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애플이 자사 하드웨어 기술 기밀을 빼냈다며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를 상대로 초대형 소송전에 나섰다. 한때 ‘애플 인텔리전스’에 챗GPT를 통합하며 밀월 관계를 과시했던 양사는 하드웨어·AI 패권을 둘러싼 정면 충돌 구도로 급변했다.
10일(현지시간)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오픈AI와 오픈AI로 이직한 전직 애플 임직원 2명, 그리고 조니 아이브 전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가 설립한 스타트업 ‘io’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스마트폰 하드웨어 1위 기업과 상징적 AI 기업 간의 이번 법정 공방을 두고 “블록버스터급 소송”이라고 평가했다.
애플은 소장에서 24년간 자사에 근무하며 아이폰·애플워치 디자인을 총괄했던 탕 유 탄 현 오픈AI 최고하드웨어책임자(CHO)와, 애플에서 8년간 선임 시스템 전기 엔지니어로 일했던 창 리우가 조직적으로 기밀 정보를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애플에 따르면 창 리우는 올해 1월 오픈AI에 합류한 뒤에도 애플 소유의 업무용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은 채 인증 취약점을 악용해 내부 저장소에 접근했다. 이 과정에서 미공개 제품 정보와 회로기판 제조 관련 문서를 포함한 기밀 파일 수십 개를 내려받았다는 게 애플의 주장이다. 탄 CHO에 대해서도 퇴사 직전 공급망 및 업계 동향을 정리한 요약 문서를 개인 이메일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애플은 아이폰·애플워치·맥북 등 핵심 제품군의 엔지니어링 사양, 제조 공정, 공급망 전략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수천억 달러를 들여 축적한 지식재산권(IP)이 오픈AI 측에 무단으로 이용됐다고 비판했다. 특히 탄 CHO가 오픈AI에서 채용 면접을 주도하며 애플 재직자들에게 내부 정보를 요구하고, 실물 부품을 가져오라고 지시하는 등 조직적인 정보 수집을 했다고 소장에 적시했다. 오픈AI로 이직한 전·현직 애플 인력이 400명이 넘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애플은 또 오픈AI가 협력사에 접근해 마치 애플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속이고 금속 마감 기술 등 제조 관련 노하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술 직원부터 최고하드웨어책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오픈AI가 애플의 영업비밀과 기밀 정보를 훔쳤다”며 “이제 막 시작한 오픈AI의 하드웨어 사업은 불법적으로 훔친 영업비밀에 의존해 그 핵심부터 썩은 불안정한 기반에 놓여 있다”고 맹비난했다.
애플은 소송에 앞서 오픈AI에 관련 활동 중단과 모든 기밀 자료 폐기를 요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법원에는 오픈AI 측이 탈취한 영업비밀 사용을 즉각 중단하고 폐기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청구했다. 애플의 주장이 인정될 경우 오픈AI는 차기 하드웨어 제품에서 애플 기술을 완전히 걷어내기 위해 디자인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번 소송의 피고에는 조니 아이브 전 CDO가 설립한 디자인·하드웨어 스타트업 ‘io’도 포함됐다. 아이브는 아이폰·맥북·아이맥 등 애플을 상징하는 제품 디자인을 이끌어온 인물로, 오픈AI는 지난해 io를 65억 달러(약 9조7천억 원)에 인수하며 본격적인 하드웨어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애플과 오픈AI의 관계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우호적이었다. 애플은 2024년까지 ‘애플 인텔리전스’에 챗GPT 모델을 통합하기로 하고,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부사장은 공식 행사에서 오픈AI를 “선구자이자 시장 선도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후 애플이 음성비서 ‘시리’에 탑재할 AI 모델로 구글의 ‘제미나이’를 선택하고, 오픈AI가 io 인수를 통해 애플과 정면으로 경쟁할 수 있는 하드웨어 행보에 나서면서 양측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오픈AI와 애플 사이에서 하드웨어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후 인재·기술 확보 과정에서 양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이번 소송으로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픈AI는 애플의 제소에 대해 “우리는 다른 회사의 영업비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전 세계 인류에게 힘을 실어주는 혁신 기술 개발에 계속 집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오픈AI는 자사 하드웨어 사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소송이 단순한 영업비밀 분쟁을 넘어 AI·하드웨어 주도권을 둘러싼 전략적 충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올로 페스카토레 PP포사이트 분석가는 로이터통신에 “애플은 오픈AI가 파트너에서 경쟁자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오픈AI도 아이폰 의존을 줄이고 소비자와 직접 관계를 구축하려 한다”며 “의혹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이번 소송은 오픈AI의 하드웨어 시장 진출을 지연시키고 양사 간 파트너십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법적 쟁점은 영업비밀 유출의 실체와 사용 여부에 모일 전망이다. 마크 렘리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는 “이번 소송은 매우 큰 사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오픈AI가 애플 출신 직원을 대거 채용한 것 자체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불법이 아니며, 실제로 직원들이 기밀 자료를 가져갔는지, 그리고 오픈AI가 이를 사용했는지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5월, 오픈AI 역시 애플이 아이폰 등에서 챗GPT 통합을 충분히 부각하지 않았다며 소송 제기를 검토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양측이 서로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저울질해온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번 분쟁이 단기간에 봉합되기보다는 AI·하드웨어 생태계 재편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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