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5월부터 시작한 청와대 비서관 열전의 ‘열외편’이자 애프터서비스(AS) 차원에서 ‘전은수’편을 준비했다. 전은수는 청와대 부대변인과 대변인(비서관)을 지냈고 지금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한때 초등학교 교사였고 지역변호사였다. 낙선의 상처를 가진 지역위원장이면서 기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청와대 직원으로 바쁜 삶을 살았다. 그 와중에 자녀와 가정까지 돌봤다. ‘열심히 사는 MZ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MZ의 범위가 워낙 넓다. 84년생 ‘늙은 MZ’(?)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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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전은수를 기억하는 기자들은 여럿 있다. 먼저는 2024년 1월 그가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로 입당했을 때다. 그해 울산남구갑 총선에서 지금은 울산시장이 된 당시 김상욱 후보와 접전을 벌였다.
울산지역이 비교적 민주당 세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영남의 한 지역이다. ‘졋잘싸(졌지만 잘싸웠다)’였지만 생애 첫 낙선의 비운을 가슴에 담아야 했다. 지역 정치인의 이력을 시작하며 다음 총선을 준비하던 시기에 12.3 불법계엄이 ‘불현듯’ 일어났다. 이 비상계엄은 그의 정치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우선은 그의 지역 라이벌이었던 김상욱이 이 계엄과 탄핵소추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의힘과 결별했다. 김상욱은 더불어민주당 당원이 돼 한 지역 솥밥을 먹게 됐다. 약간은 난감한 지역구도가 연출됐고 누군가가 나서 정리를 해줘야 할 때 전은수는 ‘부름’을 받았다. 초보 지역정치인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는 ‘청와대’였다. 정확히는 이재명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이었다.
여기서 잠깐, ‘2025년 하반기 용산’은 당시 대통령실을 출입했던 기자들과 춘추관(홍보수석실 예하)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우애’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힘든 시기’를 같이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지의 사실이 됐지만 이재명 정부는 2개월여의 인수위원회도 없이 시작했다. 계엄 이후 6개월간 비어져 있던 용산 대통령실을 놓고 ‘무덤 같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 2025년 6월 4일 대변인실 등은 굴러다니는 볼펜 한자루 찾기 힘들 정도였다고 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마음이 급했다. 대통령실 입성 2주만에 G7 순방을 ‘번갯불에 콩 볶듯’ 강행했고 청와대 내부 인사를 단행해야 했다. 국무위원 후보자도 서둘러 지명하려 했다. 국가 정상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덕분에 기자들은 휴일에도 나와야 했다. 청와대 직원들은 밤까지 격무에 시달렸다. 결국 누군가는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가정 불화 정도는 ‘기본 옵션’이 됐다.
춘추관 사람들도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합류한 부대변인단은 천군만마가 됐다. 대변인과 홍보수석에 몰렸던 소통의 부담이 분산됐다. 전은수는 사실상 청와대 내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들과의 소통 등에 있어서도 ‘좋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남 여인 특유의 ‘사투리 섞인 표준어 억양’으로 엄숙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를 밝게 풀어내곤 했다.
이런 그가 그해 4월 대변인직(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모두들 6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승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혹여 다른 이유로 보궐선거에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승진 자체만으로도 조직(특히 대통령)의 인정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그는 5월 출마를 하게 됐다. 그가 향한 지역구는 현 비서실장이 3선을 했던 곳이었다. 청와대 내 안방마님이자 군기반장인 비서실장이 자신의 지역구를 특별히 내준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내부 평가를 다시 한번 짐작케 할 수 있다. 전은수가 가진 ‘삶의 자세’, 즉 힘든 와중에도 주변을 밝게 만드는 긍정적 기운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이력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긍정적 마인드를 갖고 있다’ 정도를 넘어 성과까지 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은수는 초등학교 교사에서, 지역 변호사로, 초보 정치인으로, 청와대 대변인 등으로 ‘퀀텀점프’를 했다. 미래를 보는 ‘시간의 지평선’이 그 누구보다 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유의 시야’가 넓을 것으로, 감히 생각해 본다.
전은수의 여의도 생활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결과로 수렴될지 예상할 수 없다. 다만 ‘2024년 총선 패배의 아쉬움’, ‘2025~2026년 청와대의 삶’이 그의 정치 생활에 있어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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