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Spoon’(2017)
작품의 시발점과 확장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작업은 늘 일상에서 포착한 미세한 형태나 감각에서 출발한다. 이후에 드로잉과 간단한 모형 제작을 통해 구조를 구체화하고 금속이라는 재료의 물성과 직접 부딪히며 본 작업으로 이어진다.
작업을 둘러싼 보통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오전에는 설계나 섬세한 작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산책한 후 땜과 성형 같은 물리적 공정에 집중한다. 반복적 공정을 통해 형태를 구축해 나가는 시간이 작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은 금속 가공이 가능한 마당이 보이는 작업실이다. 땜과 절단, 연마 등의 공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공간 구획을 적절하게 했다.
Kettle’(2023)
금, 은, 구리, 스테인리스스틸, 철, 알루미늄 등 여러 금속을 사용한다. 그중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것은
다양한 금속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 은과 구리에 끌린다. 은과 구리는 시간 흐름에 따라 색이 변하고, 열과 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물성은 작업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며, 표면에 축적되는 색의 깊이조차 중요한 조형적 요소가 된다.
작품 초기에는 구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이 눈에 띄었다
구리는 다른 금속에 비해 부드럽고 얇게 퍼지기 쉬운 성질을 갖고 있다. 복잡한 곡선이나 섬세한 형태를 만들기 좋은 재료다. 그래서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구리를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점차 재료가 지닌 물성과 시간성을 깊이 탐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구리나 은처럼 변화의 층위를 좀 더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재료로 관심이 옮겨갔다. 이렇듯 재료의 선택이 점점 표현의 일부가 됐다.
Cup Series’(2018)
Kettle’(2023)
최근 탐구하고 있는 재료는
금속과 함께 또 다른 재료를 결합하는 작업 방식에 관심이 많다. 작은 돌과 대나무 등을 살펴보고 있는데, 새로운 재료를 탐색할 때는 물성, 강도, 표면 변화 등을 실험하면서 작업과의 접점을 찾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금속은 작은 변수에도 크게 반응하는 재료이기에 작업 의도에서 벗어나면 많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긴 시간의 반복 과정을 거쳐 원했던 형태가 완성되는 순간 재료와 긴장이 해소되며 큰 보람을 느낀다.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바구니’ 시리즈는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발전되며 이어져 오고 있다
바구니는 내 작품세계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작업이다. 반복적 구조와 수작업의 흔적이 동시에 드러나며, 기능과 조형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단순한 형태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바구니 그리고 또 다른 작품 주제인 주전자는 전통 생활 도구다.
모두 ‘열려 있는 동시에 담는 구조’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이것이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담는 형태는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내 작업의 핵심주제다. 그중 주전자와 바구니는 일상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돼 온 기물이어서 더욱 마음이 간다. 두 물건 모두 형태는 기능적이면서도 조형적으로는 열린 구성이고, 반복과 변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듯 다르게 전에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느낌이다. 단순함 속에서 확장되는 구조적 깊이가 이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이유다.
작품이 일상적인 쓰임과 조형적 공예가 맞닿은 지점에 놓여 있는 듯하다
은 컵, 구리 주전자, 드리퍼, 트레이를 비롯한 접시 종류 등은 기물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충분히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작품이다. 나 역시 작업의 일부 결과물을 실제 생활에서 쓰임새 있게 사용한다. 필요할 때는 부드러운 수세미로 닦거나 간단하게 세척해서 관리한다. 금속공예품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보다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류연희 작가는 한국 고유의 기물인 바구니에 그녀만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구리는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 왼쪽부터 ‘Baguni 24-7’(2025)과 ‘Baguni 24-4’(2025).
Baguni 24-6’(2022)
각각의 작품 표면에 불규칙한 텍스처와 망치 자국이 드러나 있다. 미세한 울림 속에서 내리치고 다듬는 행위를 반복하는 작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금속을 반복적으로 두드리는 행위는 단순한 제작 과정이 아니라, 물질과 신체가 긴 시간 동안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일종의 리듬이자 기록이다.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이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지우기보다 오히려 드러내고 싶다. 결국 내 작업은 재료가 지닌 고유의 성질과 그것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형태는 그 과정의 결과이자 일부일 뿐이며, 그 너머에 있는 시간성과 물질의 밀도를 드러내는 것이 작업의 주요 방향이다.
바구니와 주전자 이후의 다음 시리즈는 어떤 형태를 구상하고 있나
기능적 기물의 형태를 확장하기보다 금속을 보다 평면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벽면에 부착하는 구리판 위에 주석을 사용해 그리듯이 표현하는 회화 작업에도 관심이 간다. 구리는 시간이 흐르며 색과 질감이 변화하고, 주석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녹아 표면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두 재료의 대비와 상호작용이 ‘그리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함께 모여 있으면 정겨운 느낌이 전해지는 류연희 작가의 바구니 작품들. 일상 속 기물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Tray 2’(2024)
Baguni’(2024)
최종적으로 작품을 통해 표출하고 싶은 예술적 가치는
시간과 반복 그리고 물질의 본질에 대한 감각이다. 금속이라는 재료는 단순한 형태를 만드는 도구를 넘어 시간의 흐름과 축적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열과 힘, 반복적 공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재료는 끊임없이 반응하고 변화하며, 그 흔적이 표면과 구조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완결된 형태를 제시하기보다 변화의 시간과 축적의 흔적을 함께 드러내려고 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구조와 표면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그리고 반복적인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듬에 집중할 생각이다.
현재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은
올 하반기에 예정된 전시를 구체화하면서 작품의 스케일과 설치 방식까지 고민하고 있다. 어딘가 놓이는 형태에 머물렀던 기존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벽으로 확장되는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다.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거다.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해 작업의 스케일과 감각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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