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살인' 혐의로 기소된 장윤기 /연합뉴스
일면식도 없는 16세 여고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23세 장윤기의 범행을 두고 수사기관 간 엇갈린 결론이 나왔다.
경찰은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반 살인죄'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은 여러 정황 증거를 종합해 최소 형량이 무기징역에 달하는 '강간 등 살인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한 사람의 끔찍한 범죄를 둘러싸고 두 사법기관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직접 증거' 고집한 경찰, 불거진 봐주기 수사 의혹
경찰이 사건을 일반 살인죄로 결론 내린 주된 이유는 자백을 비롯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수사 초기 참여 경찰관들 사이에서 성범죄 목적을 의심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지휘 체계를 거치며 결국 형법상 일반 살인죄로 혐의가 축소되어 검찰에 넘겨졌다.
이 과정에서 숱한 '봐주기 수사'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 가족 배경 의혹: 장윤기의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모두 현직 경찰관이라는 배경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었다.
- 수사팀장 구속: 사건 담당 수사팀장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 검경 동시 수사: 이러한 논란 속에 이례적으로 검찰과 경찰이 동시에 수사에 착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황 증거'로 퍼즐 맞춘 검찰의 다른 시선
경찰이 넘긴 단서들을 똑같이 살펴본 광주지검은 지난달 2일 장윤기를 기소하며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렸다.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검찰은 다음과 같은 정황 증거들을 성범죄 결합 살인의 근거로 삼았다.
- 장윤기의 자취방 내부에서 잔혹한 형태로 훼손된 리얼돌이 발견되었다.
- 살해 직전 피해 여학생을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끌고 가려 했던 정황이 확인되었다.
- 범행 직전 아르바이트 동료 여성을 성폭행했을 당시와 동일한 제압 수법을 사용했다.
법적으로 볼 때, 법정형이 무거운 중범죄라 할지라도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한다면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기준이다.
검찰은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정황 증거를 엮어 강간 목적성을 입증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적 공소사실 생략한 법리 계산, 도마 위에 오른 경찰 책임수사
검찰은 장윤기를 기소하면서 통상적인 '안전장치'인 예비적 공소사실을 덧붙이지 않았다.
주된 혐의(강간 등 살인)가 무죄가 날 경우를 대비해 예비 혐의(일반 살인죄)를 적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를 생략한 것이다.
이는 살인 자체가 명백한 사건의 경우, 훗날 재판부가 강간 목적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일반 살인죄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법적 메커니즘까지 치밀하게 고려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사건의 파장은 단일 범죄에 그치지 않고 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강화된 경찰의 '책임 수사'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장윤기 사건을 맡았던 광주 광산경찰서는 치안 수요 등을 이유로 서장 계급이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상향된 광주 유일의 관서였다. 그럼에도 국민적 공분을 산 흉악 범죄에 대해 좁은 법리 해석으로 혐의를 축소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1차 수사기관의 사실관계 파악 능력뿐만 아니라, 사법 시스템이 허용하는 법리적 장치를 얼마나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범죄의 무게가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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