시광선은 유리창을 통과한다. 반전은, 대부분의 자외선 차단제가 이 빛은 거의 못 막는다는 것이다. 유일한 단서는 '색'이다. 살구빛이 도는 톤업·틴티드 제품에 든 산화철이 가시광선을 가려준다. 투명하게 발리는 제품은 이 대목에서 무력하다. 기미가 걱정이라면 하얀 선크림보다 살짝 색이 도는 쪽. 이 사소한 선택이 크게 갈린다.
그럼 휴대폰과 모니터의 블루라이트는? 안심해도 좋다. 화면의 청색광은 한여름 태양의 수백에서 수천 분의 일 수준이라, 색소를 걱정할 세기가 아니다.
먹는 선크림은 갑옷이 아니다
여름이면 '먹는 선크림'과 '미백 영양제' 광고가 쏟아진다. 결론부터. 바르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근거가 쌓인 성분이 없진 않다. 폴리포디움 추출물이나 니코틴아마이드는 자외선에 대한 피부의 저항을 조금 높인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조금 높인다'와 '선크림 대신 먹는다'는 하늘과 땅이다. 유리 같은 피부를 약속하는 알약의 미백은 광고가 앞설 뿐 임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여름의 시술, 미룰 것과 해도 될 것
토닝에 주로 사용하는 피코초 레이저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먼저 색소 레이저, 토닝. 여름은 색소 시술에 최악이다. 볕에 그을려 멜라닌이 늘어난 피부에 색소 레이저를 쏘면, 정작 지워야 할 기미가 아니라 표피의 멜라닌이 에너지를 흡수한다. 효율은 떨어지고, 자극받은 자리엔 색소가 되레 짙어진다. 기미 자체가 자외선으로 재발하니, 볕을 쬐며 토닝받는 건 한쪽에서 지우고 한쪽에서 그리는 셈이다. 바다나 수영장을 앞뒀다면 미루는 게 낫다. 덧붙이면, 색소 시술은 세고 잦다고 좋은 게 아니다. 무리하면 오히려 하얗게 빠지는 자국이 남고, 이건 되돌리기 어렵다.
그럼 리프팅은? 의외로 괜찮다. 초음파나 고주파를 쓰는 탄력 시술은 색소를 겨냥하지도, 표피를 벗기지도 않는다. 피부 깊은 곳에 열을 넣어 콜라겐을 깨우는 방식이라 색소침착 위험이 낮고 다운타임도 짧다. '여름엔 시술 다 쉬어야 한다'는 통념이 여기서 갈린다. 조심할 건 색소와 상처를 다루는 시술이지, 모든 시술이 아니다.
HIFU를 이용란 리프팅 기계. 제품명 슈링크.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그렇다면 여름엔 무얼. 지우는 대신 채우는 쪽이다. 흔히 스킨부스터라 불리는 시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색소를 건드리지도 표피를 깨지도 않으면서 피부 안쪽에서 수분과 재생을 거드는 방식이라, 자국 위험이 낮고 회복이 빠르다. 여름엔 이렇게 바탕을 다지고, 색소 정리는 가을로 미루는 게 낫다. 물론 여름철 내내 외출을 자제할 거라면 해도 괜찮긴 하다.
시술을 받았다면, 그 뒤의 선크림은 한 번 더 따져야 한다. 예민해진 피부에는 자극이 곧 새 색소가 되니, 향이 없고 덜 따가운 저자극 제품이 안전하다. 앞서 말한 산화철이 든 톤업 제품이 마침 이 조건을 겸한다. 저자극이면서 가시광선까지 막아주니, 시술 후 피부에는 이만한 선택이 드물다. 다만 레이저로 표피가 벗겨진 직후 며칠은 선크림도 중요하지만 강한 자외선을 받지 않는 게 제일이다.
연어 DNA라는 유행
방금 말한 스킨부스터의 정체가 요즘 어디서나 들리는 그 이름이다. PDRN. 연어 주사, 연어 DNA.
PDRN은 연어의 DNA에서 뽑은 조각이다. 하필 연어인 건, DNA가 사람 것과 닮아 몸이 거부 반응을 덜 일으켜서다. 이 조각이 세포에 재생의 재료와 신호를 건네콜라겐을 만들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가끔 PN이라는 이름도 들을 수 있다. 같은 연어 DNA인데 사슬 길이가 다르다. PDRN은 짧은 조각이라 재생 신호에 능하고, PN은 긴 사슬이라 신호를 주면서 수분을 붙잡는 그물망 역할까지 한다.
여기 함정이 있다. 요즘 쏟아지는 '바르는 PDRN' 크림이다. 바르기만 하면 물질이 피부 깊이 안 들어가기 힘들다. 피부는 큰 분자를 거의 통과시키지 못하는데 DNA 조각은 피부를 통과할 수 있는 기준을 수백 배 웃도는 덩치다. 병원에서 굳이 주사로 넣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니 바르는 제품의 값어치는 대개 표면의 보습과 진정에 머문다. 굳이 쓴다면, 따뜻한 타월로 피부를 데워 표면을 부드럽게 한 뒤 올리는 게 낫다. 마른 피부에 그냥 얹는 것보단 낫다. 다만 이걸로 주사만큼 들어간다고 기대하진 말자.
집으로 들어온 초음파
흡수를 도우려는 유행이 하나 더 있다. 집에서 쓰는 초음파 기기, LDM이다.
병의원용 초음파(LDM) 기기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LDM은 두 주파수를 오가는 초음파로 피부를 미세하게 마사지하는 방식이다. 리프팅용 초음파(HIFU)가 깊은 곳에 강한 열점을 찍는 것이라면, LDM은 얕고 부드러운 진동으로 피부를 달랜다. 붉음과 붓기를 가라앉히고 예민한 피부를 진정시키는 데 강하다.
최근에는 가정용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병원 것과 다른 건 출력이다. 가정용은 안전을 위해 훨씬 약하게 만들어져, 병원 같은 조직 수준의 효과는 어렵고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 집에서 병원 효과가 난다는 말은 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그래도 헛것은 아니다. 눈높이를 제자리에 두면 값을 한다. 바른 제품의 표면 흡수와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효과 있다.
집에서 제대로 쓰려면 셋만 지키면 된다. 초음파는 매개체가 있어야 전달되니 젤이나 수분 세럼 위에서 쓸 것. 한자리에 오래 대지 말고 계속 움직일 것.가끔 말고 꾸준히. 단, 앞서 말한 큰 분자 PDRN은 초음파로도 깊이 안 들어간다. 데워도, 문질러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집 기기가 돕는 건 작은 분자로 된 제품의 표면 흡수까지다.
결국, 방어의 계절
여름 피부 이야기는 하나로 모인다. 이 계절의 관리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라는 것.
그을림을 훈장으로 착각하지 않기. 선크림을 제대로 고르고 충분히 바르기. 광고보다 근거를 믿기. 무리한 시술로 새 자국을 만들기보다 피부의 바탕을 다지기.
화려한 한 방은 없다. 사소하고 성실한 방어가 있을 뿐이다. 몇 달 뒤 서늘한 바람이 불 때 거울 앞에서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이 여름에 조용히 방어를 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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